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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90:12) 천년을 사는 지혜

이요나 2007. 2. 26. 10:19

(시편90:12) 천년을 사는 지혜

 

(시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제 우리는 시편 4번째 단락을 공부할 차례입니다. 흥미롭게도 제4권 90편의 서두에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는 주석이 붙어 있습니다. 시편은 다윗의 시대를 중심으로 기록된 책인데 모세의 기도가 나오는 것은 기이한 일입니다.

 

모세는 성경 기록자 중 가장 오래된 사람입니다. 그는 애굽의 왕자로 성장한 당대 최고의 학문과 지식을 겸비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영광을 체험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출15장). 그 노래는 다시 계시록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생을 마감하면서 후손들에게 교훈의 노래를 남겼습니다(신32장). 어쩌면 90편은 40년 광야생활의 고통 속에서 여호와의 안식을 소망하며 올린 기도로서 후일 다윗에 의해 편집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I. 영원하신 하나님(1-2)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1)

 

A. 영원한 거처

모세는 1절에서 에 대한 정의를 우리의 영원한 거처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한 것으로 하나님 그 자신의 인생의 거할 처소라는 말입니다. 또한 여기서 거처란 주거 장막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피난처, 요새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11:9,10)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삶의 터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영혼의 안식처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거할 영혼의 구속을 바라보며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리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빌3:20) 하였고 그 날에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1) 증거하였습니다.

또 베드로 사도는 내가 이 장막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나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안다(벧후1:13,14)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성도들의 거처는 하나님 그 자신인 것입니다.

 

B. 영원부터 영원까지

모세는 2절에서 산이 생기기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대한 또 다른 정의로서 주는 삼위일체이신 창조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는 우리 영혼의 거처이자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란 어느 시점이 없는 시간부터 어느 시점이 없는 시간까지를 의미합니다. 이곳은 오직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으로 한계 속의 인간의 지혜로 예측할 수조차 없는 영원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의 시간을 통해서만 이곳을 알 수 있습니다.

 

II. 인생무상(3-11)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3)

 

A.     티끌 같은 인생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 안에는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 하나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생의 그 존재의 가치가 무익함을 깨닫게 되고 성경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위대한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 속에는 인생의 무상함과 희비애락과 영광을 향한 소망이 함께 거하게 됩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다는 말씀은 아담의 원초적인 죄를 언급하신 것으로 여기서 우리는 주께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명령권자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원이 그의 말씀으로부터 출발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생으로 하여 티끌로 돌아가라 하셨으므로 본디 사람은 또 다른 존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B.      초목 같은 인생

시편기자는 4절에서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기록하였습니다. 천년이란 생명을 경험할 수 없는 역사 속의 시간입니다. 흥미롭게도 베드로 사도는 종말의 날을 더디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 하였습니다. 이것은 천년이란 시간이 인간에게서 떨어져 나간 오직 하나님의 공간 속에 있는 시간임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년이란 시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수명이 천년의 세월과 관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조 시 인간의 조상 아담은 930년을 살았으며 아담의 팔대 손 에녹을 낳은 야렛은 구백 육십 이세를 살았으며 에녹의 증손자 무드셀라는 구백 육십 구세를 살아 이 땅에 생명을 누린 사람 중에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이 역사 속에서 인간은 창조된 이래 오늘까지 이 땅에서 6000년 살아 왔습니다. 상당히 오랜 세월입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그와 함께 살던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시간 속에서 6분의 1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들은 모두 오늘날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나이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천년을 살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 최고의 의학과 문명이 발달한 21세기에 우리는 고작 90의 나이를 넘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체 지도가 완성되고 체세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앞으로 인간이 얼마나 더 오래 살수 있을지 의문입니다만 이것으로 우리는 노아 홍수 이전의 인구밀도가 어떠했음을 짐작할 있습니다. (그 당시 인간 평균수명은 912세였으나 500세로 잡고 한 가족 증가를 8명으로 잡고 계산할 때 약1370억에 이른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은 우리에게 천년의 날을 다시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입니다. 계시록 20장에는 천사가 무저갱 열쇠를 갖고 내려와 이 세상을 지배하던 사단을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넣어 봉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천년왕국을 살게 됩니다. 그야말로 천년을 사는 것입니다. 이 영광을 위하여 오늘날 우리는 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C.     은밀한 죄

5절에서 시편기자는 인생이 홍수처럼 쓸려가고 아침에 돋는 풀처럼 베이고 마른다 하였습니다. 천년을 살던 인생의 영광이 이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이 일을 말하여 모세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하였습니다. 결국 인간의 몰락은 주의 분노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하여 그는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8,9) 하였습니다.

 

여기서 은밀한 죄란 드러나지 않은 죄와 허물들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여 마음 속에 간진한 죄입니다. 이것은 인간들의 모순이며 패역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예로 말할 때 남편이 아내에 대하여, 아내가 남편에 대하여 감춰둔 비행들과 같으며 자녀들이 부모 앞에 죄를 숨기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그로 하여 인간의 티끌로 돌아 간 것입니다. 이에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고백 하였습니다. 참으로 슬픔과 허망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탄식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권세라도 주의 노를 그치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계신 권능자이시며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허물의 사람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의 복을 말하며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시32:1,2)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 그 자신이 스스로 범했던 죄이기도 합니다.

 

그는 계속하여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다 하며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시32:3-5) 고백하였습니다.

 

III. 수명의 계수함의 비밀(12-17)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12)

 

우리말에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자기 누울 자리를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영혼이 자기가 돌아갈 곳을 바라 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느 사람이든 간에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더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 되기 마련입니다.

 

시편기자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쳐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그 죽을 날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죽기를 싫어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흥미롭게도 이 말씀 다음에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생의 날을 계수하는 것이 주의 종들에게 맡겨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여 여기서 우리의 날을 계수함을 가르쳐 달라는 것은 인간의 죽을 날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날 수가 심히 덧없으니 하나님의 거처 속에 거한 천년의 시간을 준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의로운 백성들에게 예비된 그 날을 주의 종들이 깨닫게 하여 달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생명이 그의 말씀 가운데 거하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16절에서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하였습니다. 주의 영광이란 이제 곧 오실 그리스도의 날을 뜻합니다. 이것은 예로부터 주의 종들을 통해서 그 후손들에게 가르쳐온 의의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중에 슬픈 일은 아직도 교회가 감추어진 천년의 세월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천국의 비밀이기도 합니다만 주님은 이미 그의 종들에게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주께서 천국의 비밀은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비유로 한다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수천년이 우리 앞에 달려 온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천년의 약속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과 인내 또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를 위해 의인의 죽음도 불사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의 은총을 간구할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이 우리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부디 당신의 날 수를 계수하시는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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