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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125-129) 진실한 삶을 위한 믿음의 권고

이요나 2007. 2. 26. 10:11

(시편125-129) 진실한 삶을 위한 믿음의 권고

 

(시편125:1) 이스라엘의 평강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2)

 

I. 요새 예루살렘

시편 125편은 성도의 믿음생활과 관계된 노래입니다.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면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보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다 하겠습니다. 시편기자는 1절에서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라고 영원히 있음과 같도다 하였습니다.

 

시온산은 원래 잇사갈 지파에 분배되었던 산(수19:19)으로 난공불락의 견고한 성읍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후일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 예루살렘 성을 시온성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시온산이란 오늘날 교회를 의미하며(히12:2) 그 어느 세력도 범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집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의뢰 하는 자 여호와의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뢰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여호와를 신뢰한 사람은 우선 아브라함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갈 곳을 알지 못하는 믿음의 세계로 모험의 여정을 떠났습니다. 또 그는 자신의 육체의 죽음을 알고도 너와 너의 자손에게 열방을 주시겠다는 여호와의 말씀을 믿어 의인이란 칭호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순종과 믿음은 여호와를 신뢰할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다윗은 2절에서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같이 두르시리로다 기록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에 지어졌습니다. 그 터는 반석으로 거대한 암반 위에 세워졌으며 이방이 침공할 수 없는 요새 중에 요새였습니다.

 

다윗은 지금 여기서 하나님과 관계를 가진 성도들의 완전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 가운데 처하여 있더라도 주의 성도들은 그 어떤 세력도 미칠 수 없는 완전한 성에 거한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단회성이 아니라 영원성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영원한 것입니다.

 

II. 선의 질서

A.     악의 세력

계속하여 다윗은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에 미치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으로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3) 권면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시온성과 같이 완전한 자의 신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의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속죄함을 받은 자를 말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지성소의 시온좌를 속죄좌라고도 부릅니다.

 

나는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에 미치지 못하리라 는 말씀에 흥미를 갖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사실은 악인의 권세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막강한 세력으로서 이 땅에 그 누구도 악인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들의 권세는 세력의 신으로부터 나오므로 권세와 재물이 그들의 영광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 세력의 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세상의 신으로부터 성별한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세력의 신이 미치지 못합니다. 그는 죄로부터 성별된 의로운 자녀이므로 그의 주인은 만군의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에 미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의인으로 죄악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의 업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 된 의인들이 살아가는 방법 즉 생활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탐색하는 자와 술 취한 자와 재물에 탐욕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을 받지 못할 것이라 증거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방법입니다. 세상은 원래 죄를 바탕으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에서 성별된 거룩한 성도들은 오직 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의인이 되었음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정직한 길인 것입니다.

 

B. 죄악과 악인의 속성

다윗은 4절에서 여호와여 선인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선을 행하소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선인이란 여호와와 마음을 합한 자를 말합니다.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악인의 권세가 미치지 못하기 위해서는 정직하여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끝으로 다윗은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를 여호와께서 죄악을 짓는 자와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는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듯이 죽을 것이로되 영으러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3,14) 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믿는 곧 의인된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좇는 자들은 우리를 죄 가운데 버려두어 죄악을 짓는 자와 함께 다니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의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 자들을 저희의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셨다(롬1:21-24)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택하시고 빼신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의로운 성도에게는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시편126:1) 교회의 기쁨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2)

 

