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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139:16) 하나님 안에서의 안전함

이요나 2007. 2. 26. 10:10

(시편139:16) 하나님 안에서의 안전함

 

“내 형질이 다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나이다”(16)

 

다윗의 시편을 읽노라면 다윗은 이미 하나님의 깊은 그 모든 것을 통달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과 사도들도 그리스도의 날에 관한 장래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에는 늘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주님 오시기 1000년 전에 앉아서도 그 모든 비밀에 속한 일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니 이것은 다윗의 지혜가 아니고 그의 믿음의 대가로 주신 성령의 은혜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139편에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신묘막측하신 창조의 능력과 그의 역사의 신비를 살펴 보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떠나 살려하는 인간의 모순된 심리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미워하며 악을 부축 이는 악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판단과 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 우리의 마음과 뜻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I. 하나님의 전지하심(1-6)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5)

 

A. 나의 모든 것을 감찰하심

다윗은 서두에서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1) 고백하였습니다. 감찰이란 감독과 관찰을 의미합니다. 인생이 하늘의 신이신 전능자께서 나를 친히 감독하고 관찰하고 계심을 감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다윗은 범죄 후에 그 진리를 깨달은 후에 이 시를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더욱이 나를 감찰하시는 분이 누구의 명령을 받아 감시하고 있는 염탐꾼과 같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을 강구하여 감시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감찰하시는 분이 그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라면 이것은 정말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은 먼저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2)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앉고 일어섬이란 나의 이성적 판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여 좋은 것을 취하고 싫은 것은 피하는 습성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늘 자기가 앉을 곳을 찾아 다닙니다. 그리고 자신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염치불구하고 그것을 얻기까지 앉아 있다가 자기의 욕심을 다 취하면 사정없이 그곳을 떠나 버립니다.

 

우리말에 지조(志操)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옳은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 반대 되는 말이 배반이 됩니다. 흥미롭게도 인간은 모두 이런 속성이 있어서 자신의 유익을 따라 앉고 일어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앉고 일어섬을 아신다는 것은 내 속셈을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한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며’ 란 내 생각을 깊게 분별하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성실하신 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이것은 통치자에게 필요한 지혜이기도 합니다. 만약 부모가 집 나가 있는 자녀의 생각을 통촉할 수 없다면 이건 문제입니다. 또한 국가 지도자들은 국민들의 생각을 통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정말 갑갑합니다. 국민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던지 간에 늘 자기의 마음은 자기 콩밭에 가 있습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동을 익히 아시오니”(3)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삶의 방법 곧 선택적 목적을 말한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넓은 길로 가기를 원하며 따뜻한 곳에 눕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가라 멸망으로 들어 가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 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하셨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다윗은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4) 하였습니다. 이것은 내가 할 말들을 모두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혀는 모든 불의의 세계라 하였으며 혀를 제어하는 자는 능히 자기 몸을 제어한다 경계하였습니다.

 

우리 인생 중에 가장 큰 화근은 말에 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화가 되기도 하고 말을 해야 할 때 하지 않아서 화를 불러 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때에 합당한 말을 하는 것이 지혜란 것입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그 아버지로부터 ‘경청(敬聽)’ 이란 말을 유언으로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하기 보다 듣기를 잘하라는 말입니다. 이 것은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B. 내 인생 전체를 안수하심

다윗은 5절에서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안수하셨다는 것은 모두 결정하여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의 인생살이 전후 모든 것이 그의 뜻 가운데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의사가 환자에게 손을 얹어 혈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환자의 표정을 살펴 그 병의 상태를 살피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의 지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치하시는 모든 지혜가 지극하신 그의 지식에서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세상 가운데서 인간의 인격은 그가 가진 지식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서부터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지식들을 터득하기 위해 많은 스승을 두고 여러가지 학문을 연구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어서 그 배운 테두리를 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기록하였습니다.

 

II.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7-12)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까지 가서 거할지라도”(9)

 

A.     신속한 속도로 바다 끝에 가더라도

다윗은 7절에서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에 대하여 언급한 것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노래한 것입니다. 곧 인간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신적 능력을 말한 것입니다.

 

다윗은 “내가 하늘을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인간의 영혼의 문제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죽어 부자는 지옥에 들어가서 물을 얻지 못하여 갈급해 있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었습니다. 이때 부자가 주님께 나사로의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며 자기 형제들이 이곳에 들어 오지 않도록 나사로를 보내 달라고 부탁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국과 지옥과 세상이 모두 주께 속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어디를 가던지 간에 주를 떠나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죽으신 주께서 영으로 옥에 가서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기록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다윗은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9,10) 하였습니다. 여기서 새벽날개를 친다는 것은 아침과 같은 빠른 속도를 말한 것으로 아무리 내가 빠른 속도로 세상을 정복하드라도 하나님의 권세에 미치지 못할 것을 말한 것입니다. 결국 내가 행한 모든 것은 그의 계획과 예정 가운데 속에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B.     깊은 흑암에도 숨지 못함

