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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132:12) 다윗의 교회의 면류관

이요나 2007. 2. 26. 10:11

(시편132:12) 다윗의 교회의 면류관

 네 자손이 네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저희 후손도 네 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12)

 

우리는 시편을 통하여 다윗의 위대한 믿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상실치 아니하고 범죄를 하였을 때나 실패를 하였을 때나 환난을 당할 때에나 늘 하나님을 찬양하며 두 손들 들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믿음의 가중 보배로운 증거는 그의 믿음의 터가 성전을 향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I. 다윗의 근심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종 다윗의 근심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종들의 근심이기도 합니다. 성전을 짓기 위한 다윗의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서두에서 다윗이 자기 이름을 내어 놓고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근심한 것을 기억하소서 하였습니다. 다윗은 여기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자기의 입으로 고백할 수조차 없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오늘 주께 자신의 근심을 기억해 달라고 한 그 고백의 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이 세상을 평정한 후 그는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겨 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잘못 다룬 범죄를 경험한 바 있는 다윗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를 수레에 실고 모든 악기로 여호와를 찬양하며 옮겼습니다.

 

그러나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를 때에 소들이 뛰자 웃사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궤를 붙잡자 여호와께서 그를 처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이를 본 다윗이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궤를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두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대상13장 참조)

 

그 후 다윗은 백향목으로 궁궐을 짓고 궁전에 한쪽에 장막을 치고 하나님의 궤를 두고 레위인과 제사장을 성별하여 화목제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에서는 늘 근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호화로운 궁궐에 잘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장막 한쪽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대상15,16장 참조).

 

어느 날 다윗은 선지자 나단과 마주하였을 때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밑에 있도다(대상17:1) 하며 자신의 심중의 고통을 털어 놓았습니다. 나단은 다윗에서 근심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십시요 라고 성전을 지을 것을 권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이 신이 나서 밤을 설치고 성전을 지을 마음에 들떠 있을 때, 그날 밤 하나님은 나단에게 다윗에게 가서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그러니 다윗의 근심이 얼마나 더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행히 성전건축에 지나치게 열성이라서 다행이지만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 큰 은혜를 입어 부귀영화를 홀로 누리고 있는데 당신이 섬기는 교회는 자립을 하지 못하고 월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만약 양심에 근심을 느끼지 못하고 편안한 잠을 자고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믿음을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이 때의 자신의 마음을 토하여 저가 여호와께 맹세하여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시기를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란 야곱이 서원한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까지란 말입니다.

 

여기서 다윗이 여호와를 가리켜 거듭 야곱의 전능자 라고 하는 것은 형제 중에 택하신 복과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 온 자신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복락을 위한 일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투쟁을 합니다. 그 투쟁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기도 하고 서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끝자락을 따라가 보면 결국 자신의 부귀영화와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인간의 타고난 태성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입술의 고백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다윗도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들고 예루살렘을 치려 할 때에야 그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태어남으로부터 택하심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장자의 축복을 받아내기 위해 꾀를 썼다가 형 에서의 미움을 받아 줄행랑을 놓아야 했습니다. 홀연단신 객이 된 야곱이 광야에서 돌 베개를 지고 잠을 자다가 하늘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천사를 보았습니다. 놀란 야곱은 잠에서 일어나 이곳이 하나님의 문이요 하나님의 집이로다 고백하며 하나님께 서원하여 여호와께서 나의 가는 길에서 동행하시고 나를 아비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이 돌은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며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드리겠나이다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십 여 년 만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을 뵙고 브엘세바에 올라갔습니다.

 

시편기자는 6절에서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기록하였습니다. 에브라다는 예루살렘 남쪽 8키로 떨어진 베들레헴을 뜻합니다. 이곳은 야곱의 처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의 궤와 관련된 이스라엘의 굴욕의 역사를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사무엘상 5장부터 7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울왕 때에 여호와의 궤는 수난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지혜가 부족했던 사울은 전쟁터에 언약궤를 들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 군사들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자식을 잘 양육하지 못하여 죽임을 당한 무능한 엘리 제사장의 때였습니다. 그는 바로 위대한 제사장 사무엘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언약궤를 빼앗은 블레셋 사람들은 그 언약궤를 어찌 할 바 몰라 아스돗에 있는 다곤신전 안에 모셔 두었으나 아침에 나와 보니 다곤신의 머리와 손과 발이 잘려 넘어져 있었습니다. 더욱이 두려운 것은 아스돗에 독종이 내려 그 지역이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송아지에 수레를 메어 하나님의 언약궤를 벧세메스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보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처서 오만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여호와의 궤를 기럇여아림에 사는 제사장  아비나답의 집으로 들여 놓고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성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섬기게 하였습니다. 이때로부터 이십 여 년 동안 여호와의 궤는 기랏여아림에 있었습니다. 그곳은 실로라고도 부르는 곳으로 사무엘이 언약궤를 섬기며 살던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 성전으로 언약궤가 옮겨지기까지 이스라엘의 성막이었습니다.