I. 해방의 기쁨

다윗은 126편에서 세상의 세력에서 구속된 성도 곧 교회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 기쁨을 노래하여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1)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들이 세상의 포로 곧 세상 세력에 발목을 잡힐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를 쓰고 있는 다윗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자로 장차 천년 후에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여 죄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최근 미국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3천만 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전미복음주의자연합(NAE) 대표이며 새생명교회의 당회장인 테드 헤거드 목사가 동성애자로 발표 되어 커다란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는 2004년 매사추세츠주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자 전국을 순회하며 반대 모임을 조직했을 뿐 아니라, 지난해에는 콜로라도주에 상정된 동성결혼 금지법안이 통과되도록 다른 교단 지도자들과 함께 지원하는 등 동성애 반대운동에 적극 앞장서 왔던 목사이며 백악관과 공화당 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위치의 복음주의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젊은이와 3년동안 돈을 지불하며 동성애를 즐겨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으로 그의 의인의 삶이 종결되리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의인을 넘어뜨리려는 사단의 세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단의 끊은 우리 가까운 곳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뱀의 후손이 너의 발꿈치르 상하게 할 것이라(창3:15)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서 세력의 신을 육체로 비유하는 것은 부분적인 것이기도 합니다만 바울은 나를 시험하는 것이 내 몸에 있다 하였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육체의 시험으로부터 해방을 한 경험이 있는지요? 동성애, 성중독, 알코올, 마약, 게임, 스포츠와 같은 사슬에 매였던 사람은 익히 그 해방의 기쁨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도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의 기쁨을 발견할 수 있으며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의 기쁨을 보게 됩니다. 이 모든 놀라운 기사를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3절에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한 우리 속에 당신과 내가 포함된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세상 신의 세력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노래하며 그 기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기쁨을 노래한 것입니다.

 

우리는 신명기에서 출애굽의 기쁨을 노래한 미리암의 노래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사기 5장에서 가나안 야빈왕의 철병거 구백승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드보라의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시록 15장에서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다시 듣게 됩니다. 이것은 사단의 포로에서 온전히 벗어난 이스라엘의 남은자들의 노래인 것입니다.

 

II. 씨 뿌리는 자의 기쁨

다윗은 4절에서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리소서 기원하고 있습니다. 남방 시내란 그리스도의 자유하심 속에서 유유히 흐르는 평강의 강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에스겔서에서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가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도 헷데겔 큰 강가에서서 세마포 입은 주님을 만났습니다. 또 우리는 계시록 22장에서 길 가운데로 흐르는 하나님의 강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유유히 흐르는 복음의 강을 언급한 것입니다.

 

다윗은 5절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의 문장과 좀 떨어진 이야기 같습니다. 어쩌면 다윗은 지금 우리 앞에 선문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윗은 지금 여기서 이방의 포로 된 복음적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세상 가운데 흩으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복음의 역사를 언급한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만 물론 이스라엘은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주께 징계를 받아 이방을 들어 이스라엘을 멸망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고통의 눈물을 씹으며 이방 가운데서 모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고통의 눈물 속에서 여호와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았으며 남방에 유유히 흐르는 시내를 바라보며 의인의 거룩한 삶을 살기를 힘썼습니다. 다시 말하여 그들은 그때서야 시온의 능력과 예루살렘의 복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방 속에서 의인의 삶을 살기를 힘썼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같이 육신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계속하여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령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6) 노래하였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들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세상 가운데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동족의 학대와 이방의 칼날을 무릎쓰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복음의 씨는 오늘날 전세계 가운데서 기쁨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의 안일함에 대하여 매우 근심스럽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그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 말하며 포도주에 취하여 있을 때 임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매우 임박한 때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포도주에 취하여 앞뒤분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우리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나니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야 말하면 무엇하겠습니까? 주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가 가까운 것입니다. 참고 인내하며 복음의 씨를 보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127:1) 완전한 승리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1)

 

다윗은 오늘 시편127편에서 우리 인간사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성전을 향한 찬송에서는 교회와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노래한 것이라면 127편부터 129편까지는 하나님의 성도들의 실제 삶에서의 생활태도에 대하여 교훈한 것입니다. 

