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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78:5,6)왜 우리의 모델은 야곱인가?

이요나 2007. 2. 26. 10:22

(시편78:5,6)왜 우리의 모델은 야곱인가?

(시편78: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자손에게 일러서


I. 사역자의 모델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셨다는 말씀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은 찬탈자 곧 사기꾼이란 뜻입니다. 그는 태어나기도 전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지만 태어남으로부터 야곱이란 이름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쌍둥이인 형의 발목을 잡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모태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입니다.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후발자로 탄생되었기 때문에 야곱은 장자권을 얻지 못했습니다. 성격적으로도 열등감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 마음에는 자기가 원하고자 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욕망과 시기와 질투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머리가 상당히 비상하게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야곱은 형의 장자권을 탈취하고자 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형의 성격적 약점을 발견하고 바로 시행하였습니다. 에서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자신의 말에 대하여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직분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결국 야곱은 실제적인 장자권 탈취를 위해 모친 리브가와 협동하여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번복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방법으로 이끌어 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이 야곱에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해석하기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로 하여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극도의 불안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서원을 하게 됩니다. 그의 서원은 내 가는 길에서 생명을 보호하여 주시고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일조를 드리고 광야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야곱의 서원을 보아도 역시 야곱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손해나지 않는 완전한 조건부 서원입니다. 하나님께 나의 제안을 들어 줄 수 있으면 한번 해 보시죠 하는 뱃장이 보입니다.

외삼촌의 집에 도착한 야곱은 첫날부터 자기의 아내가 될 여자를 선택하였습니다. 그 조건을 걸고 삼촌과 흥정을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보다 한 수 높은 라반에게 멋지게 당하고 맙니다. 라반은 야곱의 장래까지 내다보고 그를 완전한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라헬의 언니 레아를 먼저 신방에 넣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야곱은 기절할 지경이였습니다. 자기와 첫날밤을 치룬 여인은 사랑한 라헬이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레아였습니다. 라반에게 항변을 해 보지만 기차는 이미 떠나버렸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라반에게 멋지게 당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기의 사랑을 성취하고자 라반과 타협을 합니다. 결국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7년을 더 머슴살이해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취하기 위해 14년을 머슴살이 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야곱은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근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 이처럼 세속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니 참으로 이해가 않됩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14년간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재물을 얻기 위해 다시 6년을 재 계약하셨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재물을 얻기 위해 교묘한 방법을 썼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여 라반의 재물을 뺏아 야곱에게 주셨습니다. 아마 하나님은 야곱의 멈추지 않는 투쟁정신을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야곱은 자기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 멈추지 않는 사람이였습니다.

충분한 재산이 모이자 야곱은 도망갈 생각을 합니다. 야곱이 라반의 재산으로 부자가 되자 라반과 그의 아들의 얼굴색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아들들과 함께 사흘 길을 쫓아 온 라반에게 하나님은 선악간의 말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미스바 언약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미스바라는 말을 서로를 위한 중보기도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스바라는 말은 우리가 떨어져 있을 때 하나님이 너를 감찰하시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제 나는 너의 세속적인 방법을 감당할 수 없으니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너를 감찰하시기 원한다는 언약입니다. 그 정도로 야곱과 라반은 모두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야곱은 집으로 돌아 오다가 형 에서가 사백명의 사람을 이끌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뒤에는 라반이 버티고 있고 앞에는 에서가 칼을 갈고 있습니다. 이제는 혼자도 아니고 처자와 수많은 종들과 가축을 거느렸습니다.

야곱은 형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작전을 세웁니다. 자기 팀을 넷으로 나누어 많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이것은 당신의 종 야곱이 당신을 위해 준비한 선물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종 야곱은 뒤에 있습니다 라고 말하라 하였습니다. 선물로 분노한 형의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던 것입니다.

완전한 작전을 세우고 가족들을 자기가 정한 순차에 따라 앞서 보냈습니다만 그래도 야곱은 안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곱강에 앉아서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하고 궁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야곱이 그를 보자 그에게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절대로 내 앞을 지나지 못할 것이라 하며 그를 가로막았습니다. 아마 그는 야곱의 눈에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처럼 보였는가 봅니다.

