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시편서 강해

(시편17:15) 의인의 형상

이요나 2007. 2. 26. 11:03

 (시편17:15) 의인의 형상

 

 (시17:15)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라

 

오늘 17편에서 시편기자는 주의 형상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하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사모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죄 속의 우리가 그러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는 그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아직은 죄의 육체 속에서 고통을 하고 있어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의 자녀라 칭함을 받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의 영광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할 것은 우리의 형상이 아직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아직 육체의 고통과 세상의 죄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로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윗은 주의 형상으로 만족함을 얻기를 소망하며 먼저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는 의로운 자 중에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뵈올 수 없는 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인의 반열에 들어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얻었고 주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으므로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신분은 죄인에서 의인이 된 것입니다.

 

*정직과 공평

다윗은 1절에서 여호와여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였습니다.  다윗은 지금 주의 형상에 만족함의 조건 중에 정직함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의 정직을 호소합니다. 재판장에서도 피고와 원고는 서로 자기의 정직함과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의인의 정직함은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평함으로 측정하여야 합니다.

 

다윗은 2절에서 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내시며 주의 눈은 공평함을 살피소서 하였습니다.이것은 인간의 판단은 정직하지 못함을 전재한 것으로 의인은 어떤 것을 판단할 때 자기의 지혜와 생각에 의지 하지 말고 하나님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인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시험과 권고

다윗은 3절에서 주께서 나의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 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하였습니다. 다윗은 정말 위대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감찰 가운데 흠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주께서 나의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 하셨다는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다윗이 흠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마음을 시험하심을 깨닫고 있었고 또 잠자리에서 자신의 잘못된 일들을 권고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주께서 회개의 기회를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입술의 범죄

다윗은 의인들이 가장 삼가야 할 것은 입으로 죄를 범하는 말아야 할 것 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의인된 우리는 때때로 자신은 죄에 대하여 결백하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행위로 나타난 범죄 곧 술과 마약과 음행과 같은 범죄를 하지 않았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범죄는 입술로 짓는 죄입니다. 야고보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자라 하였고 다시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을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하였습니다.

 

나는 금번 주일 시편을 강해하는 중 새로운 청년이 찾아 왔습니다. 그 청년은 두 번째 만나는 형제로 저희 교회 청년의 친구였습니다. 그 청년은 여자보다도 긴 머리를 자랑하는 아주 멀끔하게 잘 생긴 청년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형제의 말로는 그 청년은 늘 교회를 비판하면서도 또 가끔씩 갈급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배 전에 방문하겠다는 전화가 온 것을 아는 터라 마음으로부터 그 청년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교회 맨 뒤에 앉아 있었고 우리 교회 또 다른 청년은 그 옆에 같이 앉아 주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나오기를 권하였으나 청년은 그대로 앉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시작되는 동안 그 청년은 옆에 있는 청년에게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나는 설교를 중단할 수 없어 간간히 본문을 성도들과 함께 읽었습니다만 그 청년은 나의 시선이나 설교에는 아랑곳 없이 계속 자기들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설교자는 자기 설교에 방해를 받으면 정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열을 받게 됩니다. 나는 어느 정도 숙달이 된 편이지만 설교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이어지자 필름이 끊어지기 직전에 있었습니다. 간신히 마음을 달래며 설교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분노는 계속 사라지지 않고 어디 쏟아낼 곧을 찾고 있었습니다. 나는 끓어 오르는 분을 참고 그 청년에게 가서 악수를 청하고 무슨 예기가 그리 재미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교회 청년이 이 형제가 인생에 대하여 논하자 하여 서로 인생관을 주고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잘 참았던 내 분이 솟아 올라 인생관을 나누려 거든 끝나고 하던가 아니면 나가서 하던가 하지 설교하는 사람의 입장은 생각지 않았느냐 책망하였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농담으로 지나갈 터인데 그 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참고자 하드라도 이미 말이 입을 터치고 쏟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사단이 옆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날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다 한 것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

다윗은 계속하여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4,5) 하였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다윗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대할 때에 마치 주께서 친히 입술로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권위자가 자기 앞에서 말할 때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너무 경망스럽기만 합니다. 만약 이 말씀이 대통령이나 왕명으로 받은 서찰이라면 우리가 그 명령을 감히 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만으로 우리가 의인의 도를 다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은 우리가 주 앞에 깨어서 지켜야 할 일들이지만 우리의 행함만으로 않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의인은 악인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응답의 확신

다윗은 6절에서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는고로 내가 불렀사오니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응답할 것을 믿고 당당히 앞에 나가 주를 불렀습니다. 과연 이 땅에 주 앞에 나아가 당당하게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지요. 그러나 우리가 정녕 의인일진데 그 앞에 나갈 수 있는 담력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기록하였고 다시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8,39) 증거하였습니다.

 

*영생을 바라보며

이제 다윗은 자기를 대적하는 자를 고발하여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의 분 깃을 받는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울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14) 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의인을 대적하는 세상 사람들이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반적인 세상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자들로서 의롭지 못한 자들을 지칭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때에 많은 제사장들과 서기관과 바리새인 그리고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의인이라 칭하며 백성들 위에 서서 주의 헌물로 배를 채웠습니다. 주님은 배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모세에 자리에 섰으니 너희는 저희의 말하는 것은 지키되 저희의 행위를 따르지 말라 하였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재물을 축적하고 있는지요. 그들은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교권과 재물을 자녀들에게 세습하고 또 자기를 따르는 어린아이들에게 주로부터 받은 분깃을 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윗을 고백처럼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다 노래할 것입니다. 다윗은 주의 재림하실 때의 아름다운 자기의 형상을 바라보며 의인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