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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45:10)왕의 사랑

이요나 2007. 2. 26. 10:33

(시편45:10)왕의 사랑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시45:6)

 

시편45편은 이 땅의 군주이시며 만군의 왕이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통하여 왕이신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가 세상을 다스리시는 통치의 위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그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그의 신부 된 우리가 얼마나 큰 영화를 입고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I. 왕의 위엄

왕은 인생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영히 복을 주시도다(시45:2)

 

A. 필객의 붓

시편기자 마스길은 왕의 위엄과 그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노래하며 내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 왕에 대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필객의 붓과 같도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왕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혼을 빼앗긴 시편기자 마스길을 보게 됩니다. 그는 마치 우주의 신비로움이나 기기묘묘한 천지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 혼이 쏟아져 내리는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의 영혼과 혼과 몸의 그 신비함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지혜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생체의학이 발달되어 인체의 신비가 하나 둘씩 벗겨지고 있고 DNA 분석으로 각 세포의 구조와 질서들이 하나씩 발견되고 있습니다만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의 신비를 파헤치기란 역부족입니다.

 

인간의 뇌는 우리가 태어남으로부터 보고 느끼고 또 체험하는 가운데 감지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빼지 않고 저장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뇌에 저장된 그 모든 것들을 아무 제한 없이 다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의식은 폭발해 버려 공중분해 되던가 미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기억에 제한을 두신 것이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기자는 마치 그 지혜의 한계를 초월한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그가 의식하고 있었던 모든 지식은 물론 미처 의식하지 못하던 신비에 속한 지식들까지 그 입술을 통하여 쏟아져 내리는듯한 느낌입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그 앞에 펼쳐진 왕의 아름다움에 혼비백산하여 그의 입술은 의식이 감당 할 수 없는 은혜의 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인생이 체험하지 못한 절묘한 경관을 대하였을 때 자기 혼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표현을 쏟아내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나는 1995년도에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경비행기를 타고 미국의 명승지를 도는 동안 그 산수의 아름다운 절경을 처음 대하는 나는 마치 내 영혼이 지음 받을 때 입력된 천지의 아름다움을 대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 속에서 극도로 아름다운 말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오늘 시편기자의 내 혀는 필객의 붓과 같도다는 말이 충분이 이해됩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믿음생활 속에서 특별한 체험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만 나는 수년간 성경의 말씀을 정리하면서 부족한 내 지식과 지혜의 한계에 부디쳐 견딜 수 없는 부담감에 빠지곤 합니다. 아마 이러한 고민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모든 성경교사들의 공통된 것일 것입니다. 하긴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지혜를 파헤쳐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그동안 성경을 주석을 하면서 스스로 터득한 한가지 버릇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의식을 초월한 상태로 들어가 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물론 성경을 주석하기 전에 나는 나름대로 성경을 충실히 읽고 내게 주신 지혜를 통틀어 내려고 온종일 말씀과 씨름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번번히 그 말씀이 요구하는 한계를 넘지 못하고 내 혼은 지쳐 쓰러져버리곤 합니다.

 

대게 일주일 동안은 그 말씀과 씨름하며 번민에 빠지게 되는데 계획된 설교 일정 때문에 시험을 치르는 학생처럼 시간의 벽 끝에 서게 되는데 이때 나는 그동안 공부한 것까지 모두 상실한 마음으로 원고지 앞에 서게 됩니다. 이 때 나는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시험장에 이끌려 나간 무능한 학생과도 같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조용히 눈을 감고 나도 알 수 없는 지혜의 공간 속으로 내 영혼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주의 공간으로 빠져 나가는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내 영혼을 쏟아 부은 그 시간은 내 의식을 초월한 공간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알고 있고 또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에서 분리되어 백지의 상태가 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곳은 무지가 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는 신선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만큼은 내 의지가 잠든 상태에서 내 영혼을 주관하신 분께서 내게 필요한 분량을 체워 주시기를 바라며 나는 영혼의 여행을 떠납니다. 두 세 시간을 지날지, 다섯 시간이 될지,,,아니면 날이 새야 끝날지 모르는 긴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 공간은 마치 내 어미의 태중과 같아서 잠겨진 신비의 비밀이 임한 곳입니다. 나는 이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 영혼과 심신이 견딜 수 없는 만족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보다 더 평안한 잠을 자 본 일이 없습니다. 나는 그것을 가리켜 살아 있는 잠이라 부릅니다.

 

우리의 영혼은 신비막측하여 인생이 기억하지 못한 태초의 아름다움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에덴동산의 아름다운 잔영들이 우리의 영혼 한 구석에 아직 저장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직 나는 그 신비의 문에 들어가지 못하였지만 내 영혼이 굴레를 벗는 날 모든 선진들이 소망하던 그 공간의 문턱으로 흘러들어 갈 것이라 믿습니다. 그날에 나는 내 모든 허물을 벗어버리고 그와 함께 태초의 신비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B. 은혜의 입술

시편기자는 2절에서 왕은 인생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영히 복을 주시도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시편기자는 왕되신 그리스도의 우월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인간으로 오신 것을 말하여 공자나 석가와 같은 종교적 위인들과 동일시 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 또한 인생에 대하여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인생을 구하시려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는 인생이 아닌 영존하신 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은혜란 인생에 대한 은혜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밀은 오로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죄를 벗은 의인들에게 허락된 것으로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왕의 입술에 은혜를 베풀 수 있는 것은 그가 인생 중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인생 중에 속하였다면 그 역시 죄 속에 있으므로 당연히 또 다른 은혜의 부르심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시144:3)기록하였으며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시115:16) 기록하였습니다.

