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시편서 강해

(시편11-16편) 성도의 아름다운 기업

이요나 2007. 2. 26. 11:04

(시편11-16편) 성도의 아름다운 기업

 

오늘은 시편10장부터 16장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요즘 나는 시편을 다시 공부하면서 시편의 위대함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시편 속에는 다윗의 일생 속에 숨쉬는 믿음의 실체가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게 때문입니다.

 

주님은 부활 후 제자들에게 다시 사신 자신의 모습을 보이시며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눅24:44) 하시고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부터 깨달은 마음으로 성경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 시편 10편-  악인의 사상

(시10:4)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서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시편 10편에는 악한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악인의 모습은 구태어 성경을 통해 살펴 보지 않아도 우리 삶 속에서 직시하고 있습니다. 최근 성폭행과 관련하여 세상이 시끄럽습니다만 정말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행정부와 국회에서는 법을 강화하여 성폭행자들의 신원을 공개하고 전자팔찌를 채워야 한다고 저마다 언성을 높이고 있습니다마는 그들의 말이 채 귀에서 멀어져 가기도 전에 나이든 국회위원의 성폭행 사건이 메스컴에 크게 등장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악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한 체 어떤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그에 대한 법적 대응만을 모색하려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법을 새로 제정하게 되면 범죄자들은 그 법에 대응하는 막강한 범죄를 자행하게 될 것입니다.

 

요즘 어떤 항생제로도 듣지 않는 파워 바이러스가 등장하여 감기조차 다스릴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의학계의 보도에 의하면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일대에는 결핵균이 창궐하여 국가에서도 퇴치 방법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결핵에 걸려 약을 먹던 사람들이 도중에 중단하는 바람에 몸 속에 남아 있던 결핵균들이 항생제에 대응한 파워 바이러스로 변형되어 그 바이러스를 죽일 항생균을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다윗은 악인에 대하여 먼저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3) 증거하였습니다. 탐리는 재물에 집착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얻으려는 자로서 다윗은 여기서 악인의 가장 큰 속성이 재물에 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모든 다툼은 재물을 탐하는 데서 일어 납니다. 각 정권이 물러날 때마다 나타나는 비자금 문제와 고위공직자들의 정경유착은 아무리 지탄을 받아도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고위직에 앉게 된 것은 마치 재물을 축재하기 위한 기회로 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여호와를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두 제자 중 예수를 배반하여 판 가룟 유다가 공동체의 헌금을 관리하던 자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영광된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후에도 그 마음을 재물에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재물로 인하여 파멸을 당하고 있는지요? 대형교회마다 일어나는 분쟁들은 모두 재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와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이미 주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경계하셨고 복음을 위하여 전토와 재물과 부모 형제 처자를 버린 자들은 내생에서 배를 받고 천국이 들어가지 못할 자가 없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재물은 우상숭배라 한 것입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서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증거 하였습니다. 여기서 모든 사상이란 그들이 생각하는 모든 계획과 생각들로서 이것은 악인들이 하나님을 인식하되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마치 집안의 가장 어른인 아버지를 인식하면서도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또 다윗은 악인들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요동치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치 아니하리라(6)하였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당당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돈만 있으면 무엇인든지 할 수 있다 생각하고 어떤 문제라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십시오. 비자금과 관련하여 재벌이 자살을 하고 대통령의 자녀들과 고위층들이 형무소에 줄을 짓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일이든 돈으로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돈으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파멸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악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재물을 모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일삼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려 고독하고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도처에 그물을 놓고 있습니다.

 

다윗은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11) 고발하였습니다. 사람이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자기 교만에 빠져 하나님을 능멸하려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위치에 선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어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1-23)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찰자이십니다. 다윗은 주께서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14) 증거하였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속히 멸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사랑이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가 오면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올무에 던져 버릴 것입니다. 바울은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보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롬1:28) 하였습니다. 이때가 되면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11편- 의인의 터

(시11:3,4)터가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악인이 만연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이렇게 고고하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남들은 다 자기 모습을 따라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면서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데 그리스도인으로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세상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야 하는 우리가 과연 옳은 일인가 생각하기도 하고 또 정말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의인이 받을 합당한 보상은 있는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다윗은 1절에서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여호와께 피하였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만약 어느 교인이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여호와께 속하였다 한다면 그는 이중인격자이며 또 자기 교만에 빠진 사람입니다.

 

주님은 너희에게 제자의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자는 하늘에서 결단코 상급을 잃지 않으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오직 의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2절에는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하였습니다. 빗나간 활의 살은 죄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향하여 매일 범죄에 가담하도록 다가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네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었으니 네 영혼이 걱정할 것이 무엇이냐 너는 우리와 함께 즐기자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의인의 터가 무너지면 무엇을 할꼬 하였습니다. 만약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인생을 즐긴다면 우리가 그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예배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 곧 성전된 그리스도의 지체들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처소요 또 하나는 성령이 임재하신 우리의 몸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이 땅에 있으나 모두 하늘나라의 보좌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께서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보좌에서 자기의 성전 곧 자기의 지체인 성도들을 감찰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하였으며 다시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 된 성도들의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터는 그 마음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잠언 기자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이에서 생명을 얻는다 하였습니다.

