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골로새서강해

(골로새서4:1) 지도자의 지혜로운 삶

이요나 2007. 2. 28. 11:00

(골로새서4:1) 지도자의 지혜로운 삶

(골4:1)성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최근들어 온 세상이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중동전쟁과 세계경제는 그렇다치고 가까운 일본 니가타에서 발생한 지진이나 호주에 떨어진 주먹만한 우박은 이미 우리가 말세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이처럼 종말의 징조를 나타내고 있는데 교회들은 교단교파로 갈라져 교회성장에 치우치고 있음을 볼 때 정말 한숨스러워집니다.

이제 골로새서 마지막 장입니다. 마지막 장은 골로새서의 결론으로 그리스도의 비밀에 관한 내용입니다, 바울은 4장 서두에서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하였습니다.

 또한 본 서신의 끝에서 "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하고 또 라오게디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기록한 것으로보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보낸 서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4장의 주재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지도자들의 삶의 자세와 복음의 사슬에 묶인 사역자들에 관한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리더의 주권
바울은 4장 서두에서 "성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기록하였습니다. 3장 앞절에서 종들을 향한 순종의 요구에 비하여 아주 단조로운 지침입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은 사업가들을 향하여 그들의 사업적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코카콜라나  정유회사 그리고 맥도날드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보면 그 사업적 경영체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노사분규를 살펴 볼 때 이 나라의 기업이 어떻게 될까 걱정이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 순방길에서 기업이 국가라고 말했습니다만 그의 정책들을 보면 자유 기업 경제체제에서 집단 분배정책으로 전환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나 있을 분배논리로 국민들이 모두 잘 살 수 있다면 세계사 속에서 러시아를 비롯한 사회주의 체제 국가들이 모두 잟 살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교육체제나 신문사 운영 체제 방안들을 생각할 때 과연 이 나라가 어떻게 되어갈 지 전도가 의심스로워집니다.

성경은 사업가들을 향하여 의와 공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대표적 품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공평이란 세상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공평성을 나타내는 재판 용어입니다. 따라서 만약 사업가들이 그 경영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 기업들은 모두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기도와 감사의 생활
이어서 바울 사도는 기도와 감사의 생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도란 우리의 필요에 대한 요구를 하늘에 계신 주께 요청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도하되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한 것은 삶의 필요를 요구하되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평상시에는 자기 스스로 살아 가다가도 어떤 문제를 생기면 난리를 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옳바른 기도생활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역자를 위한 중보
또한 바울은 3절에서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위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역자들의 영적인 상황 속에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복음이 사역자들이 입을 통하여 전달되는 중요성을 생각할 때 사역자의 영적 상황에 따라 엄청난 잘못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말하여 사역자의 언행을 경계한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혀를 배의 키에 비유하며 또 온 세상을 태우는 불의의 세계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전도에 대하여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하였으며 또 디도서에서도 "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1;3)말하였습니다.

 얼마전 KBS에서 방영된 한국 개신교 선교 120년이란 주재로 파헤친 한국교회의 부조리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살을 지푸리게 하였습니다. 그 방송의 진의가 무엇인가를 떠나서 참으로 한국교계의 안타까운 현실을 대변한 것 같아서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전도의 명목으로 대형교회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15년 동안 한국교회는 정체되었고 결국 교회회의 겉 모습과 프로그램에 의한 교인들의 수평 이동뿐이었습니다. 그 많은 하나님의 물질이 올바르게 사용되지 못하고 이제 주님이 오시면 모두 이 땅의 것을 벗어버리고 하늘로 올라 가야할 교회들이 수백억을 들여서 호화건물을 지으려 혈안이 되어 있으니 정말 가슴 아픈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도자의 지혜로운 말
 바울은 5절에서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외인이란 불신자들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한다하여 무리한 언행을 하여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도가 성령의 나타나심이라할 때 우리는 좀더 지혜로운 관계를 모색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 바울은 6절에서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하였습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금이 고루게 뿌려지지 않으면 그 음식은 먹을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극단적이고 지나친 종교적 언행의 자재를 요구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너희 중에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막9:50)하셨습니다. 사역자들의 꼭 필요한 말과 때에 합당한 말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오늘날 많은 교회 직분자들이 전도라는 구실로 자기도 확신하지 못한 지식들을 함부로 말하여 세상에서 오히려 무지몽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들을 듣기 일 수 입니다. 더우기 믿지 않는 가족들응 향한 종교적 언행은 오히려 복음 전도를 방해하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