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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86:11)진실한 기도

이요나 2007. 2. 26. 10:20

(시편86:11)진실한 기도

 

(시86: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케 하소서

 

시편 86편은 다윗이 쓴 시라 기록되었습니다만 이것은 후대 사람들이 리메이크 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의 문체와 영성이 다윗의 시와 동일합니다만 고라의 시와 함께 편집한 것으로 보아 후대 사람들이 다윗의 영성을 좇아 다시 노래한 것이라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기도문에서 늘 발견한 것이지만 86편에 나타난 다윗의 인격은 참으로 위대하기만 합니다. 한 시대를 호령하며 다윗의 왕국을 이룩한 제왕의 기도가 이처럼 구구절절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니 그는 정말 하늘의 영감을 받은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이에 비하여 신령한 성도라 자칭하는 우리의 기도를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자신의 필요와 문제에 속한 것들로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상생활 속에서 필요한 것들과 삶 속에서 돌발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도들입니다.

 

물론 때때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를 위한 기도도 합니다만 대게 그런 기도는 그 의미조차 깨닫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따라붙는 입에 발린 기도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함께 보는 시편 86편은 오늘날 우리의 기도와 무엇이 다른 지를 깨닫게 하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I. 곤고와 궁핍함

다윗은 먼저 자신의 곤고함과 궁핍함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창조자 앞에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은 항상 상대적입니다. 나의 힘과 능력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들에 미치지 못할 때나 아니면 상당한 지위나 능력을 가진 사람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자신의 초라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곤고함이란 처해진 정신적 상황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어떤 일을 할 수 조차 없는 꽉 막힌 어려운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궁핍은 재정적 고통의 상태입니다. 이 글을 읽을 때 찬란한 이스라엘 왕국을 일으킨 다윗왕으로서는 걸맞지 않는 말 같습니다만 사실은 다윗왕이라도 이러한 상황에 처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곡한 기도를 하는 이유는 곤고하고 궁핍함 때문입니다. 배가 부르고 등 따시면  구태어 하나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재물은 결국 우상 숭배가 되며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 가기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 기도의 첫번째 조건은 곤고함과 궁핍함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II. 영혼의 기쁨

두번째로 다윗은 경건한 믿음 가운데 있는 자로서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영혼은 하나님을 형상을 사모하는 사람의 형상입니다. 물론 사람의 형상은 육체의 인격이 먼저 나타나게 됩니다만 하나님을 향한 영혼을 상실한 인간은 생물학적 인간일 뿐입니다.

 

다윗은 주께 영혼의 보전을 구하면서 자신의 경건함을 주장하였습니다. 여기서 경건은 하나님을 연모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을 사모하는 뜨거운 열정과 충성하는 믿음의 상태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내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감사 드립니다. 만약 주께서 내 영혼을 주 앞에 두지 않으셨다면 나는 벌써 미끄러져 미혹의 길로 멸망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택하신 자의 연약함을 위해서 우리 안에 두신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가 우리의 연약함을 위해 우리 안에서 탄식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과 경건함은 다릅니다. 경건이란 주를 사모하여 우리 스스로 주 앞에 나갈 수 있도록 믿음의 자세를 갖추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의 언행을 삼가고 절제하며 주의 가르침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오직 주를 의지하는 마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어떤 행위로도 주 앞에 스스로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성을 가진 인간이고 그는 거룩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므로 우리는 오직 주의 긍휼하심 가운데 주께서 돌아 보실 때까지 부르짖어 주께서 내 영혼을 기쁘게 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III. 주의 영화로운 이름

세번째로 다윗은 경이로운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고 있습니다. 주께서도 제자들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기리게 하셨습니다. 다윗의 시 중에 두두러지게 나타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사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홍해를 가르고 바위를 갈라 물을 내신 것과 만나를 내려 먹게 하신 일들을 본 것은 아닙니다.  그도 우리와 같이 성경에 기록된 조상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들을 보았을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이 그의 삶 속에서 성경을 벗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의 능력의 경이로움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실 같은 내용을 거듭해서 본다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주를 사랑하면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록하신 말씀을 읽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기쁜 일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연인의 편지를 읽는 것 같을 것입니다.

 

나는 최근 야곱의 행적을 읽으며 야곱에게 행하셨던 일이 모두 내게 행하신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섭리하시듯이 나를 오랜 세월 속에 연단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 곧 이스라엘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야곱이요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IV. 주의 도를 가르치소서

네번째로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를 행하리오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여기서 진리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도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도나 진리나 같은 말입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의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내가 저희에게 아버지로부터 받은 모든 말씀을 주었사오니 아비지께서 나로하여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다 하셨습니다. 계속하여 주님은 저희가 나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받음으로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저희로 악에 빠지지 않도록 진리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소서 하셨습니다(요17:14-17).

 

우리는 11절에서 다윗이 주의 이름을 경외한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주의 진리를 행하기 위하여 주의 가르침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로하여 다윗은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옵니다(12) 하며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영혼을 깊은 음부에서 구하셨다 찬양하였습니다. 여기서 깊은 음부란 생명이 없는 낮은 세계를 의미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 십여년을 말씀과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아직 내가 온전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서야 하나님의 진리를 알 수 있을 것 같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알 것 같습니다. 주께서 내게 인자를 더하지 않으셨다면 나의 영혼은 음부에 빠져 버렸을 것입니다.

 

다윗은 14절에서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가 일어나 나를 치고 강포한 자의 무리가 내 혼을 찾았아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 앞에 목이 곧은 자를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교만한 자의 목거리가 어찌도 자랑스러웠는지 나 또한 그것을 잡으려 달려가곤 하였습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여 주의 말씀을 내 발 앞에 두지 않으셨으면 나는 교만한 자의 노예가 되어 사람들의 혼을 사로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 교회의 모습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릭워렌 목사가 큰 소리로 휘몰고 가더니 온누리 교회에서 빌 하이벨츠 목사를 초청한다 합니다. 그들은 모두 이 땅에서의 지상낙원을 위하여 교회성장을 주창하는 목사들입니다.

 

물론 그들이 복음전도를 위하여 많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만 복음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한 것입니다(롬1:17).

 

바울은 주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인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사람의 궤휼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하였습니다(엡4:11-14).

 

V. 주의 능력

끝으로 다윗은 주의 종에게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가 요구한 능력이란 주의 종인 자신과 주의 종의 자녀들로 악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나라에 이 땅에 임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도 아버지께 기도하여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으며 나의 간구는 저희를 데려가심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를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하여 달라 하셨습니다.

 

많은 주의 종들이 주께 간구하여 방언과 예언과 능력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위로 올라가실 때 그의 사람들을 사로잡아 사도와 선지자와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의 선물을 주신 것은 아버지의 말씀으로 성도를 온전케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심입니다.

 

주님은 주여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할 것이라 하시며 교회 중에서 예언과 능력을 들어 자신을 높이는 자들을 향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셨습니다(마7:21-24).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윗과 함께 기도하여 주여 이제 은총의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하고 기도할 때입니다. 이로서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보고 부끄러워 할 것입니다. 성경은 자신의 한 일로 주 앞에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다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심으로 주의 말씀을 들으며 주의 말씀을 가르쳐 나와 함께한 모든 성도와 함께 주의 날을 기다릴 것입니다.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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