 

- 시편12편 순결한 말씀

(시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그러면 의인된 우리가 악인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의 영혼을 지킬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는 힘이 재물이나 명예나 지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물이나 지위나 지식이 사람을 지켜 주지는 못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세상은 벌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국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이 더러워지는 데에는 사람들의 말에 있습니다. 야고보는 혀는 불의의 세계라 하였고 혀를 제어하는 자는 능히 자기의 온몸도 제어하리라 하였습니다. 말은 커다란 배를 움직이는 키와도 같고 또 태산을 태워 버리는 불과도 같습니다.

 

다윗은 서두에서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땅을 더럽히는 악인의 누룩을 언급한 것입니다. 악인들은 마치 누룩과 같아서 그들의 사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여 모든 사람들을 죄의 노예로 만듭니다.

 

그들은 거짓과 아첨의 말로 이웃을 미혹하며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의 것이나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외치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이단에 빠진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본 일이 있는지요? 그들은 참으로 담대한 말들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버립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도리어 우리가 잘못된 믿음을 가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비록 우리가 그들을 대항 할 수 없는 연약한 위치에 있다 하드라도 그의 순결한 말씀으로 능히 우리의 영혼을 안전히 지키시고 영원토록 보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에서 성경이 떨어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시편 13편- 영혼의 인내

(시13:5)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다윗은 주께 영혼의 고통을 호소하여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여호와께서 나에게서 얼굴을 피하고 계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영혼은 갈급하여 밤을 세워 기도를 하기도 하고 또 금식을 하기도 합니다. 다윗은 이것을 영혼의 경영이라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주의 얼굴을 보지 못할 때 나의 영혼은 낙담하여 실신하기에 이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세상은 더욱 강한 손으로 멱살을 휘어 잡고 놓지 않으려 합니다.

 

이 상황을 다윗은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서서 두렵건데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럽건데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우리가 하나님과 단절될 때에 발생할 수 있는 두 가지의 위험을 언급하고 있는데 먼저 다윗은 영혼의 경영에서 밀려 사망에 들어 갈까 염려하였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에 심히 낙담을 하면 모든 것을 포기 하기에 이릅니다. 더욱이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더 빠릅니다. 그래서 불경기가 오면 거리에 노숙자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또한 다윗은 사단의 충동을 받아 적의 계략에 빠질 것을 염려했습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승승장구 승리를 하였을 때 마음이 우쭐하여 군대장관 요압과 백성들의 두목에게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였습니다. 결국 이 일로 백성 중에 온역이 일어나 칠만이 죽었습니다(대상21:1-14).

 

나는 가끔 이런 일에 잘 빠집니다. 곤고한 중에 어느 목사가 와서 교회 부흥과 관련된 말들을 하면 나도 모르게 충동을 받아 행동에 옮기려 합니다. 이 일은 우리 목사들이 가장 경계하여야 할 일입니다.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하면 우쭐하여 무리하여 큰 성전을 지으려 하기도 하고 무리한 작전을 펴 성도들을 곤경에 빠트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거룩한 성도의 삶은 세상에서 끊임없이 공격을 받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성도인 당신이 새상으로부터 아무런 공격도 당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믿음은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에서 그의 성전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성도들의 의로움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의뢰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그의 긍휼하신 인내로 나의 인내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주의 온전한 구원을 기뻐하며 우리는 오직 주를 찬송하여야 할 것입니다.

 

- 시편 14편 야곱의 기쁨

(시14: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14편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하여 이 땅에서 천국을 실현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모두 죽어 땅에 뭍혔고 세상은 여전히 더러움에 빠져 악의 굴레를 돌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2절에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시려고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하였습니다.

 

다윗은 로마서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하는 유대인이나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나 모두 다 죄 아래 있다고 증거하였습니다(롬3:9-12).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라 자긍할 때가 있습니다. 더욱이 어떤 지위에 오르던가 또 어떤 선한 일을 하였을 때 스스로 마음이 교만하여집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선한 일을 하였다 해도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은 여전히 죄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부자 청년이 주 앞에 엎드려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네가 율법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다 하셨습니다.

 

이에 그 청년은 그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네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부자인고로 근심하며 돌아 갔습니다.  이에 주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 가기보다 어렵다 하셨습니다.

 

다윗은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다(4)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지혜가 하늘에 있지 아니함을 말한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늘의 복이 재물에 있는 줄 아나 그들은 재물을 모으기 위해 가난한 자들의 영혼을 궁핍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 구원이 하나님의 보좌 곧 주의 말씀으로 나오기를 소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택한 민족으로 그들에게는 예배와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고 성도의 시온 곧 그리스도를 버렸습니다. 그로 하여 결국 그들은 이방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노래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고난과 그들의 영원한 구속을 예언한 것입니다. 후일 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하여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롬11:25-27) 기록하였습니다.

