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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140:13) 의인의 기도

이요나 2007. 2. 26. 10:09

(시편140:13) 의인의 기도

 

진실로 의인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가 주의 앞에 서리이다(13)

 

다윗은 140편에서 악으로부터 보전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지만 그는 늘 악으로부터의 공격과 모함을 당해야 했습니다. 외세로부터의 전쟁과 아들들의 반란과 신하들로부터의 악담 그리고 자신의 육체와도 싸워야 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다윗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땅에 거룩한 삶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어야 할 실제적인 영적 전쟁으로 의인들의 삶의 도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다윗은 진실로 의인은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가 주의 앞에 거하리이다 는 고백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I. 누가 악인인가? (1-5)

다윗은 1절에서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고백하였습니다. 이 글은 다윗이 지금 특별한 경우에 처했을 때에 쓴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들의 반란과 관계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인들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인들이 살아 가는 삶의 환경을 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은 물론 그 시대별로 의인들이 세상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믿음에 대한 기록이지만 이것은 주의 백성들의 공통적 운명과 영적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한 세상 살면서 어떻게 악인으로부터 자신을 보전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십시다. 이미 세상과 나는 서로 상반된 곳에 살며 서로 대적할 수 밖에 없는 영적 상황이라 할 때 세상이 나를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입니다.

 

다윗은 악인으로부터 건져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악인이란 악을 일삼는 자들 곧 의인이 아닌 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강포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강포란 우악스럽고 포악한 것을 말합니다. 성난 늑대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이런 사람을 만나본 일이 있는지요?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이유없이 나에게 강포하게 대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 우리가 겪는 강포함은 서로의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의 의견과 달리할 때 상대는 포악해집니다.

 

어쩌면 강포는 정치적 용어이기도 합니다. 여야 찬반 논쟁을 할 때 보십시오. 그들은 성난 사람들처럼 싸우기 시작합니다. 중세시대에 교권과 정치가 하나가 되어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마녀사냥하여 모두 죽였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강포하다고 하겠습니다.

 

목회생활을 하다보면 강포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 이웃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나를 대적하는 자가 원수가 아니라 내 친구라 하였고 다시 나와 함께 식탁에 마주하던 자가 발뒤꿈치를 들었다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런 일을 여러 번 당했습니다. 아들들의 반란과 아들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신하들의 배신 이것은 정말 함께 다툴 수도 없는 극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오직 주께 악인들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강포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간구한 것입니다.

 

여기서 보전이란 지키다, 경계하다 라는 뜻으로 감시자의 눈으로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완전하게 보호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17:15) 간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다윗이 자신을 악에서 건지시고 강포한 자에게서 보전하여 달라는 것은 일번적인 다툼이 아니라 영적인 다툼인 것입니다.

 

다윗은 악인들 곧 강포한 자들의 행위들에 대하여 먼저 저희가 중심에 해하기를 꾀하고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인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떤 모함을 위한 공모가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나는 매일 아침 교회 앞 공터에 서성거리는 낯익은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입니다. 전에는 나이가 많은 분들만 모이더니 요즘에는 젊은이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가가호호 문을 두드립니다. 이들은 정말 천사와 같은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함께 좋은 성서의 말씀을 나눌까 합니다 라고 접근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혀 속에는 악한 독사의 독이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3절에서 뱀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셀라) 하였습니다. 결국 악인들의 무기는 그들의 혀를 통하여 나오는 말에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영혼을 더럽히는 악한 교리들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나 몰몬교도들의 교리는 참으로 교묘하고 그 간계가 무섭습니다. 보통사람들이 들으면 꿀물을 발라 놓은 듯하여 모두 넘어가제 됩니다. 처음에는 경계하다가도 그들의 말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이론에 말려들어가 있습니다. 그들의 말 속에서는 독이 있어 우리를 중독 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4절에서 여호와여 나를 지키사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나를 보전하사 강포한 자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저희는 나의 걸음을 밀치려 하나이다 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목적은 우리를 의의 길에서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우리의 영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라 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으며 길 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두었나이다(셀라) 하였습니다. 교만한 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사단은 본래 하나님의 부리는 천사였습니다. 그가 교만하여 모든 별 위에 자신을 높이려 하여 쫓겨난 것입니다. 이 악한 무리가 하나님 앞에 선 우리를 올무와 줄을 놓고 우리의 길 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파 놓고 있습니다.

