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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1:6) 복음의 확신

이요나 2007. 2. 28. 10:53

(빌립보서1:6) 복음의 확신

(빌1:6)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우리는 앞에서 빌립보 교회의 탄생배경과 바울이 편지를 쓰게된 동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문단을 따라가면서 빌립보 교회에 나타난 교회의 문제와 특성 그리고 성도들의 복음의 활동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복음의 계시를 발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1장 1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를 하노니"라고 서술하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빌립보 교회는 디모데와 함께 동역하였음과 빌립보 교회는 감독과 집사들의 교회조직을 가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그 당시 초대교회와 같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성령의 예언하심과 기름부음으로 직분적 조직을 가추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교회의 조직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군주국가로서 최고의 법치국가의 형태와 조직을 가추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로마의 식민지인 빌립보도 로마의 정책에 따라 모든 기관과 공동체들이 일관적인 조직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회들도 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조직은 효과적인 복음사역을 위한 공동체의 필수요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의 직분적 조직구조는 복음적 직분을 떠나 성도들과 성도들 사이에 계급을 생성하는 역활이 되어버렸습니다.

주님은 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니골라 당을 미워하신다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초대교회 시대로부터 복음의 원리가 변질된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사도로 세우시고 그들에게 너희는 나의 친구라 하셨으며 나의 형제라 하셨습니다.

사도는 복음을 위하여 세우신 직분으로서 이를 위하여 주님은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에게 성령세례를 통하여 성령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역을 위한 각 사람의 은사적 직분이지 세상의 위계질서의 체제는 아닌 것입니다. 카톨릭의 경우는 사제와 성도로 구분하여 특별한 조직을 가추고 있지만 이것은 주께서 뜻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이며 친구인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
3절에는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과 기쁨의 마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그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바울에게 베푼 물질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의 상태를 언급한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뜻대로 곱게 자라고 있음은 감사할 일이고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러한 감사의 생각과 기쁨은 그들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를 함을 인함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교제한다는 말씀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미국 갈보리채플에 가서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성도들의 생활이 복음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성도들도 교회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며 기도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것은 예배를 드리며 교회활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생활 그 자체가 복음 가운데서 교제를 이루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입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고 나면 모두 종교행사를 마친 것처럼 세상살이로 돌아 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복음에서의 교제는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무르익은 삶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하여 복음의 생활화를 의미한 것입니다.

복음의 교제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장에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 하셨으며 다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만 이것은 한 가족이 아버지의 뜻과 가르침 가운데 온전한 사랑으에 푹 젖어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한 가정은 겨울이 와도 춥지 않으며 환난과 근심이 그들을 헤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하셨습니다. 이것은 오직 복음안에서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를 이룰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계명은 그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확신의 동참
6절에서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6절)하였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선언입니다. 이것은 빌립보 성도들의 믿음이 처음부터 복음의 교제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처럼 확신하는 이유에 대하여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하였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이 마음에 있게 마련입니다. 또 그가 어떤 형편에 있던지 고난을 함께 하며 그에 주장과 이념에 대하여 세상이 어떤 훼방이 있더라도 굽히지 않고 그의 가르침을 지키게 됩니다. 이로서 역대 갸혁가와 혁명가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박해를 받으며 또 순교를 당한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이러한 믿음의 신념에 대하여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오직 모든 것을 초월하여 영과 혼과 그 몸이 하나가 되어 온전해져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