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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68:4) 그 이름 여호와

이요나 2007. 2. 26. 10:26

(시편68:4) 그 이름 여호와

 

(시68:4) 하나님을 노래하며 그 이름을 찬양하라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 이름은 여호와 시니 그 앞에서 뛰어 놀지어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이신 그의 이름 여호와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 성경의 여호와는 히브리어 야훼(YAWEH) 영어식 번역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부르기 조차 두려워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우리 성경에 여호와로 부분은 거의 ‘Lord’ 로 표기 되었습니다. 우리 말의 (主)에 해당되겠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엘로힘)은 창조자이시며 전능자 되신 하나님의 직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YAWEH)로서 우리에게 무엇되신 라는 의미가 됩니다. 따라서 여호와 라파, 여호와 삼마, 여호와 이레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와의 관계성 속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속에서 그때 그때마다 합당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데 분은 다름 아닌 우리의 구속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윗은 68 서두에서 하나님이여 일어나서 원수를 흩으시며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연기가 몰려감같이 저희를 몰아 내소서 앞에서 밀이 녹음같이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간구하였습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노래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있는 것은 세상은 무리로 나뉘어져 있음을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입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십자가 위에 사람의 강도와 함께 달리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주께서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박히심으로 주님은 친히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으셨다 기록된 성경 말씀을 스스로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십자가에 박히신 것은 세상의 죄를 친히 걸머지시기 위한 것으로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로 하여 구원을 이루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강도 사람은 영혼의 끊어짐을 목전에 두고도 예수님을 비방하여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라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편의 죄인은 그를 책망하며 예수 선생이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였습니다. 이에 주님은 내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하셨습니다.

 

여기서 낙원이란 주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사람들이 주께서 그의 나라를 성취하시고 다시 오실 때까지 잠시 쉬는 영혼의 대기소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오직 예수를 믿는 사람만이 들어 있는 곳입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16장에서 사후의 세계가 둘로 나누어져 있음을 시사하셨습니다. 부자는 지옥으로 내려갔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돌아 갔습니다. 여기서 지옥이란 헬라어로 하데스로서 깊은 곳에 있는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영혼을 가두는 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어 열조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께서 강도와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의미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믿을 것이냐 믿지 않을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68편에서 의인된 우리가 주를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다윗은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5) 증거하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다 말씀하시며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고아란 보호자가 없는 자이며 과부는 억울함을 당하여도 하소연할 근거가 없는 외로운 여인입니다.

 

두번째로 다윗은 하나님은 고독한 자로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시며 수금된 자를 이끌어 내사 형통케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의 거처는 매마른 땅이로다”(6)하였습니다. 여기서 고독한 자란 부족하여 버림을 받은 자를 말하며 옥에 갇힌 자들과 같이 의지가지 없는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위하여 흡족한 비를 내리시고 주의 산업을 견고케 하시어 그들 주의 회중들로 가운데 거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은혜를 준비하시는 방법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회주의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살펴보면 나라들의 삶의 형편을 비교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원이 고갈되어서 못사는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만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이 부족한 나라도 해방된 얼마 안되어 빈곤에서 탈피하여 선짓국의 반열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똑같이 시작한 북한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는 복음에 있습니다. 다윗은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가 무리라”(12) 하였습니다. 여인은 자식을 먹이기에 자기 생명을 다합니다. 이것은 교회를 비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왕성한 곳에는 독재자가 거하지 못합니다. 교회의 주인되신 예수께서 왕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나라의 풍성함을 말하여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집에 거한 여자도 탈취물을 나누도다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재물을 얻는 방법을 서술한 것입니다. 재주는 곰이 넘고 재물은 사람이 취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다윗은 너희가 우리에 누울 때에는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13)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의 모습을 보십시요.. 38년간 일본의 식민지 속에 모든 것을 갈취 당하고 전쟁으로 잿더미 되었던 나라가 해방 50 만에 오늘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보십시요. 나라도 없이 세상 속에서 유랑하던 민족이 다시 고토로 돌아와 바닷물을 끌어들여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고 겨우 오십 만에 오늘과 같은 이스라엘을 재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바산의 산은 높은 산이로다’(15) 칭송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성소에서 천천 만만의 병거를 두르시고 그의 백성들을 돌보십니다. 다윗은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인간에게서 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18)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나니 내가 것은 용서할 것이 없는 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분이 오신 것은 고아와 과부와 같이 의지할 곳이 없어 세상에서 패역한 자로 여김을 받은 자들을 깨끗이 씻어 그들로 하여 여호와의 풍부한 성에 거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19) 증거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어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고 쉬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대회 중에서 하나님을 송축하며(26) 주의 전을 위해 주께 예물을 드려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시고 우리의 능력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땅의 열방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증거하였으며 다시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돌릴지어다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 능력이 하늘에 있도다”(34)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우리 하나님의 빼신 백성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복음의 회중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러하여 우리가 사망에서 피하여 주의 나라에 들어 넉넉한 힘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로 하여금 주께서 주신 말씀으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여인이 되게 하소서. 주의 무리가 대회 중에서 주께 찬송을 드릴 것입니다. 아멘 아멘.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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