(계시록1:1)속히 될 일
(계1: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듯이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우리는 오랜 기간에 걸쳐 창세기부터 성경여행을 떠나 왔습니다. 사십대에 시작한 내 나이가 벌써 오십의 중반이 되었습니다. 나는 요한 계시록을 살펴보면서 먼저 그 당시 계시록을 쓰고 있던 노령의 사도요한을 생각하였습니다. 젊은 시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제자로 부름을 받은 사도요한도 이제 구십의 나이에 접어들어 이제 육신의 장막을 벗고 주께 올라갈 때를 고대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계시인 묵시록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쓸 당시의 교회의 상황과 정치적 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사도요한은 네로황제 이후 가장 악마같은 황제로 불리던 도미티안 황제(96~98년) 때 황제숭배를 거절함으로 가장 혹독한 유배지 밧모섬에 유배되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계시를 받은 후 풀려나 에베소에 돌아와 기록하였다고도 하며 또 제롬은 밧모섬에서 기록한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이 언제 어디서 기록한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도요한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계시의 말씀이라는 데 있습니다.
네로황제 이후 로마정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극심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교회가 황제숭배에 대한 거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로마제국 뿐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교회가 박해를 받아야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출범한 이래 로마정부는 유대교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하나로 보아 유대교와 교회간에 분쟁이 발생할 때에도 로마정부는 종교적인 문제에 휘말리지 않고 공정성을 지키려 애를 써 오히려 유대인의 박해로부터 사도들을 보호하였습니다. (행16:36-40, 18:1-17, 19:13-14, 21:30-40, 23:12-32). 그러나 네로 황제가 일이킨 로마의 화재를 그리스도인의 폭동으로 몰고 가면서 로마인들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팍스 로마나 정책을 저해하는 공동체로 인식하는 풍조가 생겨났습니다.
A. 황제숭배
로마제국은 전세계를 통일하면서 팍스 로마나를 실현하기 위한 제우스 황제의 인격을 존중하며 자연스럽게 민중 속에서 발생된 황제의 신격화 운동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로마군이 이르는 곳곳마다 승리의 깃발이 세워지고 팍스 로마나를 주창하는 황제의 치국 이념을 따라 전세계 속에서 로마의 경제적 풍요로움과 자유의 물결이 풍만해지면서 로마 시민의 프라이드가 상승하게 되자 사람들 마음속에서 황제 가이샤를 신격화 하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로마제국의 정신은 여신 로마를 인격신으로 숭배하는 가운데 계승되었습니다. 이 여신은 로마제국을 강하고 풍요롭게 하는 힘의 상징으로 주전 195년에 서머나에 처음 봉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차차 사람들 마음 속에서 여신을 향한 신적 의미가 팍스 로마나를 실현 시키는 황제의 인격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쥴리어스 시이저가 죽은 후 황제숭배는 민중들 속에서 강렬히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로마정부는 거대한 각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정치적 제도로 황제를 신격화하는 정종일치를 제도화 구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로서 로마령인 아시아 지역의 에베소나 니케아에 신전이 세워지고 아우구스 황제 때에는 버가모와 비두니아 지역에까지 황제 예배를 위한 로마신전을 확대시켜 나갔습니다.
더우기 교회가 확장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예배가 사람들 마음 속에 확대되면서 무지몽매한 종교행위와 혼돈 속의 철학적 사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인류 평화와 풍요로움을 제공하는 힘의 중심인 로마황제를 숭배하려는 강한 의지가 표출되면서 황제숭배는 전세계적으로 정치적 도구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의 천황제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겠습니다.
도미티안 황제 때 와서는 황제숭배가 극에 달아 황제의 아들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기에 이르렀으며 당시 로마정부는 모든 공문서에서 황제 이름 위에 '우리의 주요 또한 신이신 도미티안 황제의 뜻을 따라'라는 호칭을 사용하도록 하므로 모든 사람들은 가이샤는 주라는 불러야 했습니다. 그로하여 로마제국 속에 널리 펴진 크리스챤은 가이사를 택할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를 택할 것이냐 하는 신앙고백의 기로에 서게 되었고 사도들을 중심으로 가이샤 숭배 거부운동이 일어나면서 교회는 정치적 박해로 생존권에 위협을 받게 되어 순교의 길을 선택하여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도들은 모두 순교를 당했고 최후까지 남은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주의 계시를 받아 계시록을 기록하여 당시 박해 속에 있던 교회와 성도들에게 죽음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바라보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날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당면한 상황과 현실들을 성도들에게 보여주는 암흑을 밝히는 빛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날을 바라보게 하는 등대라고 하겠습니다.