 

시편기자는 그를 가리켜 인생보다 아름답다 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사람보다 아름답다 하지 않고 인생보다 아름답다 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우리와 같은 인생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여 그는 우리처럼 죄인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논하건 데 그 누구의 인생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죄된 인생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가 선한 인생을 논할진 데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다(롬3:10-18) 기록하였습니다.  

 

시편기자는 3절에서 불의와 싸우시는 왕의 위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능한 자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위엄있게 승전하소서 왕의 오른 손이 왕에게 두려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왕의 살이 날카로워 왕의 원수는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하였습니다.

 

구약에서 우리는 늘 전쟁터에서 싸우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리켜 싸움을 좋아하며 살생을 즐기는 신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리로 다스리시며 온유한 심령으로 인생을 돌아 보시며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그리스도는 늘 불의와 싸우는 진리의 수호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1) 하였고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4,17) 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2:8) 하였고 계시록에서 우리는 충신과 진실이라 이름한 백마와 탄 자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계19:11).

 

C. 왕의 향기

7절에서 시편기자는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 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품성을 노래한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루는 토대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만약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시11:3)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믿음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문제는 정의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전도라는 미명아래 교회성장에 혈안이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8절에서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노래 하였습니다. 생각만 하여도 감당할 수 없는 아름답고 그윽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몰약과 침향은 고통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평안히 잠들게 합니다.

 

왕의 옷은 마치 하나님의 강가에서 달마다 과실을 맺는 나뭇잎과도 같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 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겔47:12) 하였습니다.

 

II. 왕의 신부

딸이여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아비 집을 잊어버릴지어다(시45:10)

 

흥미롭게도 시편기자는 9절에서 왕의 귀비가 된 열왕의 딸들을 소개하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우편에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부분은 읽을 때 시편기자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복음의 메시지를 발견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본 시편 45편은 시편기자 마스길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장차 오실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대하여 받은 노래로서 이 시편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예비된 백성들에게 시시하는 복음의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본 문을 읽을 때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이냐에 대한 책임을 갖고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A.     이방의 딸

시편기자는 10절에서 딸이여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백성과 아비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노래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편기자가 호칭한 딸이 누구인가를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란 호칭은 특별한 대상으로 호칭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무너져 가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가리켜 딸 시온은 포도원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사1:8) 하였으며 그들을 향하여 너희 연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사32:9) 하였습니다.

 

또 이사야는 말일에 하나님께서 회복시킬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하라(사43:6)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메시야의 예루살렘 입성을 예언한 스가랴의 글에서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9:9) 라고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예언은 주후 32년 4월 6일 곧 다니엘에게 말씀하신 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이 난 날로부터 일곱이레와 육십이레가 되는 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해 성취되어 예수님의 제자 마태는 그날의 일을 회상하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귀 새끼를 풀어 오게 하여 타신 것은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탓도다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시편기자의 입술을 통하여 하신 딸이여 듣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아비 집을 잊어 버릴지어다하신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곧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의 신부된 교회를 말함입니다.

 

우리는 본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신들의 아내였습니다. 우리는 그 신들과 함께 음행하며 죄를 먹고 살던 음행하는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더러운 우리의 옷을 벗어버리고 왕의 귀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온유하신 왕을 사모하여 그의 향취에 잠들지 못하고 옛 아비의 속성을 따라 나서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8:13) 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유대인을 가리켜 너희 아비는 마귀라 하였습니다.

 

시편기자는 우리에게 그리하면 왕이 너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저는 너의 주시니 너는 저를 경배할지어다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태초로부터 여인에게 남편을 사모할 마음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오직 정결한 마음과 몸을 함께 하여야 하는 성도의 본분인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12절에서 두로의 딸이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에 부한 자도 네 은혜를 구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왕후의 정절과 은혜를 통하여 나타난 이방여인들의 헌신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주의 은혜와 사랑은 세상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은 아브라함의 의가 열방에 미치기 위한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13절에서 왕의 사랑하는 여인이 누리는 복을 기록하여 왕의 딸이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 옷은 금으로 수놓았도다 수 놓은 옷을 입은 저가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동무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계시록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성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보게 됩니다(계21:9-10).

 

그 성의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으며 그 성곽은 열두 기초석과 열두 문은 진주로 되었으며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었습니다. 이 성의 주인은 성전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만국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성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시편기자는 16절에서 왕의 아들들이 왕의 열조를 계승할 것이라 왕이 저희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후일 그리스도의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의 기업을 받을 우리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녀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롬8:17) 하였고 다시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다(롬8:19) 하였습니다.

 

이제 그는 이처럼 아름다운 왕의 영광된 모습을 미리 보며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케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영히 찬송하리로다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며 우리 모두의 기쁨의 노래인 것입니다.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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