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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135:13) 아름다운 여호와의 명성

이요나 2007. 2. 26. 10:10

(시편135:13) 아름다운 여호와의 명성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기념이 대대에 이르리이다(13)

 

오늘 이제 우리는 시편135편부터 138편까지를 공부하게 됩니다. 시편 끝이 가까울수록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열정이 더욱 뜨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왜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오르며 시편의 노래를 불렀는지 이해가 됩니다. 이에 비하여 오늘날 우리 교회들은 시편에 대하여 너무 인색한 것 같습니다. 성도들이 시편을 좋아하면서도 너무 편 수가 많아서 공부하기도 지루하고 또 입맛에 맞는 것만을 골라 먹으려는 습관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I. 찬송 받으실 여호와의 이름

시편 135편은 할렐루야 노래 중에 하나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111편부터 118편 그리고 146편부터 150편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할렐루야 시편은 그 표제가 할렐루야 곧 여호와를 찬양하라 는 명령이 표제이며 그 시작과 끝에 할렐루야로 인을 쳐 알파와 오메가로 확정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A. 찬송의 대상은 누구인가?

다윗은 왜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것은 우리에게도 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하고 송축하여야 하는가를 묵상하게 하는 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먼저 다윗은 1절에서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 사역자 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할 일들 즉 삶의 우선순위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여호와의 집 하나님의 전정에 섰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송하라(2,3) 하고 주의 종들을 깨우쳤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전정이란 곧 성전의 뜰을 말합니다. 이것은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집 곧 하나님의 성전의 뜰에 기거하고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여호와의 집이란 커다란 의미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그 성전은 파괴되고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하늘과 땅의 나의 것이요 내가 사람의 손으로 지으신 장막에 거하겠느냐 하셨습니다. 그로므로 오늘 우리는 여호와의 집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나머지 성전 건축에 경쟁을 하여 너무 막대한 물질을 허비하고 하나님의 본 뜻을 상실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처소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속한 모든 것들을 그가 지으셨고 만물의 그의 뜻 가운데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3절에서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 하신 것입니다.

 

B. 찬송 받으실 여호와는 누구이신가?

다윗은 4절에서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주께서 택하신 것은 특별히 그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리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로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엡1:3-5)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여호와의 종들에게 여호와의 아름다운 이름은 찬송하라 하신 뜻은 그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습니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습니다(요17:6)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다 하시며 저희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다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오신 것인 줄 알았습니다. 말하시며 다시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아오니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습니다(요17:7,8)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을 저희에게 가르치셨음을 언급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입니다(요17:14) 하셨습니다. 주님은 여기서 제자들이 무엇을 중요시 해야 할 것을 간접적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계속하여 주님은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 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입니다 하시며 거듭하여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오신 말씀을 모두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다(요17:17)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 이름이 선하고 아름답다는 말씀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격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II. 여호와의 위대하심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는 광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보다 높으시도다(5)

 

A. 광대하신 여호와 하나님

이제 다윗은 자신이 알고 있는 여호와에 대하여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그는 여호와는 광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보다 높으시도다(5)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말한 광대함이란 여호와의 권능을 언급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권위와 지배와 권능과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 모두를 말한 것입니다.

 

또 다윗이 알고 있는 것은 우리의 주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높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윗이 세상의 신들이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의 문제점은 신들로부터 감각이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사람들은 그 삶의 범위가 창조하신 일차원의 세계와 관계를 갖고 있어서 눈에 보이는 하늘의 일월성신과 땅과 바다에 있는 큰 물건들을 신으로 삼고 그에 절하였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되면서 과학이 모든 물질세계를 지배하면서 사람들의 신적 대상은 1차원 세계에서 이상적인 세계로 옮겨갔습니다. 그로하여 철학과 이념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고 지금의 세상은 또 그 사상들의 지배 가운데서 벗어나와 육체의 즐거움 곧 쾌락의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들은 사실 처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여인들을 따라 들어 온 바알과 몰렉신을 섬겼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재물의 신이 되었고 또 쾌락의 신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다른 신들과의 다른 점을 증거하여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의 모든 깊은 곳에서 행하셨으며 안개를 땅끝에서 일으키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시며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시는도다(6,7)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 거한 그의 창조하신 사람들을 위해 정하신 하나님의 경계를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은 철학과 우상을 섬기는 아데네 사람들을 향하여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시며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의 한계를 두셨다(행17:24-26) 증거하며 이는 사람으로 하여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라 증거였습니다.

