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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119:57-89) 주 여호와의 택하신 기업

이요나 2007. 2. 26. 10:12

(시편119:57-89) 주 여호와의 택하신 기업

 

(시편119:57) 나의 영원한 기업

(시119:57)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나의 분깃이란 나에게 분배된 소유를 말한 것으로 상속, 배당과 같은 말입니다. 따라서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란 주 하나님께서 내 삶의 기업이 되신 것을 말한 것으로 인생의 최고의 가치를 언급한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한 세상 살아가면서 자기의 소유를 얻기 위해 땀 흘려 일을 합니다. 물론 부모로부터 재산을 상속 받기도 하고 선대가 이루어 놓은 기업을 물려 받기도 합니다. 또 우리가 국가나 사회의 어느 단체에 소속되어 노동의 대가를 분배 받음으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높여가게 됩니다. 결국 사람들은 한 세상 살아 가는 동안 많은 소유를 배당받고 그것을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물려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중국과 인도를 위시한 동남아 개발도상국가들의 열정적 도전으로 국제 무대에서 점점 국가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의 정책이 바로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오늘의 현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부동산과 물가는 세계 최고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물거픔 현상인지 실제적 현상인지 분간하기 조차 힘들 정도로 하루가 멀다하고 땅값이 하늘을 치솟고 있습니다. 이제 서민들이 집 장만하는 시대는 물 건너 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세상의 기업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장막은 이제 곧 낡아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장막은 그리스도의 날에 하늘의 기업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이 땅의 많은 소유를 갖고자 다투는 것은 실로 허망한 일입니다. 고대 어느 제왕들도 자신이 이룩한 기업을 자손대대로 지키지 못하고 멸망하였습니다. 그로하여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땅을 영원히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땅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심판의 날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하신다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대기업의 총수들을 보더라도 자신이 이룩한 기업을 그 자손들이 지키지 못하고 허망한 인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기업가들은 재산에 연연하지 말고 다음 세상에서 받을 기업을 소망하며 생애에 덕을 쌓아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57)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분깃이 주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관계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사울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 하였기 때문에 그의 왕위를 폐하시고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자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주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라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주의 기업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만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은 우리가 땀 흘려 모으는 세상의 기업과는 다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주의 뜻대로 산 자들에게 공평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란 우리의 어떤 조건적 상황과 노력과 관계없이 긍휼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 베푸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내가 전심으로 주의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58) 하였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성전에 선 죄인 된 자의 애통하는 기도와 의인이라 자청하는 자의 거만한 기도를 들으시고 주 앞에 죄인 됨을 고백한 자가 의의 값을 받고 평안히 돌아 갔다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용서받은 죄인들에게 베푸신 은혜의 상급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다(59)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한 세상 살면서 세상의 악의 세력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지키며 의로운 삶을 살고자 하면 할수록 악의 세력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삼키려 달려 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 곧 믿음이며 이 믿음은 주의 법 곧 주께서 세우신 의로운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세상으로부터 유혹을 받게 됩니다. 특히 크리스챤이라 하는 사람들의 교만한 자랑과 허탄한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충동을 받게 되고 고이 지켜왔던 믿음은 분해되어 마음 속에서 탐욕이 솟구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로다(62) 하였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우리의 발길을 지키는 것은 오직 주의 말씀뿐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주를 경외하는 자들과 함께 하여야 합니다. 허탄한 데 꿈을 꾸는 자들로 인하여 심신이 피곤해지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자랑 이승의 자랑에 가득한 자들에게 발뒷굼치를 물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의 동무라(63) 하였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인자가 더하여 지는 것입니다.

(시편119:65) 시험과 고난의 지혜

(시119:65)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였나이다

 

흥미롭게도 다윗은 아홉번째 단락에서 하나님의 종들이 받아야 할 고난에 대하여 언급하며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습니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당할 일들을 미리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앞날에 임할 재난들을 누가 미리 말해 준다면 이것은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종들에게 앞날에 있을 일들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창세기 18장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들을 대동하고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18:17) 하셨습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은 그의 종들에게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신다 기록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도 진리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장래 일을 알게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주 여호와께서 이 땅에 행하실 모든 일들을 그의 종들에게 미리 말씀하시고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미리 보이신 그 말씀을 알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이시고 우리는 한계 속에 있는 인간이므로 하나님의 이상은 주께서 우리 눈을 열어야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로므로 다윗은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66) 하였습니다.