B. 계시록의 구성
사도요한은 계시록을 기록하면서 그 내용을 셋으로 분류하여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1:19) 기록하였습니다.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이처럼 셋으로 분류한 것은 그 내용이 인간의 생각과 시공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먼저 자신이 '본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본 모습을 기록한 것으로 시간적으로 사도바울의 생전인 현재로서 1장에 해당되며 둘째는 '이제 있는 일'로서 이 땅에 세워진 교회의 모습으로 2장부터 3장의 기록에 해당됩니다. 이 시간은 그리스도의 재림하시기까지 이성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교회의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세 번째는'장차 될 일'로서 4장부터 22장까지가 되겠습니다. 이 부분은 인간의 이성으로 감지할 수 없는 교회의 내면적인 상태로서 하나님의 뜻안에 계획되고 예정되어 성취되어 가고 일들과 그 훼방하는 세력간의 영적전쟁 그리고 이 땅에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계시록의 구성적 특성을 살펴 볼 때 내용이 묵시적이고 상징적이며 내용의 전개에 있어 점진적이고 또 병행적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누구에게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일들을 설명하고자 할 때 상대의 인격적 역량을 생각하여 먼저 어떤 큰 그림을 보여 주고 그 그림의 사실적 부분을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그 그림 속에 숨겨진 의미들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II. 사도요한의 증거의 목적(1-8)
사도요한은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듯이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기록하였습니다.
사도는 여기서 계시록의 성경적 위치와 특성을 설명하면서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경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 곧 하나님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4단계로 전달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주신 것을 그 천사를 통하여 사도들에게 주셨으며 또 사도들은 주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종들로 보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계시록 비롯한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가장 기초적인 질서입니다.
히브리기자는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보고 들은 것이라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하는 말들은 가당치 않은 말들입니다.
A. 누가 수신자인가?
사도요한은 '반듯이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라고 기록하여 계시의 수신자들이 누구인가를언급하였습니다. 사도가 말한 '종들'이란 헬라어'에베드'로 번역된 히브리어 '둘로스'로서 노예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종이라 할 때 일정한 규약에 의해 주어진 범위 안에서 일하는 종의 인격을 말합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종이란 요즘 말로 하면 종업원 또는 직원이란 의미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노예란 인간된 인격이 박탈된 상태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종(둘로스-노예)라고 호칭은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와 갈렙과 여호수아와 그리고 다윗에게 주어진 의대한 직함입니다. 물론 구약에 기록된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은 각양각색의 사람들 속에서 종을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종들은 보편적인 우리의 생각과 달리 각 개인에게 베풀어진 명예가 없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종이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영광된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 명시한 '종들'이란 구약에 기록된 선지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종들 다시 말하여 그리스도의 날을 예비하기로 작정된 복음 사역자들을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이 언급한 '그 종들'이란 교회의 탄생이래 우리와 가장 가깝게 살던 사도들을 비롯한 교부들이 될 것입니다.
B . 그리스도의 계시(1-2)
여기서 우리 성경에 번역된 '계시'이란 '묵시'라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계시라 할 때 보편적으로 앞날에 대한 것을 알려 주는 종교적 용어처럼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계시'로 번역된 '아포칼립시스'(Apocalypse)란 말은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는 것, 암흑 속의 것을 밝혀 내는 것, 덮힌 것을 벗기는 것이라는 일반적 용어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계시라는 말이 어떻게 사용되었나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계시를 따라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갈2:2)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계시란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이 자의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역은 본인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계시에 의해 임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2절에서 '이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증거하였으며 '그분께서 계시로 내게 그 신비를 알에 하셨나니'(엡3:3) 라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복음은 꼭 배움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친히 부르신 사람에게 친히 알게 하심을 통해 전달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에베소서 1장 17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계시란 오직 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부르신 자들에게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비밀에 속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 안에 역사한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신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노라"(벧전1:13) 증거 하였습니다.
C. 하나님의 말씀
요한은 2절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느니라"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요한 계시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 계시록을 대할 때 계시록 속에서 모든 비밀을 파헤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계시록에만 열중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흥미롭게도 사도 요한은 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가 본 것'을 구분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계시록의 사도 요한의 증거는 그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하심으로 자신이 본 것 뿐 아니라 그를 통해서 깨닫게 된 '하나님의 말씀' 모두를 포함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저희는 이것을 받고 네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17:8) 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믿음의 확신은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 것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요한이 말한 '하나님의 말씀'이란 계시록에 기록된 것만이 아니라 복음에 속한 모든 말씀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D. 예언의 말씀(3)
사도 요한은 3절에서 "이 예언(대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한이 '예언의 말씀'이라고 기록한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계시라는 말과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계시는 아무도 알 수 없도록 감추어진 것을 그 종들에게 들어나게 하신 것이고 예언은 미래에 관한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흥미롭게도 킹 제임스에서는 예언을 '대언'이라 기록하여 예언이 사람에게 나온 것이 아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읽는 자'란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 가운데 낭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행13:15). 다시 말하여 말씀을 바르고 알기 쉽게 낭독해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당시는 성경이 오늘날과 같이 보편적인 시대가 아니라서 성경 두루마리는 아주 엄격하게 다루어져 안식일에 화당에서 말씀을 맡은 자들에 의해 회중에게 낭독 후 해석하였습니다.
느혜미야 8장에는 에스라가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들이 그 율법책에 귀를 귀울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느혜미야 8장 8절에는 "레위 사람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누가 복음에는 주께서 고향을 방문하셨을 때 회당장이 이사야서를 주께 드리자 주께서 성경을 찾아서 낭독하신 후 오늘 이 말이 너희 귀에 응하였노라 하셨습니다(눅4:24). 이와 같이 '이 예언(대언)의 말씀을 읽는 자'란 사람들 앞에서 계시록을 낭독하고 그 뜻을 풀어 가르치는 자들을 언급한 것입니다. (물론 깨달은 마음으로 계시록을 읽는 사람도 포함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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