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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103:5) 내 영혼이 여호와를 송축하는 이유

이요나 2007. 2. 26. 10:17

(시편103:5) 내 영혼이 여호와를 송축하는 이유              

 

(시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편 103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편 중의 하나입니다. 나는 늘 내 믿음이 떨어질 때마다 이 시편을 살펴봅니다. 이 시편을 읽노라면 주께서 내게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또 장차 나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I. 여호와의 은택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1)

 

A. 영혼의 회복

송축이란 찬양보다 더 강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찬양은 주를 향한 우리의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지만 송축은 무릎을 꿇고 엎드려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여 절대 믿음의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윗은 여기서 자신의 영혼을 일깨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의 자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죽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혼이 있음을 알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후일 주께서 그들의 영혼을 죽음에서 깨우실 때에 자신의 영혼이 구원 받지 못함을 애통해하며 이를 갈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비유가 기록되었습니다. 부자는 호의호식하다가 죽어 지옥으로 들어갔고 나사로는 거지생활을 하다가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분명 자기 의식을 갖고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물 한 방울을 얻지 못하고 고통을 받으며 나사로에게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케 하여 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옥 생활의 단면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곳에서는 다시 돌이킬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곳은 살아 생전에 내 의지의 선택으로 결정된 판결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예언이며 그를 위해 하나님은 각 시대별로 복음 사역자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 때가 이르면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말씀을 따라 심판과 상급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주께 세상에 살고 있는 내 형제들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고통의 지옥으로 들어 오지 않게 하여달라 간청할 때 주님은 저희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어야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다윗은 2절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모든 이란 역사적 증거로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언급한 것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죄 가운데 주의 은혜를 많은 입은 사람들은 그 모든 은택이 무엇인지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가 송축해야할 이유들이 무엇인가 열거해 보겠습니다.

 

B.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심

먼저 다윗은 저나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3) 하였습니다. 여기서도 네 모든 죄악, 네 모든 병이라 한 말씀은 우리를 감동케 합니다. 다윗은 이 시를 쓰며 자기가 지은 죄 곧 주께 용서함을 받은 죄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우리는 죄와 병의 문제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들어 내 주변에 중한 질병에 들어 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나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나의 모든 병을 고치신 여호와를 송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잔병치례가 심했습니다. 우리말로 골골했습니다. 젊어서도 위경련에 시달렸고 독감이 돌 때마다 지독한 열병이 나를 빼고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또한 어느 때부터인가 편두통에 시달려야 했고 중이염으로 고통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내가 목사가 되고 나서 병원문턱을 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는 38년간 중병을 지고 고통 받는 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를 일으켜 세우시고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죄를 짓지 말라 하셨습니다. 병은 바이러스에 의해서 발생합니다. 사람을 상하게 하는 바이러스는 더러운 곳에서 발생을 하지요. 우리가 더러운 것을 손에 대고 그 병원체가 우리 몸에 닫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기우입니다. 검은 것을 만지면 검어지고 더러운 것을 만지면 더러워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신 말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화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선악과 속에는 인간에게 해로운 바이러스들이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탐욕스러운 것들을 모두 모아 두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 바이러스들은 인간의 탐욕과 욕정을 불질러 사람들로 죄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어제 추석 특집으로 방영된 공공의 적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거기서 범죄자를 잡는 주인공 검사가 한 말 중에 나쁜짓과 뽕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끊을 수 없다 한 말입니다. 이와 같이 죄는 죄를 낫고 그것은 모든 병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모든 죄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노래하였습니다.

 

C. 생명의 파멸에서 구하심

다윗은 4절에서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하였습니다. 여기서 생명의 파멸이란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먼저는 사망권세에서 구속하시는 것이며 또 하나는 인생의 파괴자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세상 살아가면서 감당하지 못할 일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생명을 파괴하는 일에 빠지는 것입니다. 

 

나는 오랜 동안 동성애, 도박에 빠져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은 젊은 청춘을 파멸시켜 버려왔습니다. 내게 왜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과 스포츠와 마약과 섹스에 빠져 고귀한 생명을 파멸시키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파멸로부터 우리의 생명을 구속하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방패요 나의 요새라 노래한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시며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마가16:16-18) 하셨습니다. 이것은 교회로 하여금 생명의 파멸을 구원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하였으며 다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엡2:5,6)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속하심은 엄청난 대가가 지불된 것입니다(고전6:20, 엡2:5).

 

D. 삶의 만족을 주심(엡1:3)

어디 그뿐입니까? 디윗은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5) 증거 하였습니다. 여기서 좋은 것이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지혜와 지식과 또 건강에 속한 좋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기름진 음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망하는 삶에 필요한 좋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1:3) 하였으며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7-19) 하였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소망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신다 라는 흥미로운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독수리는 100살이 되면 사막으로 들어가 태양을 주시하며 온몸의 털을 뽑아내고 새로운 깃털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그로 하여 독수리는 새 힘을 얻게 되어 장수하게 됩니다.

 

욥은 고난 중에서 그 살이 어린아이보다 연하여져서 소년 때를 회복할 것이라(욥33:25)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그의 성도들을 모든 죄와 모든 병의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성령의 위로와 은총으로 충만케 하여 생명의 기쁨과 영혼의 만족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을 체험한 백성들만이 알 수 있는 기쁨입니다.


II. 언약의 은혜
택한 백성에 대한 자비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6)

 

A.     하나님의 의

이제 다윗은 구속하신 백성들에 대한 언약의 은혜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세상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예정에 속한 것으로 주의 백성들이 여호와를 송축할 두 번째 이유에 해당합니다.

