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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49:20) 존귀한 자입니까?

이요나 2007. 2. 26. 10:32

(시편49:20) 존귀한 자입니까?

 

(시49:6-8)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오늘 우리가 공부할 시편 49편은 한 세상을 살다가 다음 세상으로 가야만 하는 우리 인생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다가 그 영화를 자자손손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 이 땅에서 막을 내리는 짐승과 같다면 모두가 이러한 소망을 갖는다 해도 잘못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우리 안에 영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끝은 이 세상이 아니며 우리의 영혼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세상을 소망하게 됩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로 죄 속에 신음하고 있는 영혼의 구원케 하시고 인생들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 갈 길을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소망하는 복음의 문이며 그리스도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악한 자의 역사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르지 못하도록 세상을 통치하는 물질만능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욕망의 사람들로 하여 이 시스템에 굴복케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재물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힘들다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보게 됩니다.  

 

I. 왜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1-5)

시편기자는 1절에서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궈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기록하였습니다. 이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죄 속에 빠진 인간이 영혼의 회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책임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은 들음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들을 것인가에 대한 책임이 부여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크게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을 미워하고 다만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만을 사랑하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동일한 존재입니다. 그 이유는 이 땅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죄 이후 이 땅의 모든 인간은 부귀 귀천을 떠나 모두 죄인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생 중에 지각있는 자가 없으며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시53:2)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위하여 인간을 구원하실 은혜를 내려 그 아들을 영접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영혼을 구원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프로젝트입니다.

 

베드로는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하였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인내는 막을 내리고 예정하신 주의 뜻대로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한 9dmla l

 

B. 복음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다

3절에서 시편기자는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기 위한 우리의 명철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많은 비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바로 전달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어떻게 보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역사적 사실들도 모두 비유에 속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깨달음을 위해서는 충분한 묵상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분한 관찰과 해석과 적용을 요구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나라를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문제점은 어떤 말씀을 성경적 여과 없이 귀에 듣기 좋은 것을 택하여 듣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말씀의 진위를 살피지 않고 그대로 들음으로서 설교자의 의도에 그 영혼을 빼앗겨 버리게 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언급하시며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막4:24,25) 하셨습니다. 이것은 듣는 자들의 책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동일한 말씀으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눅8:18)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음미하여 그 비유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가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께서 우리가 주를 기뻐할 때 친히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실행하는 존귀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주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깨달아 주의 기쁨 속에 거한다면 어떤 죄악도 당신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며 죄악으로 인하여 환난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존귀한 하나님의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승의 자랑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II. 세상 사람들은 왜 복음을 들으려 하지 않는가?(6-12)

 시편기자는 6절로부터 흥미로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기록하였습니다.

 

시편기자는 여기서 재물과 영혼의 구속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충분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잘못하면 물질세계를 부정하는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모든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이것은 창조하신 그 모든 것들의 목적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어 창조하신 그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질이 악하지 않은 것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으신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질이 악하거나 더러운 것은 아닙니다. 모든 물질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다른 가르침을 따라간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자기가 선택한 자의 시스템으로 스스로 들어가 그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로하여 인간은 자기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재물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인간의 마음과 안목을 사로잡아 영혼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케 합니다.

 

시편기자는 7절에서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이리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존귀한지 그 어떤 재물로서도 영혼의 값을 대신할 수 없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만약 재물로 생명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것이라면 친히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느날 부자청년이 주 앞에 엎드려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물었습니다. 그는 재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했을 때 그는 주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를 유일한 방법을 제시 받고도 재물을 버릴 수 없어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이때 주님은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막10:23) 하셨습니다. 이것은 재물의 속성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재물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우리를 격리시켜 놓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동생 야고보는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5:3) 하였으며 바울은 탐심은 우상숭배라(약5:3) 하였습니다.

 

또한 재물의 속성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는 지혜를 얻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부귀영화가 세세토록 대물림을 하며 자기들의 이름 또한 영영히 세상에 남아 있을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망의 날이 이르면 그가 모은 그 재물로 자기의 생명을 구하지도 못하고 이 세상의 그 어떤 지혜자나 또한 어리석든 무지한 자든지 모두 같이 망하고 자기가 애지중지 하던 재산을 지키지 못한 체 사망의 사자에게 이끌려 가게 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III.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시편기자는 14절에서 양같이 저희를 음부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주의 영광의 날에 주께서 각 민족을 부르실 때에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듯이 악인과 의인을 구별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들을 구별하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주 앞에 부름받은 자들이 굶주리고 병들고 갇히고 나그네 된 형제들을 어떻게 대하였는가에 대한 상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그들이 어떤 일을 귀히 ㅇ겼는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날이 갈수록 비대해져 가는 교회를 보게 됩니다. 그 비대한 만큼 그들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재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의 명예를 남기려 합니다. 그들이 하는 구제나 선행은 명분을 쌓기 위한 것으로 결국은 과부의 재산을 삼키는 자들이 되고 맙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25:46) 하셨습니다.

 

시편기자는 우리에게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지어다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16,17) 권고하였습니다. 우리는 가끔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호화스럽게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리 갖고자 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을 그들은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얻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죽은 자들과 함께 하여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 기록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잘 먹자고 그리스도의 기업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마치 멸망으로 내려가는 짐승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시편기자는 그들을 가리켜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 하였습니다. 지금 당신은 존귀에 처한 자입니까? 스스로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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