 

I. 사람의 수고

시편기자는 서두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큽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성도들이 실제적인 삶의 방법과 태도를 언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믿음생활 속에서도 때때로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잊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며 믿음은 영혼에 관한 정신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실제의 삶의 경영은 제 스스로 하려는 태도를 갖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성도들에게 있어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사실 실제로는 잘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주님을 사랑하고 주의 백성이라 하며 찬송과 예배와 기도를 드리지만 실제 생활에 있어 주 하나님은 종교적인 위치에 놓기 일 수 입니다. 다시 말하여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로 섬기겠사오니 하나님은 높은 곳에 앉아 내 예배를 받으시고 나에게 복을 주십시요. 그러면 내가 열심히 나의 집을 일으키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 여호와 하나님은 절간의 부처나 세상 사람들이 믿는 신과 별반 다른 것이 없다 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생활에 들어 와 계셔서 내 인생에 직접적으로 간섭하시고 친히 나의 인생을 경영함을 감사드립니다. 만약 주께서 나를 경영하지 않으셨다면 오늘 나는 범죄자가 되어 주를 대적하며 많은 사람들을 실족하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노년에 이 지혜를 깨달은 솔로몬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 나느니라(잠16:1) 말하였으며 다시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을 이루리라(잠16:3) 권고하였습니다.

 

다윗은 2절에서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놀고 있어도 주께서 모두 성취해 주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도 그 시작과 성취의 모든 과정에서 주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않된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과거 예수를 영접한 후에도 이미 시작하던 유흥업을 날로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때 나를 지도하던 교회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기 보다는 축복이라는 미명아래 성령충만에 초점을 맞추고 성도의 믿음을 훈련시켰습니다. 그러니 성도들은 내가 무엇을 하던지 말던지 오로지 부를 축적하면 된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잘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축복하신 것이라 생각하게 되고 교회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몇 해 전 깡패 조직의 보수가 수감되어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유명한 목사를 만나보고 그의 기도와 권면과 그의 도움을 받아 교도소에서 출감을 하였습니다. 그의 회심에 관한 기사는 그를 지도한 목사의 사진과 함께 국민일보에 종교란에 대서 특필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그 목사의 아들의 연예인 처와의 이혼문제에 개입하여 협박을 하다가 입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범죄에 연루되어 교도소에 다시 수감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믿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여 삶의 지혜를 발견하지 못한 결과로서 성도들에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지 않은 교회의 책임이라 하겠습니다.

 

다윗은 여기서 우리의 모든 삶의 출발 다시 말하여 우리가 경영하는 모든 사업의 시작과 출발이 하나님 뜻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먼저 우리가 하는 업이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성도로서 마땅한 것이냐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고 일어나는 가운데 그 사업을 융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막4:26,27)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뜻 가운데서 행한 일들은 주께서 그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히 잠들 수 있는 것입니다.

 

II. 성도의 기업

다윗은 3절에서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녀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가르친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자식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업을 잇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가지 위한 것을 뜻한 것입니다.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는 말씀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여 쉽게 자식을 얻는데 어떤 사람은 자식을 갖기에 무던히 애를 써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성경에서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온 사람들은 모두 기업을 이어갈 자녀를 얻기까지 오랜 세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한 아들을 얻기 위해 100세가 되었으며 이삭도 자식을 얻지 못하여 아내를 위해 기도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 위해 눈물로 애통의 세월을 감수했어야 했습니다.

 

성경은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갈4:27)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업에 속한 자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녀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 증거하였습니다.

 

다윗은 계속하여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4,5). 이 말씀은 그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이것은 일찍 장가를 들어 많은 아들을 낳을 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식이 많은 자는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젊은 자의 자식이란 하나님 앞에 바로선 자를 의미합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2:14) 하였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복음의 자녀들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많은 아들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이 될 태의 열매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비록 한 아들을 얻었으나 원수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수많은 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율법사와 장로가 있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기업을 잇지 못하고 오직 성경에 기록되신 아들들이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시편128:3) 복의 원리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를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1)

 

