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계시록 강해

종말론에 대한 갈보리 채플의 견해

이요나 2007. 12. 11. 12:46

                    종말론에 대한 갈보리 채플의 견해

 

*성경적 교리의 중요성

오늘은 우리 교회가 믿고 있는 종말론 신앙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휴거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고 이 땅에 세워질 천년왕국에 관한 성경적 자료입니다. 때로는 신학적 교리가 믿는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지라도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훈(교리)이 무엇인가 바르게 깨달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깨어나라 하신 근거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물질 만능주의와 지상 최고주의로 인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육신의 유혹을 따라 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우리가 주 예수를 믿어 이미 구원 받았으니 지옥에는 결코 가지 않는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라면 성경의 가르침은 무익하게 됩니다. 성경은 절대로 범죄한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각 사람들은 내가 육신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오직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것인가 이 두 가지 관점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결말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경에 미리 말씀하신대로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믿음의 결국은 혼의 구원이라”하였고 바울도 말하여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종말론적인 교리가 설혹 우리를 두렵게 할지라도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가르침이 무엇인가 살펴 보고 진리를 깨달아 그리스도의 날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종말을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과학자들과 자연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은 종말을 말하는데도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칠 의무가 있는 기독교는 종말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 속에 역사하는 사탄의 강력한 속임수 중 하나입니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은 나의 현재를 바꿉니다. 우리가 오늘을 사는데 있어서 확실한 격려와 위로와 소망을 말하라면 그것은 장차 임할 영광스런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8:18)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로서 받을 영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늘을 사는 당신이 마음의 눈을 열어 장차 당신에게 임할 영화로운 날을 볼 수 있다면 고난 속의 당신의 인생은 소망을 갖고 온전히 변화된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교회가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오늘날 기독교계에는 많은 종말론적 이론들이 존재합니다. 이를 크게 구분하면, 후천년주의, 무천년주의 그리고 전천년주의가 있습니다. 또 후천년주의 안에서도 인본주의적 후천년주의와 복음주의적 후천년주의가 있고, 전천년주의 안에서도 역사적 전천년주의와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로 나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론들이 나오게 된 원인은 각 교파별로 성경해석의 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그 중 가장 큰 요인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느냐 영적으로 풀어야 하느냐 하는 해석적 다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하며 우리가 지금 충실히 잘 살면 되지 종말론 같은 것이 믿는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생각할 때 바른 종말론적 이해는 매우 중요한 지식입니다. 성경은 농부가 가을에 수확할 것을 알기 때문에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뜨거운 태양 빛 아래에서도 수고한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바른 종말론적 신앙관을 정립하는 것은 내 영혼의 안식을 위한 가장 중요한 믿음의 틀이 될 것입니다. 우선 간략하게 먼저 설명을 하고 세부적인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대표적인 3가지 견해 -


(1) 무천년설(A-MILLENNIALISM)  성경에 기록된 천년왕국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그룹으로 천년 왕국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펼쳐진 교회의 부흥시대라 주장한다. 또 이들은 첫째부활은 성도의 육체적 부활이 아니라 영혼의 거듭남이라 영적해석 한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오리겐이 주장하여 중세의 어거스틴, 존 칼빈 등의 개혁주의자들이 주장하며, 현재도 한국의 장로교회와 카톨릭 등에서 주장한다.


(2)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이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전파된 복음이 교회를 통하여 부흥되어 인류의 대부분이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바로 직전1000년 동안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게 되어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3)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성경의 기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교회는 환난 전에 휴거하며 그리스도께서 7년 대환난 후에 재림하여 성도들과 천년동안 통치하실 것이라 믿는다.


*갈보리채플의 종말론적 믿음


우리 갈보리채플은 성경의 절대 무오함을 믿으며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종말에 관한 신앙에 대하여는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교회의 환란 전 휴거를 믿고 기다리며 요한계시록 6장으로부터 18장까지에 언급된 7년 대환란이 있기 전에 교회가 들림을 받을 것에 대한 성경적 믿음을 강력히 지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교회들이 주장하는 무천년설이나, 후천년설 뿐만이 아니라, 칠년 대환란의 중간이나 그 후에 휴거가 있을 것으로 보는 관점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갈보리채플은 철저한 전천년론자들이며 환란전 휴거론자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대환난에 들어 갈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교회가 대환난을 통과한다는 그들의 성경적 근거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1-52) 하신 말씀에서 계시록 대환난 중에 일곱 나팔 중 마지막 천사가 분 일곱번째 나팔이 마지막 나팔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휴거는 일곱번째 나팔이 불기까지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것을 증명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성경적 증명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계시록의 일곱 나팔은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을 위해 일곱 천사들에게 나팔을 불게 하여 천사들이 각각 나팔을 불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이 땅 위에 임합니다. 그러므로 이 나팔들은 말할 것도 없이 천사들이 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휴거를 알리는 마지막 나팔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고전4:16) 라고 기록된 것과 같이 천사의 나팔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팔’입니다.