 

B.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들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택하신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증거하여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원하신 일과 이스라엘을 놓아 주지 않으려던 애굽에 저주를 내리신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를 진노의 그릇으로 모세를 긍휼의 그릇으로 삼으셨다 증거하며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로심으로 관용하셨다(롬9:17-22)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애굽은 우리의 육신 된 우리의 고집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믿음에 순종하여 육신의 노예로부터 벗어날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에 대하여 언급하며 그를 대적하는 많은 나라들을 멸하시고 아모리 왕의 시혼과 바산 왕 옥과 가나안 왕들을 죽이셨다 증거하였습니다. 아모리 왕의 시혼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가기 위해 그 땅을 통과하기를 청하였으나 거절하고 군대를 이끌고 나와 이스라엘을 대적했으며(민21:21-23)

 

또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가장 막강한 세력을 가진 바산 왕 옥을 물리치시고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어 각 지파에게 분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저희 땅을 기업으로 주시되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도다(12) 증거하였습니다. 사실 가나안 땅은 4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미리 기업으로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입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룩하지 않은 집과 기름진 옥토였습니다.

 

III. 기업으로 삼으신 이스라엘

   A. 모든 땅을 기업으로 주심

다윗은 13절에서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기념이 대대에 이르리이다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주의 기념이란 하나님의 명성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들은 그의 언약하신 땅으로 인도하실 것에 대한 언약과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은 항상 미래지향적이다. 또 성경의 예언은 이중성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이룬 것과 나중에 성취될 일들이 대유하여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제 있었던 일들이 오늘에 있을 것이며 오늘의 일들이 내일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신 거울과 같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열방 중에서 택하신 자기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물려 받을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 영과 혼과 몸이 모두 온전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로하여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의 육체를 참으시고 한날을 정하여 우리 모두가 온전한 회개에 이르기를 기다리시고 계십니다다.

 

바울은 우리가 다 반듯이 그리스도의 앞에 나아가 그의 심판을 받으리라 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과 같이 심판 받을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험과 연단으로 더러운 육체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의 인내를 언급한 것입니다. 이로서 우리가 말씀으로 책망을 받고 성령의 애통케 하심으로 거룩한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B. 사람의 수공물 우상

다윗은 15절에서 열방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말하여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그 입으로 아무 기식도 못한다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자신을 위해 복을 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섬기는 우상처럼 동일한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을 기록한 후에 우상에 관한 경계를 기록한 것은 커다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강한 팔 애굽의 손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기업의 땅에 들으셨거늘 다시 우리는 재물과 쾌락에 빠져 다시 바알을 섬기며 몰렉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로 삶의 능력을 삼고 스스로 능력자의 자리에 앉으며 형제를 부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기도 하며 어떤 사람들은 외국산 스포츠카를 타고 술과 마약과 오락과 게임에 빠져 새로운 도박에 인생을 맡기기도 합니다. 다윗은 이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C. 예루살렘과 시온

그러면 다시 우리가 이러한 올무에 억매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다윗은 이스라엘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아론의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레위 족속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19,20)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백성들로 오직 여호와의 기쁨 속에서 살아갈 것을 권면한 것이며 그 책임을 맡은 제사장과 레위지파들이 솔선하여 성결할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문제는 모두 목사들과 교회 재직들에게서 비롯됩니다. 가장이 잘못하고서야 어찌 자손이 잘되겠습니까? 주께서 아론지파를 택하신 것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백성들에게 바로 가르치시게 위한 것이며 레위지파로 성전을 섬기게 한 것은 아론을 도와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행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여 예루살렘에 거하신 여호와는 시온에서 찬송을 받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출처 : 크리스챤 상담실
글쓴이 : 살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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