 

우리가 한 세상 살면서 후회하는 것은 지난 날의 잘못된 생각과 마음을 지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미리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았다면 결코 우리가 실패를 보지 않았을 것이며 고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고난은 우리의 그릇된 삶의 방법에서 온 것입니다. 이에 다윗은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하였습니다.   

 

다윗은 우리를 교란케 하는 자들을 가리켜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마음에 가득한 욕심을 품고 살찌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늘 거짓을 지어내며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려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종말은 영혼의 멸망입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주께 돌아 오기까지 그들의 인생은 흑암에 유리하는 별과 같으며 곧 사라질 물거품 같은 인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71) 고백하였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잠시 당하는 고난에 감사하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종들을 선대하시는 방법이며 어리석은 인생을 깨우치는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의롭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고난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막10:9,10) 하셨습니다.

 

(시편119:73) 말씀의 깨달음의 위로

(시119:73)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우리는 한 세상 살면서 여호와를 경외하여 찬송하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항상 주의 말씀에 갈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을 마셔도 끝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늘 주의 말씀에 목말라 갈급해 있습니다.

 

다윗은 73절에서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을 배우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부름받은 우리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다윗의 일생을 보건 데 그가 왕된 것은 오직 주의 부르심과 세우심의 은혜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사울이나 다윗이나 다를 바 없는 죄인들입니다. 다윗은 음행에 빠졌고 살인을 하였으며 자식 교육에 편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 하였을 때 네 손에 흘린 피가 많다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완전한 왕으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배워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사도가 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베드로를 봅니다. 그는 많이 경솔하였고 많이 무지한 자였습니다. 그는 적 앞에서 목숨이 두려워 자신을 부르시고 세우신 주를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주의 계명이란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의 계명 곧 사랑의 의미를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을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베드로를 그의 말씀으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가 아버지께 받은 말씀들을 모두 저희에게 주었습니다 하시며 저희를 아버지의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소서 하셨습니다.

 

다윗은 계속하여 주를 경외하는 자가 나를 보고 기뻐할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연고니이다 하였습니다. 우리 말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하였습니다. 자식은 아비를 닮고 제자는 스승을 닮게 됩니다. 그러므로 만약 내가 재물을 탐하면 재물에 목숨을 건 자들이 나를 따를 것이며 내가 주의 말씀을 소망하면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할 것입니다.

 

물론 주를 경외하는 자들은 모두 주의 연단을 받아 인내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들은 주의 의로우신 판단을 믿고 따르며 고난 가운데서도 주의 음성을 사모합니다.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도 이처럼 주의 말씀에 갈급하는 이유는 주께서 하신 말씀이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그 백성들을 향한 위안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깨우쳐 우리 앞에 있을 모든 일들을 알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나아갈 길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생명은 살아 있으나 죽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이 영생 가운데 있음을 깨우친다면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커다란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모두 주께서 그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교만한 자가 무고히 나를 엎드렸으니 저희로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이다(78) 하였습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주를 경외하는 자로 내게 돌아 오게 하소서 고백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눈에 보기 좋은 것을 따르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내 안에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이 넘쳐 난다 해도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직 부귀와 영화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여 주의 말씀에 갈급한 사람들은 주의 증거를 사모하여 나아 올 것입니다. 이 때를 위해 우리는 스스로 겸비하고 주의 말씀을 깨우치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로서 우리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119:81) 영혼의 시련

(시119:81)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다윗은 여기서 영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 거하며 주 여호와의 구원을 소망하는 모든 영혼들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고통 속에서 주의 이름을 발견한 사람들은 오늘 다윗의 고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인생들의 생애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기까지 고통 중에 보관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82절에서 다윗은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시겠나이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늘 성경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그를 위하여 교회를 나아가 예배를 드리며 또 성경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을 펼치면 어느새 잡념에 사로잡히고 졸음이 몰려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책은 수면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실 이 세상의 임금 곧 사단의 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해도 여전히 우리는 세상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얻어 주의 성령의 위로하심을 입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신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문제는 세상의 즐거움을 아는 우리의 생각과 육체는 늘 하나님을 사모하고자 하는 나를 사로잡아 굴복 시키려 합니다. 바울은 이를 가리켜 내 안에 선한 것을 행하고자 하나 내 안에 또 다른 법이 있어 나를 죄 가운데로 이끌어 간다 하며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고 통회하였습니다.

