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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88:13) 내 영혼의 기도

이요나 2007. 2. 26. 10:20

(시편88:13) 내 영혼의 기도

(시88:13)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

 

시편 88편은 매우 슬픈 노래입니다. 아마 믿음의 사람들은 한 두 번 이런 기도를 했을 법합니다. 나는 이 시편을 기록한 기자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불행하게도 나는 십여 년 동안 이와 같은 부르짖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세상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며 풀리지 않는 고통의 삶을 살아야만 할 때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편안하게 즐기며 살아가는데 유독 나만 고독하고 외로운 투쟁을 하는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의 기도는 이성의 도를 넘어서 발악하는 자에 도달하게 됩니다. 마치 눈 앞에 하나님이라도 계시면 받아 버릴 듯한 상태로 돌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이처럼 영혼의 고통을 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교회들은 모두 평안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주야로 주 앞에

시편기자는 1절에서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 서술하였습니다.

 

주야로 주 앞에 부르짖었다는 것은 그의 삶 전체가 주 앞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야로 무릎을 꿇고 주께 기도하였다는 말이 아니라 그가 무엇을 하던지 간에 그의 영혼이 주 앞에 부르짖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침 저녁으로 침상에서 머리를 들고 주님 오늘 하루를 주셨아오니 나를 지켜 주시고 평안한 잠이 들게 하소서 기도하며 식탁 앞에 앉을 때마다 고개를 잠시 떨구어 내게 맛있는 음식을 주시어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보통 믿는 사람들의 기도 내용이며 기도 스케줄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새벽에 성전에 나아가 기도하기도 하며 금요철야에 나가기도 합니다. 또 기도원으로 기도를 떠나기도 합니다. 이처럼 기도의 시간과 공간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영혼이 핍절하여 안식을 얻지 못한다면 당신의 영혼은 기도할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하루종일 영혼의 안식을 얻기 위해 안절주절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어떤 삶의 문제에 당면하였다기 보다 그의 영혼이 안식을 찾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혼이 핍절할 때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대저 나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음부에 가까웠사오니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인정되고 힘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사망자 중에 던지운 바 되었으며 살륙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다시 기억지 아니하시니 저희는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3-5) 하였습니다.

 

먼저 시편기자는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다고 호소하였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를 혼돈 시키는 여러 가지 상황을 의미합니다. 나는 최근 많은 영적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민노당에서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부르짖으며 성전환자들의 성별을 바꿀 수 있는 특별법을 제안한 가운데 정국은 국군 통수권 문제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습니다. 이런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정부 주도하에 개설된 바다이야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도박의 불랙홀 속으로 침몰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 DJ 정권 시절에 파놓은 강원도 폐광촌에 파놓은 카지노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는 IMF 직후라 어떻게서라도 국가 부도를 막아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 수렁을 매우려는 정권이 무엇을 하던지 그대로 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민노당에서 제안한 성전환자의 성별변경 특별법안은 DJ정부 때에 기틀을 놓았던 것입니다. 재판부가 성전환자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판결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러한 문제를 국가의 혼란과 맞물려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몸이 영과 혼과 육체로 지음을 받았듯이 국가도 영혼(종교)과 이성(정치)과 국민들의 삶(경제)가 삼위일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기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일이 잘되고 강건함은 영혼이 잘 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훌륭한 영적 지도자들을 만나 가르침을 받아 주를 섬길 때에는 그 나라가 융성하고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이 부패하여 경건함이 깨어지고 우상이 범람하고 신접한 자들과 남색하는 자들이 처처에 횡횡할 때에 이스라엘은 극도로 혼란해져 외세에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역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흐름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도하게 비대해진 한국교회는 최근 또 다른 바람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각 교파가 일치하여   성도의 영적 각성을 외치며 교회성장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미 세상은 온통 음부의 사망 가운데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 교회는 한 목 소리가 되어 세계 평화를 위해 교회들이 성장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흥종교 운동가 릭워렌 목사가 주창하는 목적이 이끄는 삶과 목적이 이끄는 교회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새로운 주자로 등장한 온누리 교회가 여의도 교회와 손을 잡고 오는 10월10일 윌러 크리닉의 빌 하이벨스 목사를 초청하여 한국에 불붙여 놓은 릭워렌의 불꽃에 기름을 붙는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근자에 없었던 일입니다. 각 교단이 서로 비방하며 서로의 교리적 강세를 주장하던 교파들이 손을 잡고 일어서고 있는 것은 주목할 일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한국 교회들이 어느 한 바람으로 휩쓸려 가고 있는 것입니다.