계속하여 다윗은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께서는 흑임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11,12) 고백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를 두르고 있는 지식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이 어리석어서 늘 자기의 지식과 지혜에 도취되어 스스로 교만함에 빠지기 일 수 입니다. 그러나 주의 영은 진리의 영이시니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또 장래 일을 알게 하십니다. 그 어떤 것도 주 앞에 우리를 가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III. 하나님의 창조(13-18)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14)

 

A.     모태에서 지으심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창조하심 곧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친히 지으신 지혜의 사람인 것을 고백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직도 인간의 진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모든 생물이 창조된 이후에 종의 진화가 없었는데도 그들은 계속 이 같은 주장을 늘어 놓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원숭이와 인간의 DNA 가 같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지위를 스스로 원숭이의 후손에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지혜는 결코 원숭이의 지혜를 넘지 못할 것입니다.

 

다윗은 13절에서 인간은 모태에서 장부를 비롯한 모든 조직이 완성되었다 말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 장부에 속한 것이든 외적인 조직이든 모두 완성품으로 나왔습니다. 다만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외적인 보살핌을 통하여 성장하는 것이지 육체는 완성되어 출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람이 모태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만드는 기능이 우리 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다 하였고 그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안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신묘막측이란 초월권능을 언급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신적 권능을 말한 것으로 다윗은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높고 의학과 문명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그 지혜는 아무도 알 수 없고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우리의 형체는 주 앞에서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B.     주의 책에 기록됨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신묘막측하게 창조하신 내 모든 것이 주의 책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16절에서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나이다” 다윗은 시편40편에서도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7) 고백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자신의 이름을 성경에서 찾지 못하면 완전한 구원을 얻지 못한 것이며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입니다. 이 말씀은 택하심과 부르심 가운데서 좀더 신중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모든 인간의 창조하신 그 과정과 목적이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자 한다면 오직 성경에서 그 지혜를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D. 깊으신 하나님의 생각

 이제 다윗은 부르신 자의 인생을 섭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어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운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많은 잘못 가운데 거할지라도 하나님은 나의 행위를 따라 처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예정하신 생각을 따라 나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밤을 지난 후 새벽에 주께서 함께 계심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인생의 평안함을 발견한 것입니다.

 

IV. 나의 대적자(19-22)

“저희가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헛되이 주의 이름을 칭하나이다”(20)

 

A.     악인을 죽이심

다윗은 이제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언급하여 “하나님이여 주께서 정녕히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선언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이 시를 쓰게 된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악한 자들로 인하여 받는 고통 때문에 도대체 나의 인생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연구했던 것입니다.

 

나는 가끔 내 살아 온 인생을 돌아 봅니다. 그리고 주 은혜 가운데 부르신 세월을 헤아려 봅니다. 내 인생은 참으로 기구하고 기가막힌 세월들이었습니다. 생 지옥을 살아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처음부터 거기 계셨고 처음부터 나와 함께 하셨으며 지금으로부터 영원영원까지 함께 하고 계신 것입니다.

 

B.     주의 원수들

또한 나는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보며 나는 왜 그들처럼 뛰어나지 못한가 생각해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몇 가지 말 재주를 가지고 세상을 주름잡고 하늘을 찌를듯한 높은 교회 위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습니다. 그들의 행하는 일들 곧 주의 이름을 증거하는 그들의 말들을 듣고 있자면 정말 가슴에서 불이 붙습니다. 다윗은 나를 대신하여 “내가 저희를 심히 미워하니 저희는 나의 원수니이다”(22) 하였습니다.

 

V. 하나님께 호소(23-24)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23)

 

이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살펴 그 마음을 평정케 하고 자신을 시험하여 자신의 뜻을 알아 달라고 호소합니다. 어쩌면 이 호소는 이 땅의 모든 의인들의 호소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우리에게 시험의 때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 온전하지 못함을 의미한 것입니다.

 

다윗은 끝으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기도하였습니다. 결국 다윗은 자신이 주 앞에 어떠한가를 살피고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시작과 그 모든 것이 이미 주의 책에 기록되어 있고 또 주께서 악인을 죽이실 것을 아는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의 인생을 영원한 길로 인도하여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주의 신비하신 능력으로 나를 지으시고 내 모든 형질을 지으신 후에 주의 지혜로 나를 가르쳐 내 영혼이 주 앞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중에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하신 일들을 선포하며 주의 진리의 빛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였습니다.

 

비록 내가 어리고 내 지혜가 비천하오나 주여 주의 손으로 나를 지으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실 것을 주의 책에 기록하셨은즉 나로 하여 악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게 하지 마옵시고 내 생각과 마음과 모든 행위를 감찰하여 나로 오직 주의 전정에 거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오면 주께서 주의 뜻을 친히 이루실 것이옵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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