 

만약 우리가 죄와 허물과 병으로부터 구속을 받은 후에 다시 죄에 얽히면 어떻게 될까요? 성경은 이에 대하여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은 후에 다시 더러운 곳에 눕는 것과 같다 하였습니다.

 

세상은 죄로 가득찹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해도 죄의 본성이 가득한 인간 세상은 날이 갈수록 악해지고 더러워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원해도 이 지구상에 전쟁이 없었던 시대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은 날로 악해지고 갈수록 더러워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이 땅에 의를 선포하시고 의로서 세상을 판단하십니다. 그러나 의로운 행동은 의로운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그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칭의로서 의로움의 기준이며 우리가 주로부터 받은 진리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6) 하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바리새인들보다 의롭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한다 하셨고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 하시며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하늘로 올라갔음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로운 삶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어야 할 것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B.     여호와의 자비와 은혜

그로 말미암아 주님은 이 땅에 의의 종과 의의 백성을 세우신 것입니다. 다윗은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알리셨도다(7) 하였습니다. 다윗은 여기서 택하심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 하시리로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누구에게 더하신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누구에게 자녀가 있어 그 자녀가 늘 패역한다 하여 그 아들을 버리겠습니까? 그 아들에게 더 자비와 인자를 베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악한 자가 있어 늘 나를 반역하고 내가 행하는 일들을 훼방하고 나의 자녀들을 괴롭힌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들을 판단하고 멸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자녀들에게는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않으며 죄악을 따라 갚지 않으시는 것(10)입니다.

 

다윗은 그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여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시신다(11-13) 하였습니다.

 

C.     언약의 자녀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기 백성에게 이처럼 관대하시고 인자를 더하시는 이유는 우리 또한 세상 사람들과 같이 우리의 체질이 진토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우리는 피조물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여 세상의 죄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지 않으려 해도 우리의 육체가 나를 죄로 사로잡아 가려 합니다.

 

바울은 네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7:23)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늘 죄의 고통을 걸머지고 주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주께서 우리 안에 성령을 두신 것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고통을 말하여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한다(15,16) 하였습니다. 참으로 덧없는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껏 살아야 한세기인데 무엇을 위하여 욕망의 세월을 살아가는 것인지 참으로 허망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영원무궁한 세상이 있다 할 때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17,18) 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믿음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의식에 치중하고 또 현실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종교의식과 현실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언약을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III. 하나님의 통치의 은혜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22)

 

   A. 하늘보좌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노래하여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하였습니다. 지금 여기서 다윗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그 나라와 민족을 따라 통치의 수단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국가에 때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영혼을 가로막는 장벽 속에 갇혀 우상과 이념과 철학에 시달리며 그 독재자들에게 생명의 파멸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는 최근 우리나라를 훼방하는 무리들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손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남겨 두셨습니다. 그들을 위해 하나님은 아직 우리에게 은혜의 시간을 더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권세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창조의 보좌 위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의 나라를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였고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의 권세는 하늘로부터 나옵니다.

 

    B. 천사들의 송축

다윗은 20절에서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사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천사들을 누구라고 생각해야 하느냐에 따라 그 해석의 차이를 갖게 됩니다.

 

히브리기자는 또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히1:5) 하였고 천사들에 대하여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신다(히1:7) 기록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여기서 말한 천사 중에 누구란 말할 것도 없이 다윗을 말한 것이며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신 것이며 따라서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삼으신다 에서 는 말할 것도 없이 주를 말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모세를 가리켜 율법은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이라(갈3:19)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란 과연 누구를 지칭한 것일까요? 성경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또 그 말씀들을 성취해 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늘의 능력을 입어 바다를 가르고 강을 가르며 하늘에서 불을 내리기도 하고 삼 년간 비를 멈추기도 했으며 죽은 아들을 살려 어미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는 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일으켰으며 의로운 여종 도르가를 살렸으며 주 성령을 속인 아나니야와 삽비라의 영혼을 던져 버렸습니다.

 

또 바울은 고통의 육체를 이끌고 바다와 산과 사막과 동포의 위협과 파괴하는 이방인의 손을 이기고 땅끝에 이르러 복음을 전했으며 로마황제 앞에 진리의 복음을 증거하기에 목숨을 던졌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여호와의 말씀을 성취하였으며 여호와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여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C. 천사의 봉사

계속하여 다윗은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였습니다. 이는 앞에서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리셨다(7) 말씀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봉사를 위해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엡4:1) 권고하며 이를 위하여 주께서 하늘로 오르실 때에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성령을 그가 사로잡은 자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하였으며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하였습니다.

 

우리는 계시록에서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그의 제자들과 그의 성도들이 하늘에서 입을 영광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우리를 경계하여 범죄하지 말라 경고하며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하였습니다.

 

요즘 생각건 데 나의 부족함에 대하여 스스로 실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 영혼을 만족시키시는 주님의 말씀이 내 앞에 있어 나를 기쁘게 하심으로 주께서 좋은 것을 내 소원을 만족케 하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필히 내 눈으로 능력으로 주의 말씀을 이루는 천사를 볼 것입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로 하여 영혼을 만족케 하셨으니 이제 나로 주의 얼굴을 보게 하소서 내가 고통의 잠을 잘까 하오니 내 영혼을 깨워 오직 나의 주를 송축하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내가 주의 천사와 천군들이 주의 허리에서 나오는 것을 보겠나이다. 아멘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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