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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119:25-56) 영적전쟁과 주의 말씀

이요나 2007. 2. 26. 10:12

(시편119:25-56) 영적전쟁과 주의 말씀

 

I. 영적투쟁(25-32)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25)

 

A. 영혼의 탄식(25-28)

네 번째 문단 서두에서 다윗은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25)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주의 종들이 겪어야 하는 영적 고통을 언급한 것입니다.

 

다윗은 앞에서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이 땅의 객이 되어 세상에서 비방과 훼방거리가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믿음을 지키기 위한 비전과 이상의 방황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께서 보상하실 소망을 바라보고 능히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장래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혹 잠시 땅의 나그네와 같이 헐벗고 사람들의 비방을 받는다 해도 앞에 놓인 보화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살 것입니다(마13:44).

 

그러나 오늘 우리는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영적 고통에 대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속성을 가진 육체와 생각을 갖고 있어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까지는 불의 고통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말씀 속에서 나의 삶의 행위들을 발견하여야 할 것이며 두 번째로는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기 위해 주께서 행하신 많은 일들을 깊이 묵상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끊임없는 성경공부를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뜻하시는 온전한 삶은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속에는 악한 육신의 법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육신으로 살면 받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8:13) 하였습니다.

 

그로므로 하나님은 기록하신 말씀과 같이 우리의 온전함을 위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영이 우리 안에 거하여 그의 뜻을 따라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하나님의 뜻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다윗은 나의 영혼의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증거하였습니다.

 

바울도 이를 말하여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롬8:26) 증거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주의 사람들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날 때 무도 혼비백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최근 이상한 교회들이 이것을 본 따 인위적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괴상한 소리도 지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은 거룩한 질서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영혼의 눌림이란 아이를 낳기 위한 해산의 고통과 같습니다. 임산부가 아이를 낳을 때 온몸과 마음이 죽음을 통과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한 영혼의 고통 또한 육신을 벗어나는 고통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바울도 항상 내 안에 눌림으로 고통을 받는다 고백하였습니다.

 

B. 진리를 쫓는 마음(29-32)

주께서 우리로 하여 이처럼 영적 고통을 겪게 하시는 것은 먼저 주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여 죄의 생활에서 떠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세우신 자로 성실한 길을 택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윗은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30)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러한 눌림 가운데 진통하는 것은 주의 증거를 우리 안에 두어 우리로 수치를 당치 않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증거하여 주의 흔적이 내 안에 있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32)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너무 가파로운 생각에 쌓일 때가 있습니다. 일상생활에 얽매어 세상의 즐거움과 희락을 꿈꾸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그날의 염려는 그날에 족하다 하셨습니다.

 

II. 믿음의 결단(33-40)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33)

 

다섯 번째 문단에서 다윗은 율례의 도를 언급하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의 시작과 끝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의로운 일을 할 때 시작은 떠들석하게 벌리고 끝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행하는 일에 대한 종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도를 지키는 데에는 삶의 현실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하늘에 속한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우리가 이 땅에서 누려야 할 영생의 복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삶에 만족하려 하여 인생의 본체인 영혼에 관한 것에 소홀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장래에 우리가 받을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에 대한 것을 깨닫는다면 현실의 삶에 급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여 전심으로 지키리이다(34) 증거하였습니다.

 

인생의 이러한 유혹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승의 자랑을 따라 오는 세상의 것들입니다. 이것으로 수많은 사역자들이 주의 길을 떠나 멸망의 종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처음의 시작은 청년의 정욕으로부터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더 넒은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에 하늘의 거룩한 품성들을 가득 채워야 할 것입니다.

 

주의 법대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육신의 형벌과도 같습니다. 최근 성전환 수술한 한 형제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과거 유흥업에 생활하면서 성전환 수술을 하고 여자로 살아왔습니다.  그후 많은 연단 가운데 예수를 믿고 지금은 시골 고향에서 조용히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그는 여성의 모습으로 자신이 여자인 것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늘 전화를 통하여 이제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로 돌아 오기를 권면하며 기도하고 있지만 그는 기회만 있으면 옛날의 생활로 돌아갈 마음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이제라도 모습과 모양에서 죄의 형상을 벗어버리고 주 앞에 바로 설 것을 말하고 있으나 그는 그럴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십여년 동안 같은 생각을 갖고 생활하면서 그래도 그는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의 법을 깨닫지 못하여 아직 세상의 허탄한 것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37) 고백하였습니다. 이처럼 주의 이름을 훼방하는 악한 세력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우리가 주의 계획하신 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유혹을 사로잡아오는 세상을 끊어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 고통을 말하여 오호라 이 사망의 고통에서 누가 나를 구원하랴 외쳤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진리는 문제에는 해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38)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유혹하는 세상을 끊어내는 길이 오직 말씀 가운데 있다는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끝으로 다윗은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아오니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40) 하였습니다. 주의 의란 예수 그리스도의 칭의입니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표상이며 진리의 나타남입니다. 이 의가 죄 가운데 나타나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인도한 것입니다. 이 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장차 그리스도의 날에 우리가 주와 함께 받을 기업을 말하여 자녀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7,18) 증거하였습니다. 이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는 깨달은 마음으로 믿음으로 얻은 의를 온전히 지켜야 할 것입니다.

