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85:8)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라
(시85:8)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대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저희는 다시 망령된 데로 가지 말지어다
시편85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온 때에 고라 자손에 의해 기록된 시입니다. 시편기자는 포로생활에서 그들의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로 돌아오게 하셨으며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1,2)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바벨론 포로가 되었던 것도 그들의 죄악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크리스챤들이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주의 자녀인 나에게 이러한 고난을 겪게 하시는가 한탄하기도 합니다. 물론 때로 하나님의 그의 자녀들을 고난에 들게 하여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그의 백성들을 시험하지 않으시며 또 자녀로 고난에 들게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주의 자녀들은 이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모든 시험과 죄에서 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3절에서 "주의 분노를 거두시고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 다음 구절에서는 아직 하나님의 진노가 남아 있는 것처럼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 느부갓넷살에 의해 멸망을 당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굴욕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후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때가 되어 페르시야의 고레스 왕에 의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에스라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영도를 받으며 꿈에 그리던 예루살렘으로 돌아 와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서 이스라엘의 영광이 다시 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되지 않아 생각지 않았던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성전건축을 훼방하는 자들에 의해 그들의 위대한 소망이 끊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성전재건은 후일 바벨론에 남아 아닥사스다 왕에게 술잔을 올리고 있던 느혜미야에 의해 다시 재개되었습니다.
백성들이 고레스 왕으로부터 귀환 명령을 받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 된 백성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것이라 감사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다시 놓인 고난을 보고 그들은 다시금 자신들의 죄를 생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에 시편기자는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발분하시겠나이까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4,5) 호소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고난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아직 나의 죄를 완전히 사하지 않은 것인가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처럼 기분에 따라서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여 주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로 온전한 곳에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하기 위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트리는 것과 같고 사자가 새끼를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책망하여 채칙질을 하는 것은 그 아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은 아비가 자식을 책망하지 않으면 그는 사생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있어 고난은 하나님의 더 기업을 받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7절에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호소하였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무엇인가 커다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미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주의 인자하심과 구원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죄사함을 받은 구원의 자녀들이 더 이상 넘어지지 않을 믿음을 요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주의 안식에 들어 가기 위해 세상의 죄에 다시 휘말리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8절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는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대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저희는 다시 망령한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주의 은혜와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주의 인자하심 가운데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구원을 원하는 성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 말씀 속에는 그의 백성들을 화평케 하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생활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울부짖으며 기도만할 줄 만 알았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날몇일 밤을 새워 울부짖을줄만 알았지 가만히 앉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국가 지도자들의 타락을 일일이 하나님께 고하고 이대로 두어도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주께서 심히 두려운 이방인을 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치시겠다고 답하셨습니다. 이에 하박국은 놀라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범죄를 짐승만도 못한 이방인들에게 붙이시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의 하였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주의 백성이 범죄하였으면 하나님의 손으로 치실 것이지 더러운 이방인들을 들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을 치시게 하시겠다 하나님의 속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항의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어떻게 올지 파수대로 올라가 기다렸습니다.
나는 요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내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나의 의견을 하나님께 말하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무엇인가 묻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기도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전에 재빠르게 행동을 옮겨버리기 일 수였습니다. 그로 하여 나는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결국 일이 엉켜 이리저리 꼬여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내가 앞서 일을 벌리지 않았더도 하나님의 때에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한참 후에 그의 응답을 받고서야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이처럼 어리석은 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한치의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식은 부분적이고 치우쳐 전체를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조급하여 내일 하루 일을 알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앞서기를 자처합니다. 우리의 조급함 때문에 일을 그르친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주께서 그 백성 곧 그 성도에게 화평의 말씀을 하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창조자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왕이요 아버지이시므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말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망령됨이란 어리석음 곧 무지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여 아는 척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계속하여 시편기자는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이에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9)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관해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하나님의 평안에 들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구원받은 자녀들에게 "우리가 잠에서 깰 때가 되었나니 이는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음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을 때 이미 죄사함의 구원은 받았으나 아직 우리에게 예비된 하나님의 영광이 남아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주의 인자하심을 요구하며 온전한 구원을 호소한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10절에서 "긍휼과 진리가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하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죄의 속성과 한계 속에 갇힌 우리를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진리를 베푸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아버지 하나님께 그의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여 내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다 하셨으며 저희는 말씀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참으로 알았다 하셨습니다(요17:8).
주님은 계속하여 내가 저희로 인하여 영광을 받았다 하시며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를 미워하오니 오직 저희를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여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제시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케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요17:17)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사단이 우리를 찾아 헤메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로마서 10장 9절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이 이르리라" 한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앞에서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롬8:8) 하였으며 믿음은 들음으로 말미암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 하였습니다. 과연 여러분이 오늘날 듣는 것이 무엇입니까? 목사의 설교입니까? 대언의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까?
계속하여 시편기자는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는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서 나타났고 의는 하늘의 신성 곧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하심으로 비롯하였습니다. 그 모든 것은 주께서 자녀로 삼으신 주의 백성들을 좋은 것으로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들을 위해 땅이 아름다운 소산을 낼 것입니다(12).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기다릴 차례입니다. 너무 조급하지도 말고 그보다 앞서나가지도 말아서 하나님의 백성 곧 그 성도들을 위해 이미 준비하신 화평의 말씀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 말씀 속에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우리의 조급함을 용서하시고 우리로 하늘로부터 오는 의의 말씀을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이제 듣겠나이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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