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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118:26) 의인의 노래

이요나 2007. 2. 26. 10:14

(시편118:26) 의인의 노래

 

(시118: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시편 118편은 할렐 송의 마지막에 해당됩니다. 특히 시편118편은 주께서 십자가를 바라보시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실 때 제자들과 함께 부르시던 찬양입니다. 우리는 이 노래를 메시야의 노래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볼 시편 118편 24절에는 주께서 인용하신 바 있는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리돌이 되었나니 이 날은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라는 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I. 인자하신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1)

 

시편기자는 1절에서 여호와께 감사하라 선포하며 그 이유에 대하여 저가 선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 하였습니다. 선하시다는 말은 하나님의 미덕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은 인간의 도덕적 규범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에 미치는 실제적인 하나님의 근본 성품이라 하겠습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이름이 선하다(시54:6) 하였으며 주의 신도 선하시다(시143:10) 하였습니다. 또한 주님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다(마19:7)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은 모든 피조물들이 실제적으로 체험하는 하나님의 실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는 성도들이 모두 하나님의 선하심 가운데 실제적인 은혜를 체험하듯이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눅6:35). 

 

두번째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영원한 여호와의 인자하심입니다. 여기서 인자하심은 하나님의 자비를 말합니다. 이것은 그의 백성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 곧 여호와의 은혜 가운데 거한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알 수 있습니다.

 

A. 이스라엘의 증거

2절에서 시편기자는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선포하였습니다. 시편기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입은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다(행3:25) 기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더욱 선하고 아름답고 지혜롭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의 택하심과 부르심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패역함에 대하여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살인자가 되었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행7:51-53) 증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의 날까지 기업으로 세워두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노래한 것입니다.

 

B. 아론의 집의 증거

다윗은 3절에서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선포하였습니다. 아론의 집은 이스라엘의 열두 방백 중 레위지파에 속한 제사장 가문입니다. 레위는 하나님께서 빼신 하나님의 기업이지만 그 중에 아론의 자손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두신 중보의 기둥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론의 자손들은 친히 주께서 언약하신 아들을 영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자기 위에 메시아를 두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자자손손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론의 집에 인자를 더하셨습니다. 아론의 싻난 지팡이를 언약궤에 보존하시고 고라의 반역에서도 아론의 향로를 지키셨습니다.

 

C.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증거

다윗은 이제 우리를 향하여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선포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죄 속에 살던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여호와의 인자하심 속에 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베풀어진 범위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여호와와 선택적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러했고 아론의 집이 그러했으며 오늘날 여호와를 경외하는 우리가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누리고 있습니다.

 

II. 여호와의 역할

여호와는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7)

 

A.      나의 부르짖음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

이제 우리는 영원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감사해야 할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역할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다윗은 먼저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5) 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고통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을 언급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인생이 처한 상황과 여호와의 절대 필요를 실감하게 됩니다. 처음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완전한 환경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그 어떤 위험도 질병도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알기를 힘쓰며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축복을 지키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놓고 스스로 판단하려 한 것입니다. 이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자신의 선택에 의지하여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은 하나님을 대적한 세상의 신의 지배 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그 누구도 그 사슬을 끊을 수 없는 영혼의 굴레였습니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람들로 하여 여호와의 선하신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들을 구별하여 평안의 땅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B.      나의 편이 되어 도우시는 여호와

계속하여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라(7) 증거하였습니다. 이 땅의 인간들은 누구도 혼자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인간은 가족의 공동체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비밀이라 하였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나의 편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한 일입니다. 아이는 아버지의 그늘에 있으면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또한 전장에서 내 옆에 있는 동료는 나를 지키는 든든한 보초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를 이제 친구라 부르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 또한 한계 속에 거하며 그 또한 세상에 처한 자로 악과 다투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돕는 것은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힘과 지식과 지혜에 있어 그 한계를 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로나 만군의 주인이시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창조자되신 신께서 우리의 편이 되신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다윗은 여호와는 내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노래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께서 나를 위하시면 누가 나를 해하겠습니까?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디윗은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을 신뢰함보다 낫도다(8,9) 증거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체험에서 나온 증거입니다. 그에게는 많은 가족들과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던 아들들과 또 그를 따르던 신하들은 시절을 따라 마음을 바꾸며 대적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에서 영원한 동지는 없습니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원수가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C.      능력과 찬송되신 여호와

