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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2:6)사역의 모델

이요나 2007. 2. 28. 10:51

(빌립보서2:6)사역의 모델

(빌2:6-8)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이제 빌립보서 2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1장을 통하여 바울 사도가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 이유를 발견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1장의 내용은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의 복음적인 합당한 생활을 위한 사도의 기원입니다. 바울은 완전한 지식과 지혜를 가춘 교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면과 위로
사도 바울은 오늘 2장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생활 속에 그대로 나타난 잘못된 믿음의 모습을 일일이 들쳐내며 그들 앞에 온전한 믿음의 모델들을 천거하기에 이릅니다. 바울은 1절에서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하고 그들의 믿음생활의 단면을 언급하였습니다.

먼저 바울은 '권면'과 '위로'와 '교제'와 '긍휼'과 '자비'를 언급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바울이 언급한 것은 빌립보 교회의 문제이기도 하고 모든 성도들 가운데 필히 나타나야 할 믿음생활의 태도입니다.

권면이란 성도들의 온전한 믿음생활과 헌신을 위하여 회중 가운데 나타나야 할 성령의 은사로서 권고와 경책과 예언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라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생활을 하면서 권면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권면이 그리스도 안 있느냐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히 권면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세상적인 방법으로 권고하고 지도하며 경책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식과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다는 직분자일수록 이러한 면들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면은 분명한 은사이지 기술과 방법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비방을 당한 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고전4:13) 말하여 비방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는 성도의 권면을 요구하였습니다. 따라서 권면은 담대한 믿음을 위한 그리스도의 깊고 높은 지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사도바울은 '사랑에 무슨 위로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아카페의 사랑을 언급한 것입니다. 아가페 사랑은 최고의 은사에 속한 하나님의 품성으로 자기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위로란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과 감정이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성으로 행하여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장 8절에서 '권위'라는 말로 권면과 위로를 함께 언급하였습니다. 이것은 가르치는 지적인 면과 정적인 면을 모두 충족시켜 상한 심령을 치료하는 역활을 언급한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의 권면과 위로는 교회사역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성령의 교제
계속하여 바울은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성도의 교제 가운데 성령의 나타남이 결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성도의 교제를 넓히기 위하여 많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것은 사실 성도들로 교회생활에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한 프로그램이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교제가 아닙니다.

또한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통하여 남을 돕고 구제사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일들이 성령의 인도와 은사로 나타나는 긍휼과 자비의 행함이 아니라 대외적인 의식과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나는 오늘 이 말씀은 우리 교회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 속에 긍휼과 자비가 사라진지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멈춰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운동, 성령의 충만을 외치면서도 성령의 본질적인 품성인 긍휼과 자비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믿음의 모순
2절에서 바울 사도는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빌립교 성도들이 늘 권면과 위로와 교제와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 바울은 그들의 마음의 상태를 지적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지 못하고 같은 사랑을 갖지 못하였고 뜻을 합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하려면 서로 나서서 다투며 자기를 나타내려 하였던 것입니다.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교만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말씀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바울은 4절에서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하라"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 주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먼저 살피라고 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허영에 들떠 교회행사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인터넷 게시판에 어떠 자매의 안타까운 사연이 올라 왔습니다. 교회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권사로 임직하는데 교회 빚을 갚기 위하여 250만원을 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은 그만한 돈을 낼 형편이 없어서 자녀들은 어떻게하여야 할지 고민스럽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권사나 장로나 집사를 돈으로 팔고 있으니 주께서 통곡할 일이지만 권사로 취임하고자 하는 성도들의 허영도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
바울사도는 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기자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너희 생각을 지키라 하였습니다. 이에서 생명이 난다 하였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의 은혜로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스스로 높혀서 교만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나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심이라"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고백이며 삶의 목표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구속자이며 구원자이며 주인으로 우리의 삶의 기준은 그리스도의 범위안에 속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위엄
바울은 9절에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을 언급하여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증거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의 증언 속에서 새로운 지식을 접하게 됩니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만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자나 땅에 있는 자나 땅아래 있는 자'들의 주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은 주는 인간이 아니시므로 현실과 하늘과 지옥의 영의 세계를 통괄하심과 또한 인간의 처소가 바뀐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과 또 자신들이 예수를 통하지 않고도 극락이라는 곳에 갈수 있다는 잘못된 지식에 현혹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5:25-27) 기록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성도들의 온전한 믿음생활을 위한 생활 규범을 언급하여 먼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12절)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 사도는 그들을 향하여 '나 있을 때나 없을 때에도'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인본주의적 속성을 경계한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주고 행하시니'하였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두번째로 바울은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사역 속에서도 늘 원망과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에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며'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흠없고 순전한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16절에서 이것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먼저 "생명의 말씀을 밝혀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말하여 오직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의지하여 달려나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믿음의 제물과 봉사'를 요구하며 자신의 생명을 쏟아 불 것을 말하였습니다.

믿음의 모델
바울 사도는 이제 그들 가운데 믿음의 모델 두 사람을 천거하였습니다. 그 중에 한사람은 바울 사도의 동역자 디모데이고 또 한 사람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로 바울을 돕기 위해 온 에바브로 디도입니다. 바울은 19절에서 디모데를 보내는 이유를 말하여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라고 말하며 다시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하였습니다.

우리가 바울서신을 살펴보면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어도 늘 핍박과 비방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를 따르는 동역자들이 불과 10사람도 못되었습니다. 오늘날 대단한 목사들 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선교대열에 동참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방인의 사도의 위치는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부모와 자식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되'라고 말하여 많은 사람들이 온전한 사역에 임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과 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에게 복음사역의 합리적인 질서를 언급하여 사제가 부모와 자식의 위치에 서야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부자간의 관계는 인위적인 관계가 아니라 하늘의 정하신 질서에 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원리를 쉽게 무너뜨리고 자신이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함께 군사된 자
바울은 25절에서 에바브로디도를 소개하여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군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복음 사역은 영적전쟁 현장임을 언급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바울의 말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권면하고 교제하고 위로하는 일들은 서로 다투며 허영을 부리며 하고 있지만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생명의 위험한 길에는 어떤 한 사람에게 위임하고 있었던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에서 바울을 돕기 위하여 파송한 선교사이지만 그가 죽기까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여행과 풍토병으로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좀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충분한 배려를 베풀 수도 있었겠지만 물자를 돕는 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갖었던 모양입니다.

마음의 근심
바울은 26절에서 에바브로디도의 병을 언급하여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라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에바브로디도의 병은 여행길의 고통보다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온전치 못한 믿음 생활 때문에 근심으로 생긴 병이였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실 것입니다만 오느 한의사에 의하면 목사과 사모들 속에 울화병 환자가 많다고 합니다. 개척교회 목사 사모들은 모두 울화병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심한 노동으로 병을 얻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노동은 쉼으로 곧 회복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근심으로 생긴 병은 식욕을 끊게하고 잠을 못이루게 하여 소화 기능과 심장 기능과 페기능 그리고 간 기능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유발됩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향하여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를 존귀히 여기라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체우려 함이니라"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도의 위치를 망각하고 봉사와 헌신이라는 착각에 교만하여져서 그리스도의 본질을 상실하고 다툼과 허영에 빠져 버릴 때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바울 그리고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에 이르기까지 오직 복음을 위하여 그와 함께 생명과 호흡을 다한 사역자들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잘못된 일들을 용서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