 

-시편 15편- 성전에 거할 자

(시15:1)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다윗은 15편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거할 자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그는 먼저 앞에서 이 세상에 의인은 없다고 선포하였고 오직 영혼의 구원은 시온에서 나온다 노래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깨달아 그 앞에 나오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고통의 세월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으로 고통을 경영케 하신 것은 고통 하는 영혼의 경영 속에서 주 여호와 하나님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인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이며 두 번째는 재물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이며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의 성전에서 여호와를 예배하게 하셨습니다.

 

먼저 다윗은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라(2) 하였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빛 된 교회와 그의 성도들에게 요구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장 요구되는 것은 정직함입니다. 더욱이 세상의 빛인 교회의 정직함을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공의와 마음의 진실을 요구하였습니다. 공의란 공평하신 하나님의 판단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잣대가 아닌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따라야 할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또한 진실된 마음은 가증한 것을 벗어버린 진솔한 믿음을 말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일이면 성전을 향하고 있습니다만 과연 주의 영광 된 날을 사모하여 헌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다윗은 3절에서 그 혀로 참소치 아니라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공존해야 할 이웃이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최근 북한의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면 정말 사람이 어떻게 하면 저러한 악한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위정자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퍼주며 그들의 악행을 덮으며 두둔하고 있습니다만 그보다 먼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으로부터 구원을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처럼 악하게 되는 것은 그들 중에 의인의 터가 무너졌고 또 시온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시편 16편- 아름다운 기업

(시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우리는 앞에서 이 땅에 역사하는 악인들의 횡포와 의인의 고통과 그들의 영혼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사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의인을 일으키고 또 그의 의인들을 위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신 것입니다.

 

다윗은 서두에서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하였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호수는 모든 시편의 주제이며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의 기도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께 드리는 기도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모두가 주를 향하여 외치는 구원의 호소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호소는 세상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재물을 원하나 우리는 오직 주께서 다스리는 평강의 나라를 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2절에서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오랜 영적 투쟁의 결론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윗은 이 진리를 터득하기까지 수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주께 선택받았다는 이유로 사울에게 쫓김을 당해야 했으며 왕이 된 후에도 안으로는 그의 아들들과 배신자들의 위협과 밖으로는 이방의 위협으로 시달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께 복을 얻기 위해 새벽부터 나아와 울부짖습니다만 사실 여호와 우리의 주 그가 우리의 복인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 있어 하늘 보좌에 계신 그의 성도가 되었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요 복된 인생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그로부터 나오며 우리의 인생이 그로부터 시작되고 또 그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미 성경은 나는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이라 기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실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가 기뻐하노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기쁨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 안에 있는 이 기쁨을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습니다. 나는 가끔 내가 주를 믿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내가 고통 중에서도 인내로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기쁨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4절에서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기록하였습니다. 그 당시 이방인들은 신 앞에 나아가기 위해 자신의 몸을 칼로 째어 피를 보이기도 하고 또 심지어 아들을 불에 태워 헌신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사단을 예배하는 자들 중에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바치기도 하고 또 그들의 노예가 되어 인생을 희생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들에게 신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다윗은 5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삶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산업임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목사로서 또 사업가는 사업가로서 상인은 상인으로 회사원은 회사원으로서의 영광된 삶이 있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 주께서 부르신 그 믿음의 분량에 때라 살아 가는 것입니다. 모세의 글에 많이 거둔 자나 적게 거둔 자나 부족함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계속하여 다윗은 내게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각 사람의 부르심에 대한 사역적 영역을 노래한 것입니다. 나는 때때로 나의 부족함으로 교회가 성장되지 못함을 자책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구역은 주께서 내게 주신 아름다운 구역입니다.

 

만약 어느 분대장이 자기 구역이 작고 연약하다 하여 자기 구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면 주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매우 작은 구역이라고 장차 그 구역은 하나님 성전의 머릿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날을 바라보며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는도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하였습니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한다는 말은 그의 말씀으로 경계를 삼아 살아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실패하는 것은 잘못된 말과 거짓을 따라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 말씀에 귀를 귀우리고 그의 교훈을 기뻐하면 주께서 내 모든 길에서 지혜가 되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기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죽음 후에 일을 노래하여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이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체의 죽음을 초월한 영생의 기쁨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미 다윗은 성령의 충만한 교훈을 받아 계시록을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믿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시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 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2:29-32) 증거하였습니다.

 

영혼이 음부에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계시록에서 배운바 있습니다. 계시록 21장 8절에는 두려워 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 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과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기록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를 믿은 거룩한 성도들은 항상 주와 함께 할 것이니 성경이 기록하기를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 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끝으로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오늘의 우리의 애통함은 그리스도의 기쁨을 쌓기 위함입니다. 인내로 참고 의인의 터를 지키며 주의 말씀을 떠나지 않을 때 하늘로부터 오는 성도의 기쁨이 가득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즐거움과 평안이 가득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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