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로마서강해

(로마서15:13) 도토리 키재기 하지 말자구요

이요나 2007. 2. 27. 13:41

(로마서15:13) 도토리 키재기 하지 말자구요

 

(롬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제 로마서 15장입니다. 다음주로서 [믿음의 정의와 완성]을 다룬 로마서 강해를 마치게 됩니다. 다음 주에는 로마서 종강 파티라도 해야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 과목씩 강해가 끝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늘 나의 부족함과 부성실했음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 앞에 두려운 마음이 앞서게 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이러한 마음을 갖게 하시므로 다음을 더욱 두려운 마음으로 준비하게 됩니다. 갈보리채플 주일 설교는 예레미야를 배우고 있습니다. 또 9월부터 시작된 카운슬링 스쿨은 우리의 온전한 믿음 생활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5장 30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하고 또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여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지금 나의 마음도 바울의 심정과 같이 부디 깨우친 사람들이나 아직 그리스도의 지식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장성한 지식에 이르러 주의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를 위하여 바울은 1절에서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들의 심성은 강한 자일 수록 자기를 지키려는 습관이 있어 자기의 성을 높이 쌓고 문을 굳게 닫으며 상대를 방비하고 또 그들의 약점을 도모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정치판을 보아도 강한 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연약한 자의 약점을 찾아내어 그들로 하여금 감히 자신들을 넘보지 못하게 하려고 혈안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담당하고"라는 말은 무거운 짐을 지고 나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연약한 자에게는 그 만큼 그들의 삶을 방해하는 무거운 짊들이 있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윗의 시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시69:9) 를 인용하면서 연약한 자들의 무지의 소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과거 내가 믿음의 연약한 시절들의 행동들을 생각하면 정말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쥐꼬리만한 성경의 지식들을 가지고 남들 위에 올라 가르치려고 했고 내 앞에 세우신 하나님의 종들을 무시하기 일 수였습니다. 이것은 결국 온전한 지식을 깨우치지 못한 소치로서 결국은 주의 뜻을 거역하는 결과들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또 안식일이나 음식을 고집하는 분들을 보십시요, 또한 연일 대형집회를 열며 회개의 4단계와 5중복음을 외치는 사람들을 보십시요,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이 최고에 도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온전한 지식을 가르치는 자들을 대적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기 만족에 도취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을 훼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다윗은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무지에서 오는 비방에 대하여 댜적하여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이 그들을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인내와 안위를 입어 홀연히 자신의 무지함에서 풀려나는 날 그들은 각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께서 12명의 사도들 외에 70명의 제자들을 세우셨음을 압니다. 그들은 모두 각별한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라"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 자기들의 이상과 뜻을 내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외곡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볼 때 저는 정말로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지막에 받기로 예정된 판결들은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상금에 대하여도 성경은 상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말씀들은 견딜 수 없는 우리의 환경의 고통들로 부터 넉넉히 이길 수 있게 하는 안위의 말씀이며 소망의 말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바울은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뜻을 같이 하기를 바라며 한 마음과 한 입을 갖기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사실 각 사람들이 온전한 하나님의 지식에 이르지 못한 것은 높아진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으로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오직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와 자신의 가족들을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워 자기의 뜻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떠난 가르침입니다. 주님은 높은 것을 향하여 다투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의 주와 스승으로 발을 씻긴 것 같이 너희도 서로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의 영광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좀더 광활한 이방을 향하여 머리를 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말하며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는 주의 말씀을 상기 시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긍휼한 마음을 갖고 계심을 전하며 그를 위하여 우리를 세우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니리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예언하였습니다. 이것은 의로운 자의 일어섬으로 모든 열방이 하나님께 돌아 옴을 말한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교회를 향하여 이 일들을 감당하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향하여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방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최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중국을 비롯한 몽골, 베트남, 말레시야 등의 선교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때가 자기의 몸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위하여 헌신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기쁨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케 하신 능력을 따라 행하지 않고 높아진 자신의 마음을 따라 행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무지한 자가 되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가능한 것 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

 

나는 일본에 있으면서 한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이방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종교적 제물로 삼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의 죄와 삶을 재물로 삼아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가르치고 있으며 자신들도 도리어 우준한 심령이 되어 이방인들의 어리석은 행위에 빠져 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들은 왜 일어 나는 것일까요?

 

먼저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롬15:18) 말하였습니다. 그는 감히 주께서 친히 세우신 사도라도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말하고 일하였습니다. 바울은 사역의 소명은 오직 주의 택하심과 부르심 가운데 나타나는 성령의 기름부음에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선한 것이 가득하며 모든 지식에 충만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은 사역자들의 경건한 믿음생활에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따라 온유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평강이 우리 삶 속에 나타나야 합니다. 또한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인내와 안위하심 속에서 터득된 소망속에서 완성되어 갑니다(15장은 다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