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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84:2)사모의 노래

이요나 2007. 2. 26. 10:20

(시편84:2)사모의 노래

(시84: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편 84편은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어느 때 기록된 것인지 말 알 수 없습니다만 이 시는 메시야를 염두에 두고 노래한 영혼의 노래입니다. 어떤 면으로 볼 때 하나님의 궁정을 사모하는 다윗의 마음을 노래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시는 경건한 성도들의 멍든 가슴을 잔잔한 은혜로 채워 주는 위로의 노래이기도 하며 연약함에 쌓인 성도들의 기도문이기도 합니다.

 

고라는 레위 지파에 속해 하나님의 기업을 지키는 지파입니다. 그들은 문지기로서 성전의 출입하는 물목들을 살피고 감시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고라의 반역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고라는 모세시대의 인물로 레위지파 중 한 족장이었습니다. 그는 같은 레위지파로서 아론의 자손만 제사장에 집무를 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하여 불만을 갖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모세 앞에 반항을 하였습니다.

 

이때 모세는 레위지파의 각 족속들에게 각족속의 대표자들로 하여 향로를 갖고 성전으로 나오라 하였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살펴 보기로 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론의 향로를 받으시고 고라와 당을 지은 지파들은 땅 속으로 삼켜 버렸습니다.

 

후일 유다는 종말에 선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가인의 길을 행한 사람들과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사람들과 고라의 패역을 쫓는 사람들이 멸망을 받을 것이라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를 쓴 고라의 자손은 선조의 반역의 아픔을 되새기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를 힘쓰는 열정으로 이 시를 썼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시편기자는 서두에서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노래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발견입니다. 이것은 성전의 외적인 요소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하나님과의 교감에 대한 아름다운 노래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은 원래 하늘에 있는 성전의 모형을 보여 짓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막은 하늘의 위엄과 경건의 소재이며 성도들의 예배를 받으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하나님의 거소인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2절에서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구성이 영과 혼과 육체로 지음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목이 마르면 육체가 마실 것을 찾아 헤메이듯이 우리의 혼 또한 온전한 삶의 욕구에 의해 합당한 지혜와 지식을 탐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의 영혼도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헤메이게 됩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4장에서 삶의 갈급한 기로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갈망하는 사마리아 여인을 보게 됩니다. 그 여인은 목마름을 체우기 위해 우물로 나섰고 주님은 그녀의 삶의 근본적인 갈급함의 문제로부터의 자유함의 필요성을 깨우치셨습니다.

 

많은 인생들이 삶의 진실을 찾기 위해 헤메이고 있습니다. 그 육체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재물을 모으고 명예를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인생은 그 욕망의 갈급함을 채우지 못하고 더 낳은 삶을 향하여 몸부림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그가 갈망하는 것은 그 영혼의 만족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 그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면 그의 영혼은 만족을 얻고 궁국적인 인생의 소망을 바라보며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어느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영혼의 만족이며 이상의 만족으로 육체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들은 그를 만나기까지 보이지 않는 것들과 싸우며 눈물 골짜기를 지나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약할 때 강함이라 노래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체 된 우리의 연약한 심령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우리가 부요함에 빠지면 우리의 마음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고 스스로 자신을 높이기에 이릅니다.

 

시편기자는 계속하여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하였습니다. 왕은 통치자이며 내 생명의 보호자를 말합니다. 이 말씀은 이 땅의 모든 호흡들 곧 생물이 살아가는 원리를 언급한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의 높임을 위해 주를 따르려는 바리새인을 향하여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허망한 것처럼 들리나 그는 세상에 생명의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궁정 장막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4절에는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기록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일을 멈추고 교회에 거하라는 말씀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많은 이단들이 이러한 말씀을 들어 성도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하늘에 있는 장막을 말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그는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주께 힘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의 말씀과 성령의 안위하심입니다. 우리가 지식을 얻기 위해 많은 스승을 두고 배우며 우리의 연약함을 채우듯이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도성 시온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그 영혼은 그의 은혜로 만족함을 얻을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저는 눈물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6)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의 나라를 위하여 애통하는 자의 눈물을 보게 됩니다. 그는 오직 주의 나라를 위해 자기의 일생을 헌신하여 고통의 눈물로 하여 사람의 영혼을 만족케 할 샘을 이루게 합니다.

 

물론 영혼의 만족을 얻는 사람들은 육체의 만족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만족은 육체의 소요와 반비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으면서도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위해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허리가 무너지기까지 그 만족을 채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우리와 같은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자기 목적을 성취하기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 자기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기의 소욕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로 결정을 합니다. 이것이 야곱이 성취한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하였습니다. 야곱이 바로 내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야곱의 속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우물로 만족할 육체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육체 된 우리의 영혼을 무엇으로 만족케 하실까요?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인자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그가 네게 목 마르지 않는 물을 주리라 하셨습니다. 그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자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을 채우시며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10절에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하였습니다.

 

주님은 너희가 주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할 것이라 하였고 세례 요한을 가리켜 이 세상의 여자가 낳은 아들 중에 그보다 큰 자가 없을 것이나 천국에서의 가장 작은 자가 저보다 크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 가는 자들의 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해와 방패가 있다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해는 나를 지키는 빛의 근원이며 그 안에는 어둠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주께서 방패가 되시면 내가 무엇을 두려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주께 의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교회에 나가서 찬송만 부르고 기도만 하라는 것일까요? 누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는 실로 주 하나님 여호와를 모르는 자일 뿐입니다. 주께 의지한다는 것은 세상 가운데 내 생명을 다른 것에 두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내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것도 아니요, 내 마음의 소욕을 성취하게 위해 세상의 힘과 재물에 의지하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주께 의지하여 내 생명의 소망을 하늘에 두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또한 재물을 창고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라 하셨습니다. 삶의 목적을 세상에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늘에 있는 장막을 사모하여 그의 날에 우리가 받을 영광의 상급을 위하여 오직 주의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만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로하여 우리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정말 3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 더위 속에 한 여름 잘 지내셨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또 어떤 날들이 우리 앞에 다가올지 우리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를 사모하는 영혼을 주께서 지키시며 그의 기름부음으로 풍요롭게 하실 것입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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