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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137:6) 시온의 노래

이요나 2007. 2. 26. 10:10

(시편137:6) 시온의 노래

 

내가 예루살렘의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6)

 

  1. 수치의 노래

다윗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시절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 기억들은 이스라엘로서는 가장 수치로운 기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은 1절에서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기록하였습니다.

 

어느 민족이든지 수치스런 기억은 갖고 있습니다. 우리도 38년간 일본에 국권을 상실하고 신민지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로 하여 아직도 친일파 척결이라는 과거사 청산의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타민족에게 멸망을 당한 민족의 수치는 대대로 잊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 관한 것이 이미 예레미야 선지자로 예고된 일이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로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 주 앞에 자복하였다면 긍휼하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포로로 넘기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여러 강변에서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한 말씀은 의미가 심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각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을 받을 때마다 포로된 나라의 강가에 주둔하였습니다. 포로로 잡은 국가는 그들을 관리하기 위해 강가에 주둔 시킨 것입니다. 이방의 땅 강가에 앉아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 하나님께 예배드리던 생각을 하면 참으로 서글푼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가를 상실한 그들에게는 더 이상 성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2절에서 구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를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슬픈 애가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성전에서 수금을 타고 기쁨으로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이스라엘은 찬송을 드릴 성전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은 국가들이 자기들을 위해 시온의 노래 곧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송을 받으시는 여호와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이스라엘을 위한 찬양이 아니라 이방 곧 자기를 포로로 한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찬송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탄식한 것입니다.

 

II. 예루살렘의 기억

다윗은 5절에서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기록하였습니다. 참으로 슬픈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위한 찬송이 아니라면 차라리 내 손이 수금을 탈 수 없게 되기를 그 재능을 상실하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다윗은 계속하여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6) 하였습니다. 이러한 심정은 이방의 포로가 자기 가족과 자기 나라가 아닌 대적을 위해 일을 해본 사람들만이 겪을 수 있는 심정일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일본 전쟁에 징용으로 끌려가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희생 당하였으며 수많은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외군들의 성적 노리개 생활을 했어야 했습니다. 지금 다윗은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용한 삶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살아 있으나 죽은 목숨과 같았으며 그들의 노래는 차라리 벙어리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기도하여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7)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다윗은 1절에서 바벨론 강변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일은 느브갓넷살 왕의 통치를 언급한 것입니다.

 

그런데 7절에서 에돔자손을 멸하여 달라는 기도는 그후 한참 후의 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말한 것입니다. 에돔자손은 에서의 자손으로 그 마지막 후손은 사실 헤롯가문을 의미합니다. 그로서 에서에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하신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예언은 이중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언의 성취는 궁국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언급한 것입니다.

 

헤롯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시기하고 싫어하여 예수께서 태어나신 해 두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은 헤롯가문의 조롱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땅에서 에돔의 자손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바벨론의 땅 곧 느부갓넷살의 후손들 곧 메대와 바사의 후손들인 이락과 이란과 애굽과 시리아와 후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아 죽인 로마제국의 후손들도 모두 이 땅에 존재합니다만 에돔의 후손은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III. 바벨론의 멸망

다윗은 8절에서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기록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그리스도의 대적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계시록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후일 계시록 기자는 자주 빛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음행의 포도주 잔을 들고 있는 땅의 음녀 곧 큰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하여(계17:35),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18:3) 저주하였으며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 경고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끝으로 다윗은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반석은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고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눅20:18)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퉁이 돌이신 자신과의 관계를 언급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스스로 돌 위에 떨어져 깨어지겠습니까? 후일 가루가 되어 흩어져 흔적조차 없는 존재가 되시겠습니까? 어느 것이든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

 

출처 : 크리스챤 상담실
글쓴이 : 살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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