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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79:11)의인의 기도와 구원의 근거

이요나 2007. 2. 26. 10:22

(시편79:11)의인의 기도와 구원의 근거

 

(시79:9)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속히 우리를 영접하소서

 

시편 79편은 멸망의 노래로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 당할 때의 고통을 노래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원수에게 멸망의 고통을 당한 모든 성도들의 노래라고도 하겠습니다.

 

아삽은 1절에서 하나님이여 열방이 주의 기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으로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기업이란 하나님의 산업, 하나님의 가업과 같은 의미로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과 계획을 위해 경영하시는 민족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믿는 자들을 기업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은 이루 말할 수 없도다 하였으며 자녀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롬8:17)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신 민족이며 그의 기업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자 다윗의 시대에 그 절정을 이루었습니다.그러나 다윗이 그 위대한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기까지 겪어야 할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성경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업 곧 하나님의 도성을 이룩한 다윗 왕국의 장엄한 역사는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열방 중에 그 위엄을 떨쳐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존엄과 명성은 주변 이방국들의 시기의 눈길을 받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업 된 이스라엘의 부귀와 영화는 감사와 찬양의 믿음의 생활로 승화하지 못하고 기업을 이끌어 가기 위해 세우신 종들의 교만과 부패로 그를 따르는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떠나 방자해져 이방의 욕정에 미혹되어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켜 지도자들의 위선과 방자함을 책망하고 회개치 않으면 심판의 날이 임할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70년 동안 이방에 사로잡힐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살펴 보아야 할 것이지만 믿음을 상실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여 결국 하나님의 분노의 화살을 당기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모든 내용들을 우리는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다니엘서에서 상세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방이 주의 기업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열방들이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이스라엘 땅을 침략하였다는 말입니다. 시편기자를 더욱 아프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거룩한 성소가 더럽히고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된 것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거한 궁전이 더럽혀져 궁궐이 무너져도 통분할 일인데 거룩하신 창조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임재하신 성소가 성별되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더럽혀지고 위엄의 도성 예루살렘이 무너졌다는 것은 참으로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로 하여 주를 섬기는 주의 종들이 죽음을 당하여 공중의 새들이 되었고 주의 성도들의 육체는 짐승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참혹함이 얼마나 심했는지 백성들의 피가 예루살렘 사면에 물 같이 흘렸으며 그 죽음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다 하였습니다(3). 참으로 참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와 같은 장면을 다시 계시록에서 보게 됩니다. 계시록 11장에는 지금은 없지만 이제 얼마 후면 다시 지어질 예루살렘 성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다시 경고합니다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이 땅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되는 것을 볼 수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하늘에서 보아야 합니다. 만약 누가 이 성전을 이 땅에서 보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 곧 대환난의 참혹함을 통과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복음의 증인 두 선지자를 보내실 것인데 우리는 그들이 엘리야와 모세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권세를 받아 그들에 예언한 동안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뜻대로 여러 가지 재앙을 내릴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의 증거가 마칠 때에 짐승이 그들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죽이고 그들의 시체를 큰 성 길에 두어 세상 사람들로 목도하게 하고 아무도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기록하였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때에 나는 이러한 장면을 지상에서 보지 않음을 감사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날에 있을 일들을 복음으로 미리 듣고 주의 뜻대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삽은 4절에서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운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염려는 오늘 시편기자의 증거와 같이 미리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던 하나님의 기업된 이스라엘이 비참한 죽음에 이르렀듯이 이미 우리에게 경고된 그날에도 구원함에 이르지 못한 백성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서 통곡을 할 것을 바라봅니다.

 

아삽은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진노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주를 알지 아니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열국에 주의 노를 쏟으소서 이미 하나님의 화살은 떠났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이레로 기한을 정하셨다 예고하셨습니다.

 

오늘 시편기자의 호소는 하박국 선지자의 항변과 흡사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주께서 이스라엘에 노하여 심판을 하시는 것은 마땅함을 피력하면서도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는 이방인들의 손으로 주의 백성을 치시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고 항변하였습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 또한 재난이 임할 때 왜 주께서 우리로 믿지 않는 자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느냐 항변하는 것과도 흡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 아삽은 우리 열조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말아 주기를 호소하며 주의 긍휼을 호소하여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8,9) 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깨달음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러한 신앙고백을 토대로 주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 택한 백성이라 할 때 우리는 주의 영광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재난은 하나님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므로 우리는 주의 이름의 영광으로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여 달라고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목이 곧은 백성들을 모두 죽이시고 모세로 하여 새로운 백성을 일으키자 하셨을 때 주여 주께서 이 백성을 멸하시면 주께서 택하신 백성을 구원할 능력이 없어 멸하였다 할 것이므로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인하여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으므로 자기의 의로운 행위를 들어 기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바리새인과 한 죄인이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는 비유가 기록되었습니다

 

바리새인은 당당하게 성전 앞으로 나아가 나는 저 죄인과 같지 아니하고 십일조를 들아며 일주일에 한번은 금식을 하며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주님 나는 죄인이오니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였습니다. 주님은 죄인된 세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돌아 갔다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의 기도는 자신의 의로운 행위에 근거를 두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주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어 의인의 자격을 얻은 것이지 아직 우리는 육신 된 죄의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가 육신으로 살면 반듯이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8:13) 증거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아삽은 11절에서 범죄한 우리의 상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갇힌 자의 탄식으로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전하소서 이 말씀은 시편 102편에서도 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우리는 절박한 죽음의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기업된 이스라엘의 허망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죄의 사슬에 갇혀 하나님의 정죄를 당했던 지난 날들을 생각해 봅니다. 아마 나와 같이 죄 속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죽이기로 정한 자들이 죄에 갇혀서 주께 탄식할 수 있는 은혜가 남아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그의 택하신 백성을 죽이심이 아니라 그들의 온전한 회개를 통하여 주의 영광에 이르심을 바라신 것입니다.

 

주의 사자 사도들은 그들의 서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예수 그리스도의 기업, 우리를 향하여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경계는 휴거를 통하여 절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잠시 동안의 육신의 장막의 고난을 이기며 주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우리를 영원한 안식처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끝으로 아삽은 주의 백성을 훼방한 그 훼방을 저희에게 칠 배나 갚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훼방이란 영적 반역의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주의 택하신 백성들을 훼방하는 것은 그들 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대적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로서 주의 기르시는 양 된 택하신 백성들은 주께 영원히 감사하며 그 영화로움을 대대에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주의 기업된 우리로 영원토록 주의 영광 중에 거하게 하소서. 대적이 우리를 조롱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마음과 걸음을 지켜 주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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