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70-72편)지도자의 기도
(시편70:4)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오늘 우리는 시편의 제 이권에 해당하는 부분을 살펴 보게 됩니다. 제 삼권(73-89편)은 성전에서 찬양을 담당하던 아삽과 같은 제사장들의 기도와 노래가 소개되고 있으며 제사권(90-106편)은 모세의 시와 감사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고 마지막 제오권(107-155편)은 다윗의 찬송시로서 곧 다가 올 메시야의 시대를 송축하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시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편집된 것은 아니지만 후일 성경을 편집하면서 책권으로 나누며 장별을 삽입할 때 성도들을 위해 내용과 문맥과 적용을 따라 나눈 것입니다. 시편 각권의 구분에서 흥미로운 것은 각 권이 끝날 때마다 아멘과 할렐루야로 끝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각 권의 기도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에게 특별한 중보를 하는 느낌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편 70편부터 72편은 다윗과 솔로몬의 기도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의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국가의 향방이 불투명한 때에 우리 지도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기도하여야 할 것인가를 깨우쳐 주는 각별한 기도라고 하겠습니다.
다윗은 먼저 70편 1절에서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외치고 있습니다. 2절에서 그는 자신의 영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는 상황적으로 상당히 곤란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기도를 하는 목적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이 가장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고 주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기도는 자신의 영혼을 위한 기도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물론 복음시대에 와서 우리 성도들의 기도의 목적과 목표는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의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여야 합니다만 그것은 주께서 모든 것을 성취하신 때의 기도이지만 지금 다윗은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며 자신의 영혼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70편에서 다윗의 기도는 두 가지로 조명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자신을 조롱하고 수치를 바라는 자들을 물리쳐 달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를 기뻐하고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들이 항상 하나님의 광대함을 증거하게 하게 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 믿는 모든 자들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평범하게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야 자신을 조롱하고 나의 영혼을 망치려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묻겠지만 이것은 영적인 문제로서 하나님께 복음을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의 내적 고통이라 하겠습니다.
바울은 늘 세상과의 다툼과 함께 자기 안에 눌림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누가 주 앞에 부름을 받았다 하면서 영혼의 고통과 내적 눌림을 겪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헌신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증인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자신의 영혼을 위한 호소와 내적 눌림으로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다윗은 5절에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기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가 한 국가의 왕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평안한 지도자가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늘 자신의 영혼을 찾는 자들과 다투되 그 생명을 위하여 스스로 대적하지 않고 모든 것을 주께 고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싸움에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들과 정사를 주관하는 자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통치자로 부름받은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주 하나님 여호와께 의뢰하고 구원하심의 은혜 가운데서 주를 사모하는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71편을 살펴 보겠습니다.
(시71:7,8) 지도자의 삶
(시편71:7,8) 나는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이시오니 주를 찬송함과 주를 존숭함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시편 71편도 70편과 함께 자신을 구원해달라는 호소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원수와 대적하는 쪽을 택하지 않고 주께 피하는 쪽을 선택하였습니다. 어차피 대적이 우리의 영혼을 찾는 것은 나로 하여 실패하고 망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 서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적은 세상의 모든 것을 무기로 사용하고 그 권세를 바탕으로 우리를 대적하므로 이 땅에서 호흡하는 우리는 그 모든 길에서 훼방을 받고 나아갈 길을 봉쇄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적과 맞서서 싸우는 것보다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으로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며 현명한 것이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세상과 맞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권세자를 통해서 운행되고 있고 우리의 복음은 그들의 권세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서 복음을 훼방하는 자들과 맞서서 대항하겠습니까? 바울은 세상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그들이 공연히 칼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니 그들과 맞서 대적하지 말라고 권고하였습니다.
