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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51: 19) 예수만세

이요나 2007. 2. 26. 10:29

(시편51: 19) 예수만세

 

  (시51:19)“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시편51편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듣고 통회하며 쓴 시입니다. 어쩌면 이 고백은 오늘날 하나님 앞에 범죄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백이며 부름받은 모든 지도자들의 죄의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편을 대하는 우리는 참으로 연약한 존재이며 만약 내가 하나님의 자비가 없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우리의 영혼은 거룩하고 정결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 이론이며 하나님의 사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죄의 속성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은혜로 사함을 받고 그의 의가 우리에게 전이 되어 죄의 가리움을 받았다는 것이지 인간의 죄의 속성이 없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여 의의 사람으로 포장되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까지 부단한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받은 위대한 크리스챤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롬7:15) 고백하였으며 다시 ‘이제는 이것을 행화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있는 죄니라’(롬7:17) 하였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늘 죄 앞에 연약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안에서 성결하고 의로운 삶을 살고자 소망하며 그 믿음을 지키려 애를 쓰면 쓸수록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죄 앞에 서성거리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던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향하여 나와 마음을 합한자라 하셨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칭하며 육신으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혈족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그의 일생을 살펴 볼 때 그 어떤 사람이라도 행할 수 없는 선한 마음을 갖었으며 또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도저히 행할 수 없는 범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인간 속에 내재한 극단적인 갈등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내 속 곧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7:18) 고백하며 ‘그로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7:21) 인생을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같이 호소하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탄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이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1) A.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 다윗은 1절에서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하심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과를 도말하여 달라는 간구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반역과 불순종의 기록들을 말끔히 지워달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범한 모든 죄과들이 문서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40편에서 ‘주께서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고백하며 ‘나를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이 주의 장중에 있으며 내 모든 행사가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 책에서 나의 반역과 불순종의 죄를 도말시켜 달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떠날 수 없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의 판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우리의 범죄 기록이 그대로 보존되어 사람의 인격이 전과의 기록들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적그리스도는 사람들 몸 안에 생체칩을 넣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임의로 관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전과자들은 모든 생활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며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따로 분리되어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성추행한 사람들에게 전자 팔지를 채우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절대로 이러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우리가 다 반듯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경계 하였으며 죽은 자들을 향하여서는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리라’(계20:12)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과들을 도말시켜 달라고 간구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범죄한 자가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범죄의 기록들을 삭제해 달라고 청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것은 바로 죄 앞에 연약한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께서 긍휼하신 분이시며 인자와 자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2절에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호소하였습니다. 여기서 ‘죄악’이란 범죄한 결과 곧 나의 죄가 세상에 미친 영향을 말하며 죄란 무의식 중에 행한 모든 허물들 곧 하나님 뜻에서 벗어난 일들로 빗나간 화살과도 같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깨끗이 하여 주소서 한 것은 모두 취소해 달라는 청원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죄로 얼룩지고 있으며 온통 더러워지고 있습니다. 죄는 죄의 꼬리를 물고 되물림을 하고 있으며 죄악들로 하여 세상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하고자 할수록 상상할 수도 없는 죄들이 세상을 뒤덮고 있으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에 중독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죄에 대하여 의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3절에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가 들어나지 않으면 죄가 숨기워진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는 항상 자기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허물의 사람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32:1) 고백한 것입니다. Ⅱ.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방식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10) 계속하여 다윗은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4) 하였습니다.

 

여기서 순전하다는 것은 흠이 없이 깨끗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판결자 앞에서 죄의 판단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판단으로도 순전해 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위해 일년에 한번씩 짐승의 피를 쏟아 죄를 속죄하셨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로 인간의 죄를 영원토록 대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죄에 대한 인간의 방법을 구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의 판결을 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는 하나님 앞에서 발생된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이 없었으면 죄가 죄 된 것을 알 수 없었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롭다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는 하나님 앞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하나님 앞에 있지 않다면 죄도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나라에 법이 없으면 죄를 다스릴 수 없듯이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죄의 판결을 위한 죄의 고백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며 거룩한 성도가 되기 위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를 범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된다는 그리스도인의 의식에 대하여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빙자하여 계속 범죄하고 또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파렴치한 사람들이라 말합니다. 그로나 하나님 앞에서의 죄의 고백은 우리가 그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 어떤 권세나 방법으로도 우리를 죄에서 풀어 놓지 못합니다. 그 죄가 주의 목전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요5:27) 하셨으며 바울은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다’ 증거하였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우리가 죄의 본질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모친이 간음으로 나를 낳았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은 죄를 갖고 태어날 수 밖에 없는 죄의 원리를 말한 것입니다.

 

다윗은 6절에서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들의 애통함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오호라 나는 곤구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고백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 하리로다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5) 고백한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스스로 죄를 다스릴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의 나음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또한 죄의 구속자로 오셔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서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영혼의 심판인 것입니다. 다윗은 7절에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호소하였습니다.

 

우슬초란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말한 후 우슬초를 취하여 짐승의 피와 물을 그 책과 온 백성에 뿌려(히9:19) 정결케 한 도구로서 문둥병자의 정결의식에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을 갈망하는 영혼의 탄식이기도 합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창조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위대한 영성을 보게 됩니다. 구약의 율법제도 속에 살고 있는 다윗이 이미 구원자 되신 주의 구속을 바라보고 또 그로부터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 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하고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였습니다. 죄에서 구속함을 받은 영혼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힘을 얻고 구원의 기쁨을 주께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를 통하여 모든 범죄자들의 리더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에 비로서 다윗은 상실했던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였습니다.

 

 오늘날 죄인된 우리가 의인의 기쁨을 누리며 그리스도의 승리를 외칠 수 있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위대한 전도자로서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는 과연 다윗과 같은 깨달은 심령의 그리스도인인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죄인된 몸으로 범죄자들의 리더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많은 제물을 갖고 나가려 하지만 사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우리의 상한 심령입니다.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연약한 심령의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제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의로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에 의지해 나갈 뿐입니다. 다윗은 끝으로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을 쌓으소서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노래하였습니다.

 

다윗은 지금 그리스도의 교회를 찬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도들이 모두 주 앞에 나아가 온전한 헌신을 노래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다시 죄 속에 있다면 어찌 주의 도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다윗은 여기서 사역자의 온전한 헌신을 요구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 만세를 부르십시다.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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