 

다윗은 궁궐을 짓고 왕으로서 위엄을 떨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죄스런 마음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전을 지으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다윗의 손으로 성전을 짓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겨 온 것입니다. 그때서야 다윗은 성전의 의미를 발견한 것입니다. 성전을 웅장하게 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향한 사람들의 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언약궤 속에는 모세에게 주신 돌판에 새기신 계명과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궤 위에 금으로 새겨 만든 그룹천사 둘이 날개를 펴고 마주 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신은 그곳에 임재하여 백성들을 만나셨습니다. 이것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은 아론의 자손들을 성별하여 제사장 직무를 밭기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언약궤를 생각할 때 언약궤는 어떤 상징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돌비와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는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끌어 오시며 백성들 속에서 살아 오신 하나님의 증거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친히 그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 곧 이스라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 역사 속에 하나님의 신이 좌정하여 백성들의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이 의미하는 호화롭고 웅장한 외적인 것이 아니라 주의 백성들과 함께 하신 사신 하나님의 증거 곧 언약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호화로운 궁전에서 하나님의 궤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성전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근심에 빠져 밤을 세우던 다윗이 결국 여호와의 진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 하리라 한 것입니다.

 

II. 성실하신 여호와의 맹세

이제 다윗은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7) 외치며  주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강권하였습니다. 참으로 얼마나 솔직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께서 인간의 욕망처럼 호화로운 성전에 앉기를 원하시지 않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어떻게 깨달았을까요? 그는 그 진리를 깨닫기 위해 밤을 새며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성경에 기록된 여호와의 궤에 관한 하나님의 증거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9)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대한 진리의 선포 중의 하나로서 이 땅의 모든 사역자들이 함께 살펴 보기를 원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지금 다윗은 성전과 관련하여 중요한 진리를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우유죽순처럼 세워지고 있고 성전건축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다윗과 같은 고민일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이야 어느 목회자던 성도든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외형적 성전의 아름다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다윗은 저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으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의란 하나님의 가장 주된 품성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기도하라 말씀하셨으며 제자들에게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들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또 주님은 보혜사 우리를 위하여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증거하실 것이라 하시며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하늘로 올라 갔음으로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 보아야 할 것은 의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과 같이 하늘의 아버지 앞으로 올라 갈 수 있어야 할 것을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성취하지 못하면 능히 아버지께 갈 수 없음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주의 종에게 속한 것을 말한 것입니다.

 

만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하여 가장 웅대하고 기막힌 설교와 최고의 프로그램을 갖고 교회를 운영한다고 하십시다. 그러나 그 교회의 지도자가 의롭지 못하여 재물과 음행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결국 아름다운 교회가 아니라 가장 추한 사단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나는 최근 메스컴에서 미국 최고의 크리스챤 연합회 대표이며 저명한 뉴라이프 처치의 담임 목사 태드 하가드 목사의 동성애 사실을 읽었습니다. 전 미국 경건한 성도들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폭로를 통해서 그에게도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랍니다만 어쨋던 3년 동안이나 동성애를 즐겨 왔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목회자로서의 의를 상실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제사장의 의를 입으라 권하며 주의 성도들의 즐거움을 권고한 것이니다. 이것은 한켤레의 신발과 같이 사역자의 의로움은 곧 성도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10) 간구하였습니다. 이것은 국가 통치자와의 종교와의 관계를 언급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신정 국가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종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그 메시지를 받은 왕은 하나님의 뜻을 살펴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다윗이 위대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설 수 있었던 것은 사무엘과 같은 의로운 제사장과 나단과 갓과 같은 의로운 선지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로하여 사무엘은 실로와 곳곳에 예언자 학교를 세워 기름 부은자의 영광이 끊이지 않도록 힘을 쓴 것입니다.

 

III. 다윗의 면류관

이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하여 주께서 자신에게 맹세하신 말씀을 생각하며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11) 되새겼습니다. 여기서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둔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메시야 언약입니다. 잘못생각하면 우리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언약은 네 위에 두리라 하셨으므로 다윗의 왕위가 사실상 그의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곧 다윗의 조상이란 말씀과 같습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나를 보고 기뻐하였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네 씨가 열방을 다스리라 하신 말씀은 이삭을 말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담의 언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멸할 것이라 한 말씀도 후손은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성경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맹세가 성실히 지켜 지고 있음을 알았고 또 이루어 질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계속하여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내 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12) 하신 주의 말씀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장차 이 땅의 복음을 이끌어 갈 그리스도의 종들에 관한 언약입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된 기업을 물려 받을 자들입니다.

 

이제 다윗은 주의 예정하심을 말하여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에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13,14) 이는 곧 영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그의 날을 정하여 그와 함께 영원히 사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온에서 주와 함께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이것은 실제적인 삶의 복이기도 합니다. 주께서는 내가 이 성은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의 기업을 이끌어 갈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땅의 교회라 칭하는 모든 교회가 얻을 복은 아닙니다. 12절에서 말씀하신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그리스도의 후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는 그들에게 이 땅의 환난을 면하게 하고 연린문을 두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은 거듭하여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라(16)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종들에게 임할 고난의 때를 언급하신 것입니다. 바울도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 곧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이니 우리가 장차 그와 함께 받을 영광을 위하여 고난도 받아야 할 것이라 증거하였습니다.

 

끝으로 시편기자는  다윗에게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부은자를 위하여 등을 준비하였도다 내가 저의 원수에게는 수치로 입히고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17,18)

 

우리 말에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복을 누린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시련과 인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였습니다. 그 결과 선진들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권세를 누리며 장래를 보장 받았습니다. 그것이 최종적인 면류관입니다.

 

계시록 기자는 계시록 끝장에서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광명한 새벽별이라(계22:16) 기록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미 계시록을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할까요? 웅대하고 장엄한 성전을 짓고 그 위에 군림하며 자기의 화려한 옷을 짓겠습니까? 아닙니다. 세상이 다 그럴지라도 나와 나의 집은 다윗에게 언약하신 말씀을 따를 것이니외다.

 

솔로몬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 나느니라(잠16:1) 하였으며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 증거하하였습니다. 부디 당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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