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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15:20) 복음사역의 원칙

이요나 2007. 2. 27. 13:39

(로마서15:20) 복음사역의 원칙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하고 또 예루삼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롬15:31,32)

 

우리는 앞에서 복음사역의 기본적 원칙에 관한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바울은 복음 사역자의 첫번째 원칙으로 사역자들의 자세를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강한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복음 사역자들의 높아진 마음을 경계한 말씀입니다. 복음사역은 정말로 참기 어려운 고통이 따라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상의 신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바와 같이 우리의 대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교회를 어떻게 섬기셨는지를 바로 알게 되면 우리의 짊은 가벼워지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우리의 믿음이 성령의 충만함에 있기를 간구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선함과 많은 지식들이 있어 남을 권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말이나 일 그리고 삶 속에 나타나는 많은 성령의 은사들로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로하여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르칠 수 있음을 치게 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식과 능력은 사람들을 스스로 교만에 빠지게합니다. 바울은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받으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선함과 충만한 지식들은 복음 전도를 위한 은혜로 주신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은 15장 두번째 시간으로 복음사역의 세번째 원리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본문에서와 같이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15:20)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이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습니다. 일루리곤은 마게도냐의 북서쪽에 위치한 로마에 속한 주(州)였습니다. 후일 달마디아로 불리던 곳으로 오늘날의 알바니아입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시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와 베레아를 전도한 후 남쪽의 아가야로 향하면서 이곳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당시 바울은 서바나 즉 오늘날 스페인으로 가려고 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당시 스페인은 세상의 끝으로 불려왔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의 선교의 초종 목적지는 서반아였습니다. 그러한 선교사역 중에 바울은 이미 복음이 전파된 곳에는 가지 않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사도로서의 직무 유기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복음사역에 있어 매우 중요한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그당시 복음은 사도들과 함께 한 사역자들에 의하여 각 방향으로 역사하였습니다.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의 견해 차이로 별도의 선교팀을 구성했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또 베드로와 마가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을 전했으며 빌립집사와 아굴라와 브리스가 그리고 성경학자 아볼로가 이방인 선교에 가담하였으며, 그 외메 성령세례를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전도에 임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에서 전도는 지혜의 권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나심 속의 능력이라 말하였으며, 에베소서 4장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믿음안에서 하나로 인치신 성령의 역사를 언급하였습니다. 바울은 주께서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위해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직임을 주셨음에 대하여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엡4:11)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그 누구 또는 어디서 역사를 하던지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과 예수 한분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요16:13,14) 하셨습니다.

 

많은 교단에서 앞으로 다투어 선교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어떤 교단에서 성공을 하였다 하면 앞을 다투어 선교사들을 파송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각 선교지를 방문하면 각 교단들의 자리 다툼이 정말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사52:15) 기록하였습니다. 만약 바울이 바나바나 또는 마가나 아볼로가 이미 복음을 전한 곳에 다시 들어가 복음을 전하게 되면 각 사람들의 직분의 다른 역량으로 인하여 커다란 마찰이 일어 날 수 있습니다.

 

사실 갈보리채플의 한국 사역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얼마전 천안 갈보리채플을 방문하였습니다. 천안 갈보리채플은 6년전에 한국인 목사에 의하여 개척되었습니다. 그분은 저의 교회에 잠시 출석했던 아주 성실하신 사역자였습니다. 그런데 미국 갈보리채플에서 한국 사역을 돕기로 온 선교사들에 의하여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6년전에 개착한 천안 갈보리채플은 문을 닫고 어느 선교사에 의해 다시 개척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성령은 결코 교회를 둘로 나누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15장 앞에서 설명한 바 있는 서로가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섬기지 못한 데서 발생한 입니다.

 

바울은 강한자는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하고는 다릅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 다음에는 필히 가르치는 역사가 따라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후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경학자 아볼로가 가르쳤습니다. 또 디모데나 실라 그리고 마가는 바울이 전도한 지역에 남아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은사를 따라 함께 교회를 섬기는 것이 우리의 역활입니다.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고전3:9)말하며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라"(고전3:10)하였습니다. 이것은 서로의 직무를 따라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을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기록 하였습니다

 

네번째로 바울은 복음 전도를 위하여 필요한 경비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헌금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24절에서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의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 줌을 바람이라"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서바나를 가기 위하여 자신에게 약간의 비용이 필요한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은 결코 자신의 생활을 위한 물질을 요구하지 않았고 오직 새로운 개척지를 가기 위해 필요한 경비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개척지의 성도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또 바울은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삼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출발지인 예루살렘을 위하여 헌금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당시 예루살렘에는 대 기근이 들었고 교회는 과부와 고아들 그리고 이방인들로 가득하였습니다. 또 그리스도를 믿으면 유대교에서 출교을 당하여 일자리를 잃을 수 밖에 없어 교회는 심각한 재정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방 교회들의 자진 참여에 대하여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27절)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전도의 다섯번째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28-29절) 이것은 복음의 결국 열매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멸매가 없다면 씨를 뿌리는 자들의 수고와 기르는 자와 추수하는 자들의 수고가 무두 무익한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복음사역의 마지막 원리 두기지를 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다름 아닌 기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요구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기도와 다릅니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는 너무 자기 자신의 유익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롬15:30)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사역은 일선의 나선 자들만의 노력으로 되지 않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복금사역자와 마음을 합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복음사역의 원리를 살펴 보겠습니다. 바울은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하고 또 예루삼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롬15:31,32)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결국은 하나님 뜻 안에서 성도들과 함께 기쁨으로 누리는 평강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우리의 복음사역은 세상에서 공감을 얻지 못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평강을 얻지 못하고 아귀 다툼에 빠져 있습니다. 그로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거룩한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희락과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삶에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