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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42:1) 갈급한 영혼의 찬미

이요나 2007. 2. 26. 10:37

(시편42:1) 갈급한 영혼의 찬미

 

(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편 42편은 다윗 성전의 찬양대 고라자손의 마스길이 작곡한 노래입니다. 마스길의 노래는 49편까지 이어집니다. 시편기자는 여기서 영혼의 갈급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그의 생명이 신적 감각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시편기자는 영혼의 갈급함을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헤메는 것에 비유하였습니다. 이것은 짐승과 사람이 서로 다른 부분과 또 서로 공통된 점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본디 영혼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들을 창조하시어 사람들과 같이 피에 생명을 주시고 호흡하는 생물로 지으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인간과 동물은 서로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을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전3:19)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으시기 위해 자기의 삼일일체하심처럼 인간을 영과 혼과 육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하나님을 의식하며 영혼을 찬미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다 흙으로 돌가가나니 다 한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 가는 줄 누가 알랴(전3:20-21).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기자와 같이 그 영혼이 목마른 사슴처럼 주를 찾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속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영혼이 죽음에서 회복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영적 축복인 것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주 여호와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의 영혼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혼이 있으되 그 영혼은 죽은 바 되어 하나님을 알지도 찾지 못하고 그의 주인이 된 세상 신이 자신의 소욕과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우상을 세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그에게는 처음부터 세상의 신이 그에게 들어가 그의 영혼을 빼앗아 그의 주로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영혼은 사단의 꼭두각시인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욕정을 위하여 자기를 주관하는 우상의 모습을 향해 계속 나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 여호와를 믿을 때 죽어 세상 신에서 조롱 받던 우리의 영혼이 회복되어 창조자이시고 만군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심을 알게 되어 그로부터 그의 영혼은 주를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가 의인의 영혼이 시냇물을 찾아 헤메는 목마른 사슴에 비유한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인간이나 짐승은 그 삼분의 2가 모두 수분으로 지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 몸에는 순분이 항상 그 필요한 수치만 있어야 합니다. 이 수분은 피와 함께 각 몸 여러 부분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연소되어 소모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몸에 수분이 모자라면 그 필요한 양이 뇌에 전달되어 우리는 곧 갈급함을 느끼게 되고 물을 찾게 됩니다.

 

갈증의 농도는 계속 강해져서 우리가 물을 보충해 주지 않으면 뇌에서는 온 정신과 마음을 물을 찾도록 요구하고 우리의 몸은 갈증으로 달아 올라 탈수 현상을 일으키고 급기야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끝내는 죽고 맙니다.

 

그러므로 물은 산소와 같이 온몸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 중의 하나로 생명을 유지하는 힘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우리 몸은 영과 혼과 마음으로 지어졌지만 서로 끊어내지 못할 만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우리의 이성이 갈급함을 느끼게 되고 계속 장시간 물을 보충해 주지 않으면 우리의 생명이 다하여 영혼은 육신을 떠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로 세상의 사람은 심판 받을 곳으로 들어가며 짐승은 단순히 혼과 육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육체의 생명이 끊어지면 혼은 육체와 함께 땅으로 소멸되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 때 우리의 영혼의 목마른 사슴처럼 주를 찾게 되나요? 우리는 요한복음 4장에서 갈급한 영혼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사실 목도 마르고 고달픈 인생살이로 하여 그의 마음은 상할 때로 상해 있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목마름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 대상이 어디서 오는 것이지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면서 나름대로 자기의 남편이 자기의 갈급한 목마름을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날마다 갈증을 위해 우물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더 이상 어디론가 피할 곳이 없을 정도로 막다른 길에 도달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녀에게 물을 달라 하시며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을 달라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하셨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인생의 갈급함을 풀기 원하여 사슴처럼 헤메이면서도 주를 찾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과 그 선물을 주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에스겔서 47장에서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생수가 거대한 강을 이루고 그 생수가 흐르는 강가에 어부가 서며 달마다 열매맺는 나무가 서 있어 만국을 소성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된 계시록 22장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차 우리 영혼이 영생토록 만족할 하나님의 강인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2절에서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외쳤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만나고자 열망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만약 당신이 극진한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하다고 아버지께서 먼 길을 떠나셨다고 하십시다. 당신은 어떤 문제를 만날 때마다 그리고 삶의 고달픔을 느낄 때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고아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고아는 아버지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갈급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고 갈망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생수를 마시지 않아도 다른 음료수로 갈증을 풀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에게 계속 콜라나 감주로 목마름을 풀게 한다면 당신은 하루도 못가서 물을 찾아 헤메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수의 맛을 알고 또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콜라와 사이다와 감주와 같은 달콤하고 톡 쏘는 음료수로 갈증을 푼다면 얼마 가지 못하여 당신은 지쳐버리고 생수를 찾아 헤메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생수는 정말 아무 맛도 없습니다. 그냥 물맛입니다. 가장 좋은 물맛은 그 물에서 오직 물맛이 나야 합니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고 깨끗하고 정결한 물이 가장 좋은 물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콜라와 감주와 같이 달콤하고 톡쏘는 말씀을 마시고 있지만 얼마가지 못하여 하나님의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생수를 원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 사람들은 당신을 향하여 네가 찾는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며 조롱할지도 모르며 또 당신은 그 목마름에 지쳐 주야로 눈물의 밥을 먹게 될지 모릅니다.