세번째로 다윗은 위협의 무리로부터 보호하시는 여호와에 대하여 증거하였습니다. 다윗은 늘 전쟁에 시달려 왔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와 그 이스라엘의 영화를 미워하는 주변국가들로부터 에워쌓여 한시도 편안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그의 능력과 찬송이며 구원의 반석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무엇을 구하던지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로 하여금 그 아들의 이름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입니다(요14:13).

 

III. 의의 문(17-29)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리돌이 되었나니(22)

 

이제 다윗은 이 땅의 택하신 자 모든 의인들을 의의 문으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는 17절에서 다윗은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17) 노래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선포입니다. 이 노래는 오직 다시 산 자들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지 않아서 그리스도의 의를 따른 자들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주께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로 하여 우리는 의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의인이 죽을 수 없는 것은 이 땅에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의 고난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성경을 알지 못하고 또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여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승의 자랑에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여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롬1:3,4) 증거하였으며 만약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부활 또한 거짓이라 하였습니다.

 

다윗은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19) 하였습니다. 이것은 메시아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의 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 가리로다(20) 한 것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아주 기이한 비유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메시아의 운명을 노래한 것입니다. 주님도 이 말씀을 인용하여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22) 하셨습니다. 여기서 모퉁이 돌이란 건물의 근간이 곧 건물의 이름을 넣은 표적을 의미합니다.

 

다윗 궁전을 지을 때 기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전을 건축자들은 설계를 따라서 채석장에서 다듬어서 보내진 돌들을 쌓아 성전을 지었습니다. 돌들은 아름다운 미석으로 다듬어졌는데 얼마나 잘 다듬어졌는지 돌과 돌 사이에 접착제를 넣지 않고 그대로 쌓아도 면도칼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합니다. 또한 그 돌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돌 하나의 크기가 20평 되는 건물 한 층의 크기와 같다니 그 위엄이 얼마나 장엄한지 알 수 있습니다.

 

어느날 건축자들이 채석장에서 날라 온 돌들로 성전을 쌓는데 아무 표시도 되지 않은 돌이 하나 있어 건축자들의 눈에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돌을 멀리 굴려 버렸습니다. 그후 성전이 완성되어 머릿돌을 세우려 하였더니 아무리 찾아도 머릿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채석장으로 사람을 보내어 머릿돌을 보내라 재촉하였더니 그 돌은 맨 처음에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변을 샅샅이 찾아 보니 성밖 허접한 곳에 이상한 돌이 하나 놓였습니다. 그래서 그 돌을 들어다 머릿돌 자리에 넣으니 감쪽같이 들어 맞았다 합니다. 그래서 이 말이 이스라엘 중에 유전되었다고 전합니다.

 

이 말이 사실이든지 지어낸 말이든지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은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땅에 처음부터 세워질 하나님의 성전의 머릿돌이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 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한 것이라(벧전2:6-8) 증거하였습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무리의 찬송을 받으며 예루살렘을 입성하신 날에 볼 수 있습니다. 큰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외쳐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12:12,13)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호산나제발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다윗이 말한 바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25) 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때의 일을 기억하며 그 때는 우리도 몰랐으나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 이것이 예수께 대한 기록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을 알았다고 주석하였습니다(요12:16) 그러므로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26) 증거하였습니다. 실로 주께서 오시기 1000년 전에 이러한 일들을 예언할 수 있었다니 참으로 다윗의 신령한 믿음이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그의 집에 들어 와 있습니다. 그는 어둠을 비추어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를 위해 친히 제단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 구원의 뿔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로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28) 노래하였습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이 노래가 오늘 우리 앞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의의 문으로 들이기 위해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습니다. 그 구원의 뿔을 친히 드리시고 나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하오리까 오직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선하심과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을 선포할 뿐입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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