 

다윗의 영혼의 고통을 말하여 내가 연기 중에 가죽병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83) 하였습니다. 가죽병이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물주머니와 같은 것으로 여행중의 필수품이였습니다. 그런데 가죽병은 희안하게도 뜨거운 열기의 연기나 화염에 쌓이면 곧 수축하여 뒤틀려버립니다. 이와 같이 우리 육체는 더러운 영에 노출되면 위축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세상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 율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윗은 계속하여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를 주께서 언제나 국문하시려나이까(85) 외쳤습니다. 이 얼마나 처절한 영혼의 탄색입니까? 다윗은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고통을 고하며 자기의 영혼의 안식처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호라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하랴? 하던 바울의 고뇌를 이해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말한 국문의 날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영혼의 안식의 날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안식에 들게 하시고 세상을 망하게 하며 주를 대적한 자들을 친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이 때에 이미 우리 모두가 소망하고 있던 그리스도의 날을 소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세상과의 영적전쟁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말하여 저희가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다(87) 하였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주의 말씀을 전하던 모든 선지자들이 동족과 형제의 미움을 받고 모두 초개처럼 죽임을 당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조차 허락치 않았습니다.

끝으로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로 소성케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증거를 내가 지키리이다(88) 기도하였습니다. 결국 믿는 우리는 주의 인자하심에 기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주의 장중에 있고 우리의 믿음은 주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굳은 믿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자하신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시편119:89) 영원한 말씀의 권위

(시119: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음으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계 속에 거한 인간으로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논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다윗이 성경의 말씀의 지혜를 얻고 하나님의 경계와 영원한 통치의 질서를 깨달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 지혜가 신비하여 하늘에서 이 땅과 바다와 바닷 속에 속한 그 모든 비밀과 지혜를 담고 있으며 또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예비하신 영혼의 거처에 이르기까지 신비하고 비밀한 지혜들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는 것은 천지만물의 시작과 질서가 그 말씀의 권위 속에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성경의 첫 기록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1:1) 기록되었으며 다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요1:1)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당혹하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가 말씀이신 것과 천지의 창조자이심을 믿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이것은 주께서 그 믿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비밀들을 알 수 있도록 그의 영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말씀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는 것은 창조자와 피조물이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때에만 성립되는 원리로서 그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창조자의 말씀과 그에 순종한 피조물의 관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그를 여호와로 부르며 또한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의 시작이며 모든 것의 끝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며 땅은 항상 있사오니(90)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주를 가리켜 성실하다 한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을 언급한 것입니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을 때부터 그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그의 뜻을 따라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천지간의 모든 운행은 하나님께서 성실하게 세우신 질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 땅은 주께서 세우신 질서를 따라 일어서고 물러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설명하여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안다 하였고 다시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롬8:20,21) 하였습니다. 이처럼 천지만물의 모든 피조물들은 주의 계획 가운데 운행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그의 법을 두셨습니다. 이 법은 사람의 행동을 제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과 질서대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세우신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주께서 세우신 법으로 하여 멸망을 받고 책망을 받게 됩니다만 우리가 주의 법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서 그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계속하여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94) 하였습니다. 주의 것이란 우리의 언행과 생각과 행함이 모두 주의 법도 안에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주의 계명을 사랑하고 주의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주의 법도대로 산다는 것은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질서와 달라서 그들과 부딛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주인의 뜻을 따라 자신의 육신이 원하는 것을 탐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설계하신 질서와 규례에 반한 것으로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멸한다 기록한 것입니다.

 

다윗은 끝으로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은 심히 넓으나이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피조물의 한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지혜와 완전함을 갖고 있다하드라도 피조물은 주의 정하신 한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증거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의 날에 우리의 체질이 불에 녹아질 것이라 증거하였습니다. 그날이 되면 우리를 주관하던 육체된 것은 사라지고 오직 여호와를 아는 지혜의 영이 함께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은 영원하여 그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은 내가 아니니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요 소망이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주의 영으로 함께 고통을 하며 고난을 참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이 살아 있고 그를 위해 주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킨 것처럼 나의 계명을 지키라 하셨고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의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 말씀으로 우리를 지으시고 가르치셨으니 우리가 주의 영원하신 질서 가운데 거하여 주의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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