 

이단들의 속성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을 상대로 그물을 치고 함정을 놓습니다. 뱀이 하와에게 나아와 하나님께서 너에게 동산의 모든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묻습니다. 뱀은 사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뱀이 하와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하와를 넘어 뜨려 하나님께서 떨어져 자신의 지배 하에 두기 위함입니다.

 

II. 의인의 의지(6-13)

그러면 우리가 이 강포한 혀로부터 어떻게 우리를 보전할 수 있을까요? 이에 다윗은 기도하여 내가 여호와께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여호와여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였나이다(6) 하였습니다. 다윗은 먼저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찾기 위한 기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가 악한 세상 가운데서 또한 미혹하는 영들로부터 우리를 보전하는 것은 그 힘과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들은 악한 영들이고 우리는 죄에 빠진 육신을 가진 인간이므로 우리는 능히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로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하셨도 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하셨습니다. 또한 바울은 주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무엇이든지 들으심이라 하였습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 이란 고백은 정말 위대한 발견이며 깨달음이며 입술의 고백입니다. 여기서 주는 아도나이로서 나의 주인을 의미합니다. 내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주권자가 나의 하나님(엘로힘) 곧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신 분이란 뜻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드셨나이다(7)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내 주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야훼 곧 우리의 구속자 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라 한 것입니다.

 

여기서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드셨다는 말씀은 구원의 능력이신 야훼께서 나에게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강포한 자로 인해 마음 상하여 고개를 떨구고 있는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가리켜 전쟁에 능하신 분이라 노래하였습니다.

 

다윗은 악인의 소원을 허락지 마시고 그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저희가 자고할까 하나이다(셀라) 하였습니다. 지금 다윗 앞에 나선 자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소원을 갖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꾀를 가지고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교만하여 자신들의 일이 성취되면 스스로 높아져 기고만장하게 됩니다. 오늘날 이단의 무리들을 보십시오. 마치 자신들이 세상을 다 덮을 것처럼 자고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9절에서 나를 에우는 자가 그 머리를 들 때에 저희 입술의 해가 저희를 덮게 하소서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서 저희의 입술의 해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해악한 말들을 언급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독한 말이 자신들에게 그대로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뜨거운 숯불이 저희에게 떨어지게 하시며 불 가운에서와 깊은 웅덩이에 저희로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10)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세상 가운데서 격어야 할 고통을 언급한 것입니다.

 

세상은 참으로 묘합니다. 나는 지난 날 내가 범죄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정말 불지옥을 통과한 것 같습니다. 나는 뜨거운 숯불이 머리 위에 놓여 있던 때의 일을 잊어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깊은 웅덩이에서 허우적 대던 때는 내가 예수를 믿은 후였다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은 주께서 원하시는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강포한 자에게는 재앙이 따라서 패망한다 하였습니다. 지난날 나는 강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주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께 기도하며 또 성경의 말씀을 보며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만 나의 입술은 독사와 같았고 강포하여 사람들과 전쟁을 하였습니다. 결국 주님은 내 머리에 숯불을 놓으시고 나로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셨습니다. 아마 다윗도 밧세바를 범한 후 이러한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결론을 지어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신원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 여기서 신원이란 억울함을 갚아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당한다는 의미는 영적 의미를 말합니다. 만약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서 잘못된 지식으로 영적 혼란을 통한 고난을 당하게 되면 그것을 신원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신다는 말씀은 그 모든 면에서 공평케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아침에 나아가 만나를 얻었습니다. 많이 주운 자나 적게 주운 자나 서로 부족함이 없다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궁핍한 자에게도 넉넉함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인 것입니다.

 

끝으로 다윗은 진실로 의인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가 주의 앞에 거하리이다 하였습니다. 의인은 믿음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삶을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으로 그 지식이나 형상에서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식에 충만하여 갈수록 주의 이름에 감사하게 됩니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직함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불의를 행하고 입으로만 주의 이름을 부르려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모든 것에서 의로워져야 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위대하신 이름을 찬양합니다. 당신의 공의로우심에 감사드립니다. 나로하여 당신의 말씀을 깨닫게 하여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널리 전파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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