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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60:12)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이요나 2007. 2. 26. 10:27

(시편60:12)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시60: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시편 60편은 다윗이 아람에게 둘러 쌓여 진퇴양난의 때에 요압 장군이 돌아와 소금골짜기인 염곡에서 12000명을 무찔렀을 때에 지은 노래입니다. 우리는 가끔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으며, 때때로 내가 과연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인가 하고 하나님을 의심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러한 곤란한 일을 겪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I. 왜 실패하는가?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척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우셨나이다(3)

 

다윗은 1절에서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하여 주십시요 하고 간구하였으며 계속하여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였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요동함이니이다 청하였습니다.

 

지금 다윗은 이유야 어찌되었던 우선은 살려 주셔야만 한다는 절박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께 생떼를 쓰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전쟁에 패하여 어쩔 방도 없이 적진 중에 죽임을 당하여야 할 극한 상황에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다윗은 정말 위대한 지도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디윗은 3절에서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척거리게 하는 포도주로 우리에게 마시우셨나이다 고백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이 실패한 원인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시험하여 적에게 실패하게 하신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다윗이 우쭐하여 임의로 전쟁에 나갔던 것입니다.

 

그 당시 다윗은 불르셋과 모압 그리고 아라비아에 이르기까지 명성을 얻고 승리하여 조공을 받았습니다(삼하8장 참조) 사람이 승승장구 계속 승리를 거듭하면 마음이 높아져 술취한 사람처럼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게 됩니다. 다윗이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때에도 이러한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술취한 자처럼 비틀거리게 하시는 것은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낮추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승리의 축배를 높이 들던 사람들의 무너진 모습들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50년의 보수진영을 무너뜨리고 승리의 깃발을 고지에 높이 세웠습니다. 오랜 동안 보수세력의 그늘 속에서 짓눌려 오던 좌파의 이념을 따르던 젊은 세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득세하자마자 자기들의 뿌리가 되어 준 늙은 소나무를 베어 그 위에 가시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지를 꺾어 자신들의 눈에 벗어난 나무들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쳤습니다. 그들이 비록 종아리를 맞아야 할 사람들이라 해도 종아리를 맞은 그의 자녀들이 피로 얼룩진 부모의 종아리를 보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왕이 되자 솔로몬을 보좌하던 늙은 대신들을 멀리하고 자기를 따르던 개혁세력을 정치의 중심에 세웠습니다(열상12장 참조). 그때 나이 많은 선왕의 대신들이 일어나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요청하였습니다.

 

이때 르호보암은 그들의 말을 외면하고 자기를 따르는 젊은 친구들의 말을 들어 내 부친은 너희로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부친은 채칙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열상12:6-14) 하였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열상12:16) 하고 각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II.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A.     주의 백성임을 자각함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기를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4)

 

다윗은 4절에서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기를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은 비록 자신이 교만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임으로 전쟁에 임하였지만 자신들은 주를 경외하는 자들로서 절대로 적군에게 패하여서는 안되는 진리의 깃발을 세울 명분이 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B.     주의 사랑하시는 자임을 자각함기게.kdjqlehgksms

두 번째로 다윗은 자신들이 주의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응답하셔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주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 오실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녀들의 잘못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매를 들기도 하고 벌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들의 잘못이 크더라도 사랑하는 관계를 끊어낼 수는 없습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변한이 없는 것입니다.

 

C.     성경의 역사적 증거를 자각함

세 번째로 다윗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 곧 기쁨으로 언약하신 말씀을 상기하여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척량하리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친히 부르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말씀을 상기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길르앗은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요 유다는 나의 홀(법)이며 모압은 내 목욕탕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불르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라 하셨도다

 

길르앗은 원래 요단강 동편의 이스라엘이 차지한 변방에 있던 땅으로 주변국과 영토전쟁이 빈번한 곳이였습니다. 그러나 길르앗이라는 이름은 무낫세의 손자 마길의 아들로서 그 후손들이 그 조상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

 

또한 므낫세도 내 것이요 에브라임도 내 머리의 보호자라 한 것은 이들이 비록 요셉이 애굽 땅에서 이방여인을 통하여 낳은 아들들이지만 야곱이 그들을 양자로 받음으로 이스라엘 자손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다를 가리켜 나의 홀이라 한 것입니다.

 

이것은 유다를 통하여 통치자가 나타날 것이며 그로 하여 자손대대로 수치를 당하던 모압과 에돔족들이 구원을 얻을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은 창세기로부터 여호수아까지 기록된 말씀을 회상하며 이스라엘 민족에게 세우신 언약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III. 누가 우리를 도울 것인가?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 됨이니이다(11)

 

다윗은 9절에서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꼬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사야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는 외침과도 같습니다. 다윗은 스스로 답변하여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의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말하였습니다. 다윗은 여기서 주께서 우리를 버리셨으니 하나님의 계획을 누가 성취할 것입니까? 하고 배짱을 내밀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 앞에 배짱을 내밀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언약을 알고 있으며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하지 않으시고 멸망 중에 버려 두신다면 하나님은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 안에 선한 것을 싫어 하는 육체적 속성이 있어 자기가 원치 않는 범죄를 짓게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육체의 속성이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게 끊으리요? 라고 외치며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은이라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이라(롬8:38-39)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십니다. 우리를 적 중에 던져 땅을 진동케 하시고 갈라지게 하여 우리를 술 취한 자처럼 버려 두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기를 달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이미 그리스도의 날에 성취된 일로서 아무도 변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이며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극한 상황에서도 사람을 의지 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오직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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