 

III. 믿음의 완성(41-48)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41)

 

이제 다윗은 믿음의 결국인 영혼의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많은 인내와 열정적 믿음을 가졌다 하드라도 우리의 목표는 영혼의 구원에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여기서 다윗은 주의 구원을 주의 말씀에 그 바탕을 두었습니다.

 

나는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믿음을 바라보며 과연 이들의 믿음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밤을 세워 오늘의 고통을 위해 기도하고 오직 내일을 축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또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주의 의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은 기이한 일이니다.

 

바울은 로마교회를 향하여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하였습니다. 이것은 로마교회성도들이 믿음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 계시된 말씀에 근거를 두지 않고 있는 것을 책망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믿으나 구원의 열매가 없습니다.

 

다윗은 계속하여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훼방하는 자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뢰함이니다(42)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마치 교리문답이라도 하듯이 구원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논쟁을 하려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말씀에 근거를 두지 않고 그들의 교단이 세운 교리에 그 근거를 두고 나를 훼방하려 합니다. 그러나 나는 오직 주의 말씀에 의로하므로 그들이 나를 결코 훼방하지 못할 것입니다.

 

3절에서 다윗은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기도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을 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주의 부름을 받은 우리가 세상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고 주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길은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주의 의의 복음을 선포하게 됩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습니다. 또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의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주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행하신 주의 인자하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IV. 말씀의 소망(49-56)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49)

 

다윗은 이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언급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말씀을 통해 관계를 갖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과 관계를 갖는 방법으로 여기서 말씀이란 대화를 의미하며 대화란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통하여 관계를 갖습니다. 대화는 자신의 의사와 생각을 표현하는 유일한 길이며 자신을 상대에게 나타내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또 우리는 대화를 통하여 어떤 약속을 맺기도 하고 약속을 통하여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대화를 하신 것에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므로 사람들과 대화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창조자 신이시고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커뮤니케이션을 갖지 않도서도 얼마든지 우리를 통치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하셨다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일방적이되고 하나님의 공의는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공의를 구태어 우리에게 인정받으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 나는 공의의 하나님이라 표명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권위는 무효가 됩니다.

 

다윗은 1절에서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소망이 있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죄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내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달라고 다그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은 다윗과 주인과 종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종은 그 주인에게 주권이 있고 그 일생이 주인에게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종은 주인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종이 밭에서 일하고 돌아 오면 그 종에게 씻고 올라와서 나의 식탁에서 함께 하자 하겠느냐 너는 와서 나를 수종들라 하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종의 신분은 섬기는 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은 주인의 말 에 그 생명이 죽고 살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게 하소서 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이 말씀은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구원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말씀의 직접적인 체험이 없이는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기며 수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명을 보전 받았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그는 더 큰 범죄를 지어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을 것입니다.

 

다윗의 위험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을 때 닥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이 자기보다 먼저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종임을 기억했습니다. 비록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동일한 죄된 인간이 그를 멸할 권한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인 우리아의 처 밧세바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의 선지자 나단이 와서 다윗을 책망하였습니다. 사실 나단의 책망은 이스라엘의 최고 통치자의 권위를 무참하게 손상시키는 행위였습니다. 아무리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라도 왕의 수치를 들추어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죄를 들추어내면 분노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단의 하나님의 기름부은 선지자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권위 앞에 자복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 말씀은 곤란 중에 위로라 한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성경에서 매우 곤란한 말씀을 대하게 됩니다. 지키자니 내가 원하는 바를 버려야 하고 외면하자니 영심에 가책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나에게 소망이 되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례미야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29:11) 증거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행하시는 것입니다. 설혹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여 지키기 힘든 말씀이라도 그 말씀으로 우리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51절에서 교만한 자가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욥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를 지키려 했을 때 그의 처가 저주하며 욕하고 떠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친구들이 욥을 조롱하며 하나님 앞에 그를 깍아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52) 하였습니다. 여기서 옛 규례란 조상의 때로부터 전달되어 온 하나님의 율법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뿐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들에게 미리하신 말씀들을 모두 살피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을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성경의 기록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자들을 향하여 분노를 하였습니다.

 

다윗은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다 하였습니다.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겪으며 피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으며 아기스 왕에게도 쫓겨났습니다. 또 아들의 반란 때에도 머리에 재를 쓰고 도망해야 했습니다. 이럴 때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으로 위로를 삼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많은 슬픈의 세월을 살게 됩니다. 친구에서 배반을 당하고 또 사업에서 파산되어 이리저리 방황을 하게도 됩니다. 그러나 이처럼 외롭고 고통 중에 나를 지키는 것은 주의 말씀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55) 한 것입니다.

 

끝으로 다윗은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하였습니다. 소유란 재산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다윗의 주의 말씀을 따라 행하여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먼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의 말씀을 경홀히 여거 결국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의 법과 규례와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적에게 조롱을 받을 때에나 쫓김을 당할 때에도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이룬 모든 소유가 그 복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나로 하여금 당신의 말씀을 기억케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더욱 내가 조심하여 주께서 명하신 율례와 기이한 법을 듣고 지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부르신 사람들 앞에 아름다운 증인이 될 것입니다. 주여 부디 나로 주의 말씀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을 손에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게 하소서.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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