 

스펄전 목사는 밤을 세워 고통의 눈물을 경험치 못한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고통의 인생을 사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달콤한 것에 질려 있는 동안 천천히 흐르는 생수를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의 영혼이 목마른 사슴처럼 생수를 찾아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와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모든 생각은 물에 집중하게 되고 결국 몸과 마음이 마비되어 모든 일을 중단하고 물을 찾아 나서게 되듯이 우리의 영혼이 갈급한 상태에 이르면 내 삶의 이성과 건강이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질병이 생기고 사업이 망하게 됩니다. 그런 일이 없이는 그 영혼이 하나님을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과 혼과 육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4절에서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주를 발견하고 믿을 때에 기쁨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직 여호와로 만족하여야 하는 데 우리는 성도와의 수평적 관계만을 열중하게 됩니다. 결국 여호와를 만나지 못하는 영혼은 다시 근심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우리의 영혼은 낙망하고 불안하게 됩니다.여기서 낙망하였다는 것은 의지가 꺾인 절망의 상태를 말합니다(5절).

 

 이 때 우리는 지나간 날의 그 시원하고 맑은 물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 물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을 적시던 맑고 깨끗하여 내 영혼을 충만케 하던 생수였습니다. 시편기자는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7)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지난 날 예수를 믿은 후 세상에서 복을 얻는 줄 알고 세상 깊은 곳으로 내려 갔었습니다. 날이갈수록 내 영혼은 핍절하고 내 몰골은 더욱 간악해졌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나의 영혼을 만족하신 주께서는 갈급한 나에게 선물을 주시기 위해 세상 우물가로 오셨습니다. 그는 나에게 예배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일본으로 갔습니다. 커다란 사업체를 두고 가방 하나만 들고 기약 없는 길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떠나지 않으면 그 굴레를 벗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가서도 나의 목마름을 여전하였습니다. 내 영혼이  마시던 물은 한국에서나 동경에서나 동일한 우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성전 문지방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물은 아무 사람도 보지도 못하고 찾지도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콜라와 감주에 취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물을 따라 다시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나에게는 지팡이도 두벌의 옷도 자루도 필요 없었습니다. 내 앞에는 나를 인도하는 목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깊은 물 가 곧 사람이 넘지 못하는 물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제 나는 주께서 나를 들어 달마다 생명나무 열매가 열리는 강가로 데려 가시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겔47장 참조).

 

이제 내 인생의 낮에는 여호와의 베푸신 인자하심이 함께 하실 것이며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을 찬송할 것입니다(8절). 아직 내 뼈를 찌르는 칼이 있어 내 영혼을 위협한다하드라도 내 영혼은 주를 바랄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아멘 아멘 주여 속히 나를 구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