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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116:7) 성도의 고백

이요나 2007. 2. 26. 10:15

(시편116:7) 성도의 고백

 

(시116:6)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 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시편 116편은 메시야에 관한 예언입니다. 물론 이 시는 다윗의 시대에 쓰여진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이 시는 이스라엘의 고난을 노래한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일부러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이심을 부인하려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말을 하던지 간에 이 시는 이 땅에서 고난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먼저 문자적인 해석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성령의 감동으로 전달된 복음의 계시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 시에서 우리는 죽음에 직면한 의인의 고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 영혼에게 네 평안함에 돌아 가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애통한 노래입니다.

 

I. 내가 여호와를 사랑하는 이유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3)

 

A. 내 기도를 들으심

오늘 우리는 이 땅의 의인들을 주 여호와께서 어떻게 사랑하였으며 그들은 자기의 영혼을 구하신 여호와를 위하여 어떻게 하였는가를 살펴 보게 됩니다. 시편기자는 1절에서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성도들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누구를 사랑할 때 그것은 나와 직접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능자 하나님께서 나와 그 어떤 관계에 있지 않다면 우리가 그를 사랑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이 땅의 많은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문제에 대한 간절한 요청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있어 주께 자신의 고통과 문제를 아뢸 것이 없다면 그의 찬양은 입에 발린 노래가 될 것입니다.

 

나는 내가 주 여호와 앞에 나의 고통을 말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만약 내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었다면 이 고통의 땅에서 내가 누구를 찾으며 누구에게 내 영혼의 억울함을 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주를 사랑하며 주께서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할 것입니다(2).

 

B. 사망과 음부의 고통에서 영혼을 건지심

시편기자는 3절에서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 여호와를 바라는 의인의 고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지금 사망과 음부의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망이란 이 땅에서의 죽음을 말합니다. 시편기자는 지금 영원한 삶을 갈망하며 인생 중에 덧없이 다가 온 사망을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이 사망의 고통을 겪게 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애절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로 하여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많은 지식을 구하며 덕을 쌓았으나 그 누구도 자기의 영혼을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죽음의 문제입니다. 만약 인간이 한 세상을 살다가 짐승과 같이 흙으로 돌아 간다면 죽음의 고통에 대하여 번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만 한 세상 어떻게 멋지게 살다 갈까에 전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영혼을 주셨으므로 인간은 그 죽음의 문턱에서 그 영혼의 쉴 터를 생각하게 됩니다.

 

문제는 죽음 이후에 있습니다. 아직 생명의 고귀함을 알지 못하고 인생의 즐거움에 희희락락하는 사람들은 마치 짐승과 같아서 먹고 마시며 우리가 내일 일을 알 수 없으니 오늘을 마음 것 즐기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음부의 고통이 몰려 올 때 그는 자기의 영혼을 구원할 자의 이름을 알지 못하여 애통하게 될 것입니다. 

 

음부는 이 땅의 생을 마치고 그 육신이 흙으로 돌아갈 때 영혼이 들어 갈 곳입니다. 죽음은 지옥이라 불리는 음부와 낙원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음부는 그 영혼의 구원자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들어 가는 곳이며 낙원은 그 영혼의 주인을 아는 자들이 들어가 그가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쉬는 안식을 하는 곳입니다.

 

C.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자비하심

시편기자는 5절에서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노래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영혼을 음부의 고통에서 구원하실 자의 이름을 발견한 자들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은혜란 아무 대가 없이 베푸신 하나님의 선물을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육체의 덕을 쌓아 그에게 무엇을 얻었다면 그것은 은혜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쌓아 머리 둘 곳이 없는 자가 오직 그의 이름을 불러 값없이 그 영혼의 안식처를 얻었다면 그는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또한 시편기자는 여호와의 의로움을 노래하였습니다. 의로움이란 거룩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입니다. 이 속에 주의 신성과 도덕과 윤리와 판단이 함께 있으며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전이 된 그리스도인의 표상입니다. 또한 자비는 창조자의 인자하신 사랑의 표상입니다.

 

II. 살아 있는 자의 믿음

내가 생전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9)

 

6절에는 흥미로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어리석은 자를 보전하시나니 네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란 어린아이 같이 마음이 연약하여 악한 데에 쉽게 넘어지는 자를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 생각이 깊지 못하여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나는 서른이 되어서야 악한 세상 가운데서 내 영혼의 주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아무 값없이 죄 가운데 있는 나를 구원하셨고 주의 자비로 의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 같아서 주의 은혜가 마치 내 생각을 축복하시는 도구로 알아 진리의 도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인내로 나를 낮추사 내 영혼이 의로움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구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나로 내 생전 동안에 여호와 앞에 의인의 믿음을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로므로 시편기자는 내가 생전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한 세상 살면서 주의 은혜와 의로움과 자비를 깨닫는 것은 커다란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여호와께서 주신 생명을 다 한 후에 이 진리를 터득하면 무슨 득이 있겠습니까? 결국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자기 영혼의 곤핍함을 목도할 뿐입니다.

 

성경은 주 여호와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기록하였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은 우리의 주신 생명으로 주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영광을 취하고자 합니다. 주께서 내가 낮을 때에 구원을 베푸신 것을 깨닫지 못하고 마치 주께서 더하신 은혜의 생명이 나를 위해 주신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수고로 고난을 더하셨습니다.

 

시편기자는 10절에서  내가 믿는고로 말하리라 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의인이 이 땅에서 받아야 할 고난을 말한 것입니다. 아마 차라리 그가 믿지 않았다면 그의 이름으로 받는 고통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후사면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롬8:17) 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시편기자는 내가 경겁 중에 이르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11) 증거하였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믿음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궤휼에 빠지게 됩니다. 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았으나 아직 나는 진리의 도를 깨닫지 못하여 방황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엡4:13).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께 기도하여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17:8) 하셨으며 다시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요17:17)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믿음의 고통을 더하신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12절에서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도를 깨달은 모든 성도들의 노래이며 서원입니다.

 

바울은 죄 가운데 방황하는 성도들을 향하여 은혜를 더하기 위해 죄를 짓겠느냐? 반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대답은 그럴 수 없다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떠난 의의 백성이며 영혼의 안식처를 받은 평강의 자녀입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준비하면 다시 오겠다 하셨습니다.

 

III. 성도의 찬양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15)

 

여기서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신다는 말씀은 주께서 우리의 영혼을 보배롭게 여기시며 주목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성도의 죽음을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도들도 육체의 죽음이 있음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이미 주께서 친히 자신의 몸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신 주께서 다시 사신 것이라 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수많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죽음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오직 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습니다. 그들은 주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진리이며 계시인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영혼의 결박에서 놓임을 받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서원을 갚으시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주께서 부르신 만인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곧 주 여호와의 도성 예루살렘에 올라 할렐루야를 외칠 것입니다.  예루살렘아 네 가운데서 여호와의 전 정에서 내가 갚으리로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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