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시편서 강해

[스크랩] (시편108:5) 리메이크 업

이요나 2007. 2. 26. 10:16

(시편108:5) 리메이크 업

 

(시108: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시편108편은 제2권의 57편과 60편을 합하여 리메이크 업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편집자들의 실수인 것 같지만 성경의 실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을 성령이 충만한 시편 편집자들이 실수로 하여 두 번 올릴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내용을 후세에게 다시 상기시키기 위한 것으로 히브리인들의 교육 방법이기도합니다.

 

I. 마음의 확정(1-5; 시57:7-11)

다윗은 서두에서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시편57편에서 노래한 것이지만 이 시점에서 다시 동일한 말씀으로 자신의 마음을 확정하는 것은 삶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시 확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로 주의 은혜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신의 믿음을 확정하고 감사의 노래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세상을 사노라면 우리는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은듯이 까맣게 잊어버리고 저 만큼 멀리 가 있게 됩니다.

 

죄에 딩굴고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곤고와 쇠사슬에 묶여 구원자의 오기를 기다릴 즈임에서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어부가 바다에 나가면 좋은 날도 있고 폭풍을 만나기도 합니다. 폭풍을 만나 깊은 물 속에서 헤메이다기 주의 은혜로 구사일생 살아나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생명을 드림같이 찬양을 드리다가도 몇 날이 지나면 나는 세상 사람들과 같은 모습에 서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본래의 모습인 것입니다.

 

다윗은 2절에서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잠든 영혼을 깨우는 것입니다.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어떤 교회에서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프레이즈를 예배음악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룩함을 외곡하여 경건을 스스로 꾸미고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미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하루의 시작 곧 일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여 인생의 시초 곧 처음부터 출발부터 깨우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의 시작을 기도와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내 하루의 일을 알지 못하는 내 자신의 영혼을 구속자이신 주 앞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경영을 주께서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다윗은 더 나아가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주를 찬양할 것이라 확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축복이 나에게만 임하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상당히 이기적이지요. 나와 우리나라는 좋은데 우리를 대적하는 나라에게는 저주를 임하기 바릴 때가 있습니다.

 

요나의 생각이 그러했고 하박국의 심정이 그러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구원하라는 명령을 받고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다가 발목을 잡혔습니다. 또한 하박국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치시기 위해 바벨론을 일으키시겠다는 주의 말씀에 기염하여 높은 망루에 올라 내 질문에 뭐라고 답하실지 주의 대답을 기다리겠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그의 미리하신 말씀대로 실행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는 신이시고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4절에서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하늘에 있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무궁하신 사랑과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찬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인자하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지 않으시고 또 그의 진실은 측량할 수 없는 무궁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으시기를 원하나이다 간구한 것입니다. 이것은 믿는 자 우리 모두의 명심해야할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II. 거룩하신 말씀(6-13; 시60:5-12)

하나님의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 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척량하리라(7)

 

이 부분은 시편 제2권 60편을 리메이크 한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택하신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마지막 권에서 다시 하나님의 구속사를 언급한 것은 장래의 일을 바라보며 실망에 빠질 그의 백성에 대하여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윗은 6절에서 주의 사랑하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간구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다윗은 여기서 자기 세대와 또 다른 세대 곧 구원을 소망하는 주의 사랑하는 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오늘의 우리일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마지막 이레에 구원 받을 이스라엘 백성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다윗은 7절에서 하나님의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척량하리라 증거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셨다는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말씀이 사람의 말이 아닌 창조자이시며 신이신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된 세겜과 숙곳은 야곱이 그의 자녀들을 이끌고 귀향할 때 히위족장 하몰의 아들로부터 토지를 구입하고 잠시 거주하던 곳입니다(창33:19). 그러나 야곱은 이곳에서 엄청난 큰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몰의 아들이 야곱의 외동딸 디나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빠져 그녀를 강간하고 청혼을 하였습니다. 이에 야곱의 아들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결혼을 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한다며 히위족 남자들의 할례를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하몰족장은 자기 족속을 설득하여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야곱의 자녀들과 혼인관계를 맺으면 부유하게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스러워할 때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일어나 세겜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약탈하고 누이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이에 야곱은 두 아들에게 우리로 이방에서 냄새가 나게 하였도다 책망하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네가 환난날에 서원하던 벧엘로 올라가라 하셨습니다. 이에 야곱은 자기 장막에서 우상의 형상을 제하고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야곱이 벧엘에 이르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으로 주변 사람들이 야곱 백성을 두려워하여 어떤 시비를 걸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벧엘 곧 하나님의 문 다시 말하여 교회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로 사신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안에 들어 온 사람은 그 누구도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기록하였습니다. 이곳은 애굽의 라암셋을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기전 처음으로 머물렀던 곳입니다(출12:37). 하나님은 이곳에서 야곱 백성들의 초태생이 구별하셨습니다(출13:2). 다시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 처음 난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 것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하신 말씀은 거룩한 백성과 이방을 달리 구별하시며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것을 기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이 모든 말씀들을 친히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 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요 유다는 나의 홀이며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질 것이며 블르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8,9) 증거하였습니다.

 

길르앗은 므낫세의 손자이며 마길의 아들의 이름으로 후일 그들이 살던 지역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비옥한 땅으로 북쪽으로 바산과 남쪽으로 모압, 동쪽으로 암몬, 서쪽으로 요단강을 접하고 있어 이스라엘과 이방간의 전략적 요지로서 접전지였습니다. 하나님은 길르앗을 중히 여기어 길르앗을 철타작하듯 압박하던 다메섹을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셨으며(암1:3) 스가랴 선지자는 앗수르에 포로가 된 길르앗 사람들이 다시 돌아 올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슥10:10).

 

에브라임은 요셉이 애굽의 처에게서 난 아들로서 므낫세의 동생으로 후일 야곱에 의해 양자로 삼을 때 형인 므낫세 보다 우선적 선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에브라임을 내 머리의 보호자라고 한 것은 후일 에브라임 지파들이 가나안 정복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을 예언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후일 하나님은 다윗의 왕국을 나누어 에브라임 지파의 여로보암을 기름부어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교만해진 여로보암은 그 백성들이 남유다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는 것을 못마땅히 여겨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북이스라엘의 올무가 되었습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유다는 나의 홀이라 증거하였습니다. 홀이란 왕의 권위의 계승자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여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야곱의 예언으로 유다지파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곧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통치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흥미롭게도 다윗은 모압과 애돔과 블르셋에 대하여 모욕적인 예언을 전하고 있습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며 애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지파입니다. 또한 블르셋은 이방 족속으로 이들은 함께 후일 이스라엘을 가시가 되어 이스라엘의 영광을 훼방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수치가 만천하에 나타날 것이라 예언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다윗은 10절에서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꼬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그 형 에서에서 쫒겨 이방에 도망하여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아브라함의 도성을 바라보며 탄식한 것을 회상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늘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은 숨소리를 죽여와야 했습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의 외침이며 또한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다윗은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증거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람의 손에 의지하여 우리의 대적들과 맞서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늘 우리보다 더 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로 우리는 늘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그는 사람이 아니시고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자기 뜻대로 경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과 의지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의지를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 당신의 크신 이름을 송축합니다. 이제 주께서 내게 말씀하셨은즉 나로하여 마음을 확정케 하시고 그 거룩하신 말씀을 이루어 오늘 나의 힘이 오직 하나님께 있게 하옵소서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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