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빌립보서강해

(빌립보서4:18)향기로운 제물

이요나 2007. 2. 28. 10:47

(빌립보서4:18)향기로운 제물

(빌4:18)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음으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립보서 4장 두번째 시간입니다. 앞에서 바울사도는 너희는 내게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명하며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바울이 복음적 생활에 대하여 이처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주의 가르치심을 따라 온전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울서신을 살펴 볼 때 바울은 육신적으로 연약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을 생각할 때 그들이야말로 육신의 소욕을 완전히 벗어난 신적요소를 가진 사람들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헌신된 사역자들은 하나같이 연약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이 ㄱ러하였고 야곱이 그러하였으며,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살인을 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죄를 묻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죄성을 이기고 성령으로 살기를 힘써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1절에서 면류관을 언급하였습니다. 또한 3장12절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온전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던 평범한 사람이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보고자 하는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10)하였습니다. 이 내용을 살펴 보건데 이것은 빌립보 교회가 바울과 잠시 서먹한 입장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일은 바울사도의 선교사역을 위한 지원이 잠시 끊어졌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늘 마음속에서 스승이며 개척자인 사도바울의 선교지원에 대한 생각을 갖고는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많은 자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 목회자 세미나에서 만난 브라질 알렉산더 선교사에게 매월 100불의 선교헌금을 지원하기로 하고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내 마음에 그 부담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늘 마음 한구석에 선교헌금을 보내야할텐데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알게됩니다. 나는 나 자신도 여유가 없다는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지만 처음 몇번 보냈을 때에도 여유가 없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약 내가 열일을 제처 놓고 보냈었다면 100불이 아니라 200불도 보냈을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의 물질이란 마치 끊임없는 샘솟는 물과 같아서 퍼내면 퍼낼수록 끊이지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합당히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그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의 싹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의 뜻 밖으로 떨어져 나가 있다가 다시 돌아 올 때의 부모의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주님은 돌아 온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버지는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 온 아들을 위하여 좋은 옷과 반지를 끼워주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바울은 11절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글 속에서 바울의 가슴에서 쏟아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 말은 사실 내 입술 속에 담아 있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역자가 자기의 자녀와 같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역과 관련하여 헌금을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지난번 연변과 청도를 방문하며 그 당시 바울이 선교사역에서 겪어야 했던 그 아품을 다소나마 겪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선교사역할 때 이미 복음이 만연된 자유로운 지역을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종교의 자유와 이방인의 위험이 쌓인 곳에서의 사역적 안전은 물질적인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장될 수 없습니다. 만약 중국 현지에서 선교를 하다가 공안 당국에 잡히게 되면 혹독한 벌금을 내고 추방을 당하던가 옥살이를 하던가 하여야 합니다.

또 선교지역의 사람들은 거의 생면부지이고 또 그곳에서 복음사역을 한다는 사람들을 만난다 해도 그들의 생활이 마치 떠도는 행인 같아서 오히려 내 주머니를 털어야만 합니다. 나는 그동안 일본이나 미국을 다녔었기 때문에 처음 방문길인 중국의 첫발에서 사역과 관련된 물질의 중요성을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바울은 12절에서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품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말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바울이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처한 환경에 적용하며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는 로마시민권자요 바리새인 중에 유력한 자로 물질적인 풍요와 권위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지위를 버리고 주의 사도가 된 이래 그는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만나를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글을 보며 생활이 쪼달릴 때마다 지나간 날 나의 풍족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그당시 어디 한구텅이라도 남겨 두었으면 얼마나 요긴하게 쓸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약 그 당시의 물질을 갖고 있었다면 나는 아직 그 지옥의 굴레를 벗어나지못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13절에서 위대한 선언을 합니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정말 이 말씀은 최악의 상황을 겪은 사람만이 또한 그 최악의 상황 속에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말입니다.

나는 최근 내 앞에 놓인 아직은 미로 속에 쌓인 나의 복음 여정에 대하여 상당한 흥미와 함께 불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10년을 마무리짓고 떠나야하는 서울 갈보리채플에 대한 염려 그리고 아직 불투명한 나의 진로...이러한 현실적인 부담감을 내 안에 샘처럼 솟아나는 비전의 소망만으로 감당하기는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14절에서 바울은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하였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기쁨에 참여한다는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남의 고통에 함께 참여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여기서 남의 고통에 참예한다는 것은 실제로 그 고통을 내가 함께 진다는 말이 아니라 간접적인 참여를 통하여 그의 고통을 덜어 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지난 날을 회상하며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는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하였습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이야기이며 슬픈 노래입니다.

여기서 '한 번 두 번'이라고 쓴 것은 여러번이 아니라 단 두번의 도움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아마 만약 여러분이 종교적 활동이 제안되 있는 곳에 들어가 선교사역을 체험한다면 지금 바울의 이 말을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편지는 더욱 애절해집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도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아마 바울은 편지가 아니였으면 직접 이러한 말은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말이란 서로의 상황과 안면에 바처 이렇게 솔직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자신의 개인적인 선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역을 돕는 손길들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열매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비를 보낼 때 개인적인 생활을 위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복음의 개척지에서는 투쟁을 위한 헌혈이요 하루하루 살아가야하는 만나인 것입니다.

18절에서 바울 사도는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음으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은 2장에서 바울을 돕기 위하여 죽기까지 병을 얻은 에바브로디도를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사역의 공급의 비밀에 대하여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19절)선언하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사역을 위하여 바울의 고통에 참예하였던 사람들에게 임하실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을 아끼다가 큰 것을 노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의 종을 사모한다고 하면서 자신과 함께할 때 눈에 보이는 일에는 참여하기 쉬워도 실제로 하나님이 받으시기 합당한 향기로운 제물에는 무관심합니다.

자신이나 가족 중에 재난이 있으면 수많은 물질을 아낌없이 쏟아 부으면서도 사전에 그러한 재난을 막을 수 있는 향기로운 제물에는 인색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축복하신다 기록하였습니다. 끝으로 성도들에게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하였습니다. 이것은 주의 성도들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이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성도들을 문안하고 함께 교제의 문안을 나누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안이란 서로 끼어앉다라는 뜻입니다. 끝으로 바울은 그들의 복을 빌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기원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특별히 주의 은혜가 심령에 있기를 기원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행위가 외형적 행위에 있어서는 않되기 때문입니다. 이 메시지를 받는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은 은혜가 심령에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