I. 사업의 형통

시편 128편도 성도의 삶의 원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 가슴에 새겨 둘 말씀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서두에서 그 복의 기원을 말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를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였습니다. 먼저는 여호와와의 관계를 언급한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의 도를 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야고보는 너희는 도를 듣고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 하였고 바울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그 보응을 받으리라(롬1:6)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도를 지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두번째로 다윗은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도를 따라 행하게 되면 우리가 행하는 만사가 헝통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네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축원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는 일마다 복을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II. 가정의 복

다윗은 3절에서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인생에 있어 무엇을 중요시 하여야 할 바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세상 가운데 사업에 열중하는 나머지 가정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 연고로 대형교회 목사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다윗은 다른 것은 성공하였다 해도 자녀 농사에는 실패를 본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세우셨지만 다윗은 자식들로 인하여 머리에 재를 써야 했습니다.

 

우리는 역대 대통령들이 자녀로 인하여 큰 물의가 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자녀들에게 가당치 않은 것을 물려 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재물과 명예를 이어가려 할 때 시기와 질투가 나며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문제는 그의 삶의 중심이 가정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밖에서 성공하고 가정에서 실패를 한다면 그 성공하는 바의 목적이 무슨 영화를 누리겠습니까? 이로서 영웅호걸들의 사후사가 부끄러운 것입니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다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4)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였습니다. 인생에 있어 이보다 복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다. 금은보화를 얻으러 투쟁하여도 그 마음을 채우지 못하고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인생 중에서 평생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복을 얻는다면 그보다 더한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윗은 여기서 교회의 복을 언급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 소망 안에서 장래 그리스도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받을 복을 미리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어쩌면 계시록을 미리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가르침을 따라 행하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시129:3) 성도와 세상의 끈

밭 가는 자가 내 등에 갈고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3)

 

I. 악의 속성

다윗은 129편에서 교회가 당하는 고통을 언급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랜 투쟁이기도 하며 인내와 온유의 세월을 노래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서두에서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저희가 나의 소시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게 하였도다 술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고난을 볼 때 그들은 아직도 고난 가운데서 애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의 복을 노래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예루살렘의 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의 고난에서도 주의 은혜에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저희가 나의 소시로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게 하였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2) 하였습니다.

 

다윗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당하는 고통을 말하여 밭 가는 자가 내 등에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하였습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비유입니다만 이것은 끈질기게 역사하는 세상의 끈을 말한 것입니다.

 

과거 노예들은 등에 채찍을 맞으며 일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소유를 늘리기 위해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그 등에 고랑을 길게 지었던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계속 노사분규로 기업과 노동자들의 마찰이 심각합니다만 모두가 밥그릇 싸움이라 하겠습니다.

 

다윗은 4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의 줄을 끊으셨도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그의 백성을 돌아 보고 계심을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모두 알고 또 보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가 되어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무릇 시온을 미워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여 물러 갈지어다 하였습니다.

 

II. 축복함을 거부

흥미로운 것은 우리 눈에는 의인은 연약하고 세상의 것이 왕성한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열방 중에서 그 이름이 끊어지지 않았으나 그를 핍박하던 이방은 수없이 망하여 그들의 영화로운 이름은 그 흔적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이를 가리켜 다윗은 저희는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6) 하였습니다. 새들이 풀을 먹을 때 그 씨가 들어와 지붕 위에 씨를 떨어뜨리게 됩니다. 그 풀은 땅을 얻지 못하고 곧 시들어 죽고 맙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기업을 얻지 못한 자들은 지붕에 난 풀 같아서 추수하는 자들에게 만족함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냇물에 심기운 나무는 그 뿌리가 깊고 매일 맑은 물을 얻음으로 그 뿌리가 힘을 얻고 잎이 무성하며 곧 열매를 맺어 농부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시온의 복을 얻지 못하는 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 누구로부터도 축복을 빎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복을 말하여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은 우리의 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기뻐하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시온의 복을 빌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축복할 때 하나님의 복이 그의 영혼에 가득하여 그가 범사가 잘 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축복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대로 우리가 시온의 복을 받게 하시고 예루살렘의 영광을 누리게 하옵소서. 내 마음이 주 앞에 항상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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