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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편44) 사랑의 비밀

이요나 2007. 2. 26. 10:33

(시편44) 사랑의 비밀

 

(시44:23)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오늘 우리는 세상으로부터의 핍박과 안으로의 눌림과 고통으로 과연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가 과연 주께서는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기억하고 계신 것인가 과연 주께서는 나의 울부짖음과 가슴의 호소를 듣고 계신가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 다윗도 자신을 왕으로 기름부으심에 대해 의문을 갖었을지도 모릅니다.

 

시편44편은 세상과 이웃의 조롱 속에서도 믿음을 상실하지 않고 주의 언약을 기억하는 의로운 백성들의 아름다운 향기와 그들의 온전한 믿음을 묵묵히 지켜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의 비밀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을 우리는 로마서 8장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I. 경이로운 하나님의 역사(1-8)

시편기자는 다윗 성전에서 찬양 봉사를 하는 고라 자손의 마스길입니다. 시편기자는 1절부터 8절 사이에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업적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고통받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믿음의 증거가 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A. 믿음은 들음으로부터(1-3)

시편기자는 1절에서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열조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저희가 우리에게 이르매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택하심과 우리의 믿음이 우리로부터 시작되지 않음을 고백한 것이며 믿음의 역사는 주께서 행하신 일들을 들음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음은 들음으로 말미암으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 기록하였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주소를 나와 나의 가족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관계로 위대한 믿음의 뿌리를 상실하고 오늘의 삶의 만족에 급급하게 됩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 말씀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 택하시고 부르신 백성들 가운데서 사시며 또 그들과 함께 영원히 사셔서 영광의 찬송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2절에서 주께서 주의 손으로 열방을 쫓으시고 열조를 심으시며 주께서 민족들은 괴롭게 하시고 열조는 번성케 하셨나이다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흥미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공평치 못한 사랑을 하신 것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편 43편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의인과 그를 핍박하는 세상 나라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싸움이 하늘의 영들과 이 세상을 다스리는 어둠의 세력들 사이에 있는 영적 전쟁임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 속의 증인들로부터 그들을 위해 싸우신 하나님의 경이로우신 구원의 능력을 듣고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것은 그 말씀으로 오늘에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위로 받기 위함만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다른 종교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한 역사는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듯이 그의 아들 이삭과 함께 하셨고 또 그의 택하신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역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함께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신 것이며 우리 안에 함께 하신 믿음의 역사는 우리의 뒤를 이어갈 아들들에게 또 담대한 믿음의 증거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것은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롬4:16) 기록하였습니다.

 

B. 왕되신 하나님(4)

4절에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하였습니다. 시편기자가 믿음의 조상 중에서 특별히 야곱을 이끌어 낸 것은 야곱의 믿음의 역사가 그의 선조인 아브라함과 이삭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록 우리와 같이 세상적인 요소에 집착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사람의 시작과 그 모든 행사와 종말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건 데 하나님께서 외모와 능력이 뛰어난 먼저 난 자 에서를 미워한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신 장자의 명분을 업수이 여기고 또 육신의 기쁨을 참지 못하여 음행을 즐겼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되니 이 경이로운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증거한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5절에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려 하는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하였으며 다시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 하였습니다.

 

물론 다윗은 이스라엘을 치려는 대적들을 활과 칼로 무찔렀습니다. 그러나 결코 대적들의 힘이 다윗이 이끈 이스라엘의 군사보다 약하여 진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소년의 나이로 불르셋의 큰 용사 골리앗을 불과 돌팔매로 무너뜨렸으며 기드온은 300명의 용사로 그 시대를 장악하던 미디안 군사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힘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전쟁은 내게 속한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C. 자랑스런 하나님의 이름(8)

시편기자는 8절에서 우리가 종일 하나님으로 자랑하였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이 시편을 읽으며 다시 새로운 힘을 얻게 됩니다. 오늘날 내가 당하는 고통이 주께서 나를 시험하시고 나로 강한 하나님의 군사로 높이 드시기 위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입술이 종일토록 주의 이름을 자랑할 것이며 위대하신 주의 구원의 능력에 영영토록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II. 주의 시험(9-16)

시편 44편에는 믿는 자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의 찬양과 함께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의 고난의 세월들이 함께 기록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자칫하면 믿음에서 돌아서게 하는 시험의 요소이기도 합니다.