다윗은 2절에서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의 의란 대적이 공격하는 것이 내게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그들과 같은 육체와 성정을 갖고 그들과 함께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그들이나 나나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땅에 행위를 따라 구원받을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죄 속에서 나와 죄 속에서 살다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바울이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과 동일한 죄 속에서 태어나 거룩하신 하나님께 영혼의 구원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의로우신 주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 또한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주의 택하심에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5절에서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태로부터 주의 붙으신 바 되었기 떄문이며 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6).
우리는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잉태함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택하시는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아직 죄를 알지 못할 때부터 하나님은 내가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였다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공평하다고 느껴집니다만 이것이 창조자의 권세이고 전지하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창세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엡1:3,4)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모태로부터 주 여호와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았으니 대적하는 자로 시기와 질투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은 늘 우리 또한 그들과 같은 육체와 성정을 가진 것을 기화로 우리의 죄의 여지를 참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욥의 고통을 봅니다. 하나님은 그를 증거하여 욥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한 의인이 없노라 하셨습니다. 그처럼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주의 은혜와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사단은 그를 참소하여 하나님이 그에게 집과 모든 소유물로 산울을 두르시고 그의 하는 바를 복되게 하시어 그 소유물이 흘러 넘침이 아닙니까 하며 그의 소유를 모두 치면 여호와를 욕할 것이라 참소하였습니다(욥1:10-11).
어디 그뿐입니까? 사단은 그의 자녀와 집과 재물을 쳤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겠습니까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하고 화난 속에서 굳게 믿음을 지키는 욥을 참소하였습니다(욥2:1-5). 이처럼 사단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의인의 생명을 넘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나는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다”(7) 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상한 존재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핍박을 하고 유혹을 하여도 그들을 대적하지도 않고 오직 주를 찬송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다윗은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주를 찬송함과 주를 존숭함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8) 증거하였습니다.
다윗은 흥미롭게도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떠나지 마소서” 호소하였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기계적이라서 늙으면 쇠약해지고 모든 것에서 부족하고 둔해집니다. 또한 사람이 늙으면 모든 존경받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며 자기를 낳은 자식들 조차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노후를 위해 연금을 들고 보험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께 보험을 들어 놓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의 원리와 복음의 세계가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의 지혜와 지식은 나이가 들고 쇠하면 모두 그 육체와 함께 무력해지고 그 모든 것을 신진 세력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백발은 하나님의 면류관이라 칭함을 받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하여 사후 대책을 논의할 때 그는 아버지를 따르던 노인들의 말을 떠나 젊은 신진들의 말을 들어 패망의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원하는 곳으로 다니려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 (요21:18)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늙어서 아무 쓸데 없이 버림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젊어서는 자기 고집대로 할 것이나 늙어서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더욱 중히 쓰임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 택하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시험하신 후에 온전하고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히10:36).
다윗은 14절에서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찬송하리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 속에 더해가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입은 은혜를 증거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후대에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태에서부터 택하시고 태에서 형질을 조성하시며 주의 능력과 지혜로 어려서부터 교훈하십니다. 우리의 육체는 기계적이어서 오랜 세월 많은 지식들을 습득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을 바탕으로 온전해집니다. 이것을 성경은 경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요구하고 발전되어 그 지식들은 후진들에게 물려 주게 됩니다. 이로서 세상은 날로 발전하게 됩니다. 문제는 사람의 한계가 이로서 종말을 맞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다윗은 18절에서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기도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만사가 허망하기 그지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한 후에 자기를 소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못하며 사람이 노력하면 스승만큼 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복음의 질서는 세상의 지혜처럼 후진에 의해 무너지고 늘 새로운 틀을 쌓게 될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교단과 교파가 갈라져 서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문제로 기인한 것입니다. 만약 사도로부터 자신의 위치를 지켰다면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열려 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 시작과 끝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하심과 그의 예정에 의해 이미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새로운 지식과 지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복음의 온전함을 위해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고 주의 능력을 후대에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세상 사는 동안 겪는 모든 심한 고난들이 비밀하게 감추어두신 그 지혜를 터득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하며 그로서 나를 모해하던 모든 자들이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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