 

5절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3절과 4절에서 시편기자는 고통을 호소하는 자가 자신으로 시작하여 저희로 종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영혼의 핍절함을 당하는 자 모두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느 지체 한 부분이 아프면 온몸이 함께 아픈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머리가 잘못되면 모두가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세우신 것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휼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3,14) 하였습니다.

 

시편기자는 6절에서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 어두운 곳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니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루시고 주의 모든 파도로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셀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이 죽음의 핍절한 상태에 놓인 것은 주의 분노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세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 나단 선지자의 책망으로 죄를 깨달았을 때 토한 회개의 시입니다.

 

또한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하다가 깊은 바다 속으로 내어 던짐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로 던지셨음으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욘2:3) 울부짖었습니다.

 

계속하여 시편기자는 주께서 나의 아는 자로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로 저희에게 가증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8) 하였습니다. 여기서 가증이란 구역질날 정도의 혐오를 말합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구역질 나도록 혐오스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생활 가운데서 이유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을 당하고 멀리 피함을 당해 본 일이 있는지요? 나는 사실 이러한 일을 여러 번 당했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사람들은 나를 마치 에이즈 환자처럼 대하기도 합니다.

 

얼마전 XTM 이란 테레비전의 동성애 사랑에 대한 토론에 패널로 참가했었습니다. 프로의 내용을 면밀히 조사해 보지 못하고 나간 나의 잘못도 있었지만 과거의 내 모습을 백일하에 쏟아 놓은 나를 마치 혐오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눈으로 자신의 모습을 살펴 본다면 자신의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싶습니다.

 

*혼돈의 상황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곤란으로 인하여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손을 들었나이다(9)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의 곤란함은 죄악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시고 책망하시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의 혼란함은 우리의 범죄로 하여 주의 낯에서 가리운바 되었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진리에서 끊어지면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을 얻지 못함이라(살후2:9,10) 하였고 다시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라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3:11,12)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여야 하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죄중에 그대로 죽어 사망으로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구원자가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우리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구속자를 향한 열정

시편기자는 주께서 사망한 자에게 기사를 보이시겠나이까 유혼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오리까(셀라)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하실 수 있으리오까 흑암 중에서 주의 기사와 잊음의 땅에서 주의 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10-12) 외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당돌한 질문입니다. 죄악 중에 있는 인간이 감히 창조자이신 하나님께 이처럼 당돌한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그 구속자를 찾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이 나의 영혼의 중보자가 누구입니까 외쳤듯이 나를 택하신 주께서 주의 예정하신 뜻을 버리시고 나를 사망으로 보내시겠습니까 하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후의 발악과 같은 외침입니다.

 

시편기자는 13절에서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편기자의 영혼이 얼마나 커다란 혼란과 고통에 처해 있었으며 그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주께 기도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이것은 지도자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의 고통을 쏟아 부어 사망에 처한 모든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는 울부짖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온 영적 혼란과 죄악은 그가 직접 지은 죄가 아닌 국가 통치의 범죄로서 택하신 자의 울부짖음을 통하여 그 백성을 구속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바라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버린바 되고 마치 가증한 자처럼 되어 백성들의 혐오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없으신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서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시기 위한 것입니다,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 앞에 달하리다는 표현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흑암 속에서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의 소망과 목표는 빛을 바라 볼 수 있는 아침에 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그의 택하신 자를 버리지 않으시는 사랑을 근거로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시편기자는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시겠나이까 내가 소시로부터 곤란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의 두렵게 하심을 당할 때에 황망하였나이다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마치 주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땀을 흘리시며 간구하시던 호소와도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원치 않는 영혼의 곤란함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유없이 친구들이 떠나고 고통과 눌림이 물같이 에워쌀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의 구속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우리 앞에 있으니 그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를주께서 거하신 평안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 내 영혼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요, 내 영혼이 쉴 곳을 찾지 못하여 많은 물 속에서 고통을 당하나이다. 그러나 나는 주의 은혜를 입었사오니 새벽에 주를 만날 것입니다. 주여 나로하여 주의 광명한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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