 

시편기자는 9절에서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를 당하였나이다 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이 시편을 읽으며 마치 오늘날 나의 정황을 성경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고백한 다윗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 내가 하나님의 역사와 음성을 들었을 때 나는 모든 것에서 승리를 하였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모두 그리스도의 찬양 가운데서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주의 강한 팔과 그 놀라운  능력이 있었기에 나를 붙잡고 있던 세상의 강한 세력들을 떨쳐 버릴 수 있었습니다.

 

나는 오늘날과 같이 매우 곤란한 때에는 그때 내가 갖고 있었던 엄청난 재물들에 대하여 회상하기도 합니다. 출세와 부귀에 집착이 강한 나를 그 세력에서 단칼에 베어내신 것은 내가 아니라 주의 승리였습니다. 솔직히 그 당시 내가 고통받고 있었던 것은 어두움의 세력의 확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죄악을 향한 내 마음에 대해 탄식하시는 성령의 눌림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홀연히 그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끊어내고 가방 하나를 걸머지고 일본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후 내 아들을 애굽으로 데리고 말라 하신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향한 나의 모든 길을 차단하시고 나를 옥에 가두셨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시편기자는 11절에서 주께서 우리로 먹힐 양 같게 하시고 열방 가운데 흩으셨나이다 하셨습니다. 열방은 이스라엘을 능욕하고 조롱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조롱이 주의 백성들에게 쏟아져 부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가운데 말거리가 되었으며 세계의 수치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경 속에서 이스라엘 가운데 역사하신 위대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도 이스라엘의 역사는 피와 수욕과 조롱과 멸망의 역사였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는 정말 굴욕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아직도 우리는 그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다윗의 천년왕국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하였습니다.

 

III.망각할 수 없는 이름(17-26)

이스라엘 민족이 수천년 동안 이방의 핍박과 견딜 수 없는 굴욕을 당하면서도 주 하나님의 이름을 잊지 않고 주의 언약을 잊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을 보았으며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함께 사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부모를 잊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사랑과 은혜가 뼈에 사무쳤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있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그들의 굴욕 가운데서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시편기자는 자신들에게 임한 고통의 굴레를 말하며 주께서 우리를 시랑의 처소에서 심히 상해하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이 말씀을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저주할만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되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이처럼 죽음의 세월에 넣으신 그 원인과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 마음이 퇴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주이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0절에서 시편기자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안다는 것은 곧 우리의 믿음의 실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믿음을 말하여 하나님께서 이러쿵저러쿵 말합니다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한계에 속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나타나지 않은 그 모든 것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속한 비밀한 것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시편기자는 22절에서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로마서 8장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축복에 대하여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은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이유를 말하여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미리 아신 자들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 미리 정하셨다 하였고 다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또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롬8:29)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였으며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미리 보고 있었으므로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부요함과 영광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습니다. 어느 교단은 마치 그리스도의 축복이 물질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이면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여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사단의 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종일 죽임을 당할 양처럼 묵묵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주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능히 다시 살리실 것과 그리스도의 보좌와 함께 설 것을 알고 있기에 묵묵히 침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아무것으로도 그 누구라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낼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이제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고 우리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호소가 오늘날 당신의 호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주께서는 당신의 고통을 돌아 보시고 이제 곧 당신을 돕는 손이 되어 기쁨의 얼굴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주여 속히 깨시옵소서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 아멘 할렐루야!

출처 : 세미한 음성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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