우리가 굳이 ‘마지막 나팔’에 대하여 해석적 의미를 두려 한다면 마지막 나팔은 문자 그대로 마지막 나팔입니다. 우리는 나팔소리에 대하여 민감하지 못합니다만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많은 나팔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팔 신호를 통하여 백성들을 모으고, 진군하게 하고, 또 전쟁을 알리기도 하였으며, 성전예배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소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나팔은 하나님의 성도인 교회를 인도하는 통신 수단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섭리하기 전에 하나님의 나팔을 불어 하나님의 교회의 휴거를 알리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게 있어 이 나팔은 마지막인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마지막 나팔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대환난에서 일곱 천사들의 나팔소리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는 나팔의 목적이 서로 다릅니다. 교회의 휴거를 알리는 하나님의 나팔은 성도의 변화를 알리는 나팔입니다. 바울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리니”(고전15:51)라 증거하였습니다. 여기서 변화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원형 그 자체가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 일곱 천사의 나팔은 재앙을 알리는 나팔입니다. 사도 요한은 넷째 천사의 나팔이 분 후에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요한계시록 8:13) 기록하였고 또한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분 다음에도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계 9:12)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화는 일곱번째 천사의 나팔 뒤에 있을 것이 예고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일곱째 나팔은 이 땅 위에 있는 자들에게 화를 알리는 일곱번째 천사의 나팔인 것입니다.


이들의 세번째 주장은 요한계시록 20장 4절 이하의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계20:4-5)고 기록된 말씀 중 첫째 부활에 속한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란 말씀은 바로 교회를 뜻하므로 교회가 대환난에 들어가 순교를 통하여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잘 읽어보면 4절에 보좌들을 볼 수 있는데 보좌에는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이 앉아있습니다. 이 보좌에는 이긴 자들이 앉아 있는데 사데교회에게 주신 메시지를 읽어보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주장은 교회가 대환난을 통과하여야 한다는 주장인데 성경을 그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심판하신 경우는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멸하시려 천사들을 보내셨을 때 천사들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돔성에서 열명의 의인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고 오직 한 사람 의인 롯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롯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후에야 임하였습니다. 그 때 천사들은 롯이 피할 때까지 자기들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으며(창 19:22).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7장에서 롯의 구원을 말씀하시면서 롯이 소돔을 벗어나자마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음을 언급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심으로써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다’고 증거하면서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은 하나님께서 구하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계속하여 베드로는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실...줄을 아시느니라”(벧후 2:9-10)고 증거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신 것이 진노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라 기록하였으며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롬5:9)고 깨우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된 의인들에게는 진노가 내리시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다시 설명하건데 계시록 20장 4절에서 사도 요한은 교회는 첫째 부활한 자 그룹들 중에 첫번째에 속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또한 요한은 대환난 기간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순교한 자들을 또한 보았는데, 이들은 계시록 7장에서 장로들이 말한 흰 옷 입은 큰 무리입니다. 요한은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13-14)고 기록하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교회 성도라면 교회의 사도인 요한과 장로들이 모를리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서서 밤낮으로 계속하여 섬기고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위치에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한 것은 이 둘째 무리들은 대환난 기간동안에 순교를 당한 성도들이라는 것이며 물론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 왕국의 한 구성체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미 휴거 했고 보좌에 앉아서 심판할 권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일곱째 나팔과 교회의 휴거를 알리는 마지막 나팔을 동일시 할 수 없는 증거는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계10:7)에서 천사가 소리 내는 ‘날들’(Days)은 복수입니다(한글성경은 날로 기록되었음). 그러나 휴거는 단 한번 ‘눈 깜짝할 사이’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나팔’을 계시록의 일곱째 나팔과 관련을 시킬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태복음 24:29-31)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환난 날 이후 예수께서 온 세상에 나타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며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기록된 ‘큰 나팔’에 대하여도 많은 나팔로 오해를 하려 합니다. 그러나 ‘큰 나팔’이란 단어는 성경에 단 두 번 기록되어 있는데 두 번 모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불러 모이실 때 사용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 날에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파멸케 된 자와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사27:13) 증거한 것 같이 큰 나팔은 주께서 택하신 백성을 불러 모으실 때 사용하셨습니다. 이미 그들은 큰 나팔 소리를 듣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우리는 다른 교파들이 우리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음은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이 주제에서 있어서는 성경 전체를 통한 문자적 성경해석을 고수하며, 그에 반하는 다른 성경적 대안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을 통치하시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의 재림은 실제적이라는 것과, 재림은 천년왕국 이전에 있을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시 천사의 증거처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임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므로 하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배와 헌신된 봉사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성도들과 온전한 교제를 갖게 되며, 세례(Baptism)와 성찬(Lord's supper)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갈보리채플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영해(靈解)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천년설, 곧 요한계시록 20장이 묘사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천년간 지상통치를 부정하는 비성경적 가르침을 배격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리적 충돌로 그리스도의 지체인 형제들이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성령 안에서 하가나 되어 성경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힘써 그리스도의 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왕노릇할 그날을 사모하며 정진을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