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50:23) 언약의 성도
(시50: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편50편은 다윗 성전의 찬송을 관장하던 아삽이 쓴 시입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통해서 구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임을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하여 의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성경에서 생명을 얻는 줄 알거니와 성경이 나를 증거한 것이다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부활 후 엠마오로 내려 가던 제자에게 나타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르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는 시편 50편을 통하여 구약에서 제시된 성도와 제물에 관한 성경적 정의와 희생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살펴 보게 됩니다.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내게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니라”(5)
시편기자 아삽은 서두에서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전능자란 불가능이 없으신 창조자이시며 생육과 번성의 주관자 되심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매우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만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생각하기도 하고 또 자기 생각에 따라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않된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허리가 아프던가 감기 몸살 같은 것은 기도할 것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할 것이라 말하고 병원에서 고칠 수 없는 암에 걸리면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전능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다는 히브리어는 엘샤다이로서 아이를 키우는 젖무덤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삽이 ‘하나님 여호와’라 칭한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엘로힘)은 하나님의 성호가 아니라 그의 직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부성자 삼위일체이신 분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면 여호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요? 여호와 곧 야훼는 우리에게 무엇무엇 되신 분을 가리키는 하나님의 성호입니다. 다시 말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속자되시고 우리의 보호자 되시며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오늘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칭한 것 입니다. 그러므로 아삽은 여기서 이미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삽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방법과 수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말씀으로 이 세상을 부르셨고 또 말씀으로 양육하시고 친히 말씀으로 오신 만군의 왕입니다.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라 가운데 계시다 증거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아삽은 2절에서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증거하였습니다. 시온이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좌정하신 통치의 보좌입니다. 우리는 시온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 그 보좌의 거룩함과 위상과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3절에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위엄을 보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위대한 백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산에 임하여 모세와 함께 말씀을 나누는 것을 보았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쓴 계명을 받은 민족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친히 하늘에 있는 성전의 모형을 짓게 하여 그곳에서 친히 이스라엘의 예배를 받으시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인도하셨습니다. 이러한 민족은 오직 주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스라엘의 우월성을 가리켜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과 예배와 말씀을 맡은 민족이라 하였습니다.
아삽은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윗 하늘과 아래 땅’ 이란 하늘의 천사와 땅에 사는 모든 인생들을 다 가리킨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자임을 전재한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이 땅의 모든 인간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저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세세토록 있을 것이므로 영광 중에 지으신 그의 창조물들이 더러움으로 멸하게 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희생의 제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사람들을 구속하실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잉태된 사람 중에는 그 누구도 죄인된 인간을 구속할 희생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은 독생자 되신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라는 위대한 칭호를 보게 됩니다. 죄 된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 하나님의 백성 곧 주의 영광을 위해 새롭게 창조된 백성인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드려 구원하신 주의 백성들입니다.
여기서 시편기자는 성도를 가리켜 ‘제사로 언약한 자’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제사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말한 것으로 바울은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라’(고전6:20) 증거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언약에 대하여 증거하여 “첫 언약이 무흠하였다면 둘째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첫 언약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소에서 드린 율법의 예물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로 백성의 죄를 영원히 속제할 수 없음으로 주께서 단번에 자기를 드려 멜기세덱의 반차를 이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의 새 언약이 이르러 성도를 부르신 때에도 백성들은 자기와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짐승들의 제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을 이것에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8:10) 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희생의 제물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오직 주를 향한 우리의 헌신이 있을 뿐입니다.
계속하여 하나님은 “내가 너희 제물을 인하여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번제란 헌신을 위한 제사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여 주께서 언약의 피로 제물이 되셨음으로 더 이상 제사가 필요 없고 성도의 헌신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주의 성도된 자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아직도 하나님의 백성 곧 주의 성도들이 제물을 갖고 나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내 것이니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하셨습니다.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 죄사함을 받고자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놓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된 자들의 예배가 또 다시 범죄자의 제사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예배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배가 과거 이스라엘 성전에서 드려진 것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죄를 벗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성결한 몸과 마음의 헌신과 간구입니다. 더 이상 희생의 예배는 필요없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잘못된 예배는 왜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II. 누가 악한 자인가?(16-23)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16)
16절에서 하나님은 방향을 돌변하여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언급하신 악인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누가 너희들을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의 반포자로 세웠느냐 묻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제사의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듯이 변역하리라’(히7:12) 기록하였고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없으므로 아론의 반차를 좆지 않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우셨으니 이가 유다로 좇아나신 예수그리스도이시라’(히7:11-15)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주께서 임하실 때 그의 제자들을 세우시고 사도라 칭하셨습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 교단의 조직을 따라 헌신하여 목사와 교사로 임명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주의 부르신 자들이 아니라면 이것은 커다란 문제입니다. 그들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들의 범죄함을 말하여 먼저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뒤로 던지며”라고 하였습니다. 교훈이란 가르침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교회를 세우시고 성령세례를 통해서 주의 교회를 이끌어갈 사역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4:8) 하였고 다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보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훈이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성령으로 알게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그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가르침으로서 그가 아무리 지혜와 지략을 가진 자로서 많은 사람들의 인도자라고 하여도 그가 부름을 받지 않았다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 던지고 자기들의 교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계속하여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 가운데 만연되고 있는 일들입니다. 예수께서는 저희가 상좌에 앉아 길게 기도하며 과부의 재산을 삼킨다 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잘못된 가르침을 통하여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다른 교회들이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난리를 비웁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흥하고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 그들을 정죄하던 교회들도 그들과 똑 같은 일들을 행하여 사람들을 사로잡습니다.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 되고 맙니다.
계속하여 성경은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이들은 자신들도 깨닫지 못한 잘못된 교리를 지어내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축복을 말하나 그들의 말은 독사와 같아서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끝으로 성경은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하였습니다. 주께서 마지막 만찬을 베풀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내가 주와 스승으로 너희 발을 씻ㅅ기였으니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대게 교파가 나뉘어지는 것은 함께 부르신 형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혹 형제가 잘못된 길로 나가더라도 사랑으로 그의 발을 씻겨 주어 주의 사랑을 성취하여야 하는데 스스로 그와 결별하고 자기의 집을 새로 지으므로 한 세례와 한 믿음과 한 성령으로 하나된 그리스도의 몸을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악한 것은 회개하지 않는 심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서 차례로 베풀리라”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우리의 범죄한 행위를 참아주신 주의 인내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끝으로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자가 없으리라”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오직 우리를 구원하여 성도로 삼으신 주께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의 가르치심을 따라 옳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빛 되신 그리스도의 진리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날 때 이방이 빛을 얻고 함께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구약강해 > 시편서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시편49:20) 존귀한 자입니까? (0) | 2007.02.26 |
---|---|
[스크랩] (시편46:7)야곱의 피난처 (0) | 2007.02.26 |
[스크랩] (시편51: 19) 예수만세 (0) | 2007.02.26 |
[스크랩] (시편 52:8)간사한 혀와 푸른 감람나무 (0) | 2007.02.26 |
[스크랩] (시편53:1)인생의 어리석음 (0) | 2007.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