밤새도록 씨름을 하였으나 야곱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하나님의 사자는 야곱의 엉치를 쳐서 넘어 뜨렸습니다. 야곱이 마지막 방법으로 생각했던 도주의 길이 막혀버린 순간입니다. 야곱은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더라도 생명은 건져야겠다는 마지막 지혜가 무너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때 천사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그는 야곱입니다. 나는 찬탈자 사기꾼입니다 하고 답하였습니다. 이에 천사는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네가 하나님과 싸워 이겼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이 말은 이제 너는 네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 오늘 시편기자가 말한 바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셨다는 말씀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지금 하나님은 우리에게 야곱을 모델로 세우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네 자신이 야곱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네가가 비록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너는 태어남으로부터 찬탈자 곧 사기꾼과 같은 죄된 인간의 속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는 의인으로 출발하였지만 태어남으로부터 죄임을 자각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택하신 사람이라도 그의 인간적인 속성을 벗어야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야곱을 다스리는데 무려 20년이 걸렸습니다. 단번에 엉치를 못쓰게 하여 굴복시키실 수도 있는데 왜 하나님은 20년이나 섭리하셔야 했을까요?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죄인 됨을 깨달아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으로 살아가는 길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야곱을 통하여 우리에게 인간의 한계성을 깨닫게 하셨으며 인간이 성취한 그 모든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알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인간만사가 새옹지마입니다. .

계속하여 아삽은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다 기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신 민족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민족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보다 잘 가르치기 위하여 법도를 세우듯이 하나님께서도 자기의 백성을 위해 율법과 계명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자자손손에게 그것을 전할 의무와 책임을 주셨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증거와 법도를 후대 곧 후생 자손들에게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자손들에게 일러서
라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알게 하라는 말씀은 깨우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정하신 모든 증거와 율례와 법도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감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복음전도의 방법과 성경공부의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II. 교회의 목표
이제 아삽은 그 목적에 대하여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여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7,8)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말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나아갈 바를 모르고 나아갔으니 이는
오직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11:10) 말하였고 다시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11:16) 증거하였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벧후1:14) 하였으며 바울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
(빌3:20)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믿음의 증인들이 성경에서 그 소망을 깨달은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여기서
완고하고 패역하다
는 말은 고집이 세어 배반의 길로 나간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나아간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곧 배반(패역)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계명은 그를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직하게 하고 충성의 심령 곧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III. 신흥종교 운동에 대한 경계
바울은 마지막 때에 교회의 배도가 일어날 것을 예언하여
누가 아무렇게나 하여도 너희가 미혹받지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라(살후2:3) 경고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배도(아포스타시아) 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떠나다 라는 말과 배신이란 말의 합성어로서 혁명이란 구실로 군대를 일으켜 왕에게 반란을 하는 것을 말한 것으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후일에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게 될 것이라(딤전4:1) 경고하였습니다.                                                  

 

 

갈보리채플 운동을 일으킨 코스타메사 갈보리채플의 척스미스 목사님은 오래 전부터 종말의 때에 일어날 신흥종교에 대해 심히 염려하였습니다. 그리고 2006년 3월에 릭워렌 목사와 같이 신흥종교 운동으로 향하는 갈보리 채플 목사들이 갈보리 채플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모든 갈보리 채플 목사들에게 보낸바 있습니다.

사실 이 신흥종교 운동은 현대 교회 역사 속에서 꾸준히 지속되어 왔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성령운동을 중심으로 교회성장을 주도했던 빈야드 운동과 한국교회에 깊게 뿌리를 두고 있는 오순절 계열의 교회성장 운동입니다. 이들은 전도에 그 초점을 두고 있으며 이 운동에 앞장에 서 있는 릭워렌 목사는 목적이 이끄는 삶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여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과연 크리스챤들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 안에서 성령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최종적인 믿음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왕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오늘 우리가 살펴 보는 시편 78편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떠나 배교하는 원인과 그 배경을 다루고 있으며 56절부터 58절에서 이스라엘의 배교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두려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배교한 자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히6:4) 증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이며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경계해야 할 말씀입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학교를 졸업한 후 마치 목사의 자격증을 받은 것처럼 착각하고 교회를 세우고 교회성장에 급급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는 그러한 시스템을 통하여 목사 안수를 받은 분들이 과연 주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목사들인가 의심을 갖습니다. 만약 그들이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아 성령세례를 통하여 직분을 받은 그리스도의 종들이라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권면
바울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진 우리에게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가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우리가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10:35-39) 라고 역설하였습니다. 부디 당신의 소망이 끊어지지 않도록 성경으로 돌아가시기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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