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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3:10)새 사람의 형상과 지식

이요나 2007. 2. 28. 11:02

(골로새서3:10)새 사람의 형상과 지식

(골3: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이제 골로새서 3장입니다. 2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필히 가추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는 충만하신 자의 정사와 권세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세상적 지식으로 사람들을 노예 삼고자 하는 헬라니즘의 지식(그노시스)을 경계하며 또 유대니즘의 율법적 가르침을 경계하였습니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지식들은 사람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기 위한 것으로 그들은 과장된 겸손함과 자의적 숭배를 함으로서 결국 그들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그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천사들에게 경배하는 것임을 일깨웠습니다.

바울은 3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삶을 위한 윤리적인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윤리는 선과 악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호 책임과 의무를 획정하는 보완적인 윤리라 하겠습니다.

 세례의 중요성
바울은 1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위에서 언급된 새 사람이 된 증거로서 '세례'를 언급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례의 중요성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 지도자들이 세례에 대한 경건한 지식을 가추지 못한채,  세례는 실제적이 될 필요가 없고 영적인 문제인 것이므로 세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행하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국 교회가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이 문제부터 새롭게 부각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론 몇 교단에서는 세례를 가르치고 베풀기도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 그들이 베푸는 세례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례를 베푸는 목사들이 세례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지못하고 또 그들 자신도 세례로 오는 성령의 능력을 아직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이였기 때문입니다(고전19장 참조).

  만약 세례를 형식적이고 영적인 문제로 치부해 놓는다면 그 이후의 문제는 모두 그 근거를 잃어버리고  영적 모순에 빠져 버리고 맙니다. 물론 우리의 믿음은 영적인 문제가 그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영적인 문제는 하늘로부터 온 지식을 근본으로 하고 있고 그 지식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에게 각인된 지식인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바울은 1절에서 '위엣 것을 찾으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이상적인 삶의 목표와 근원을 가르친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위엣 것'의 근원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를 가리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실제적이고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2절에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즉 그리스도인의 생각의 주체를 언급한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모순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 가셨고 우리는 죽어서 그곳에 갈 것이고 이제 살아 있는 동안은 그리스도의 축복을 많이 받아서 이 땅에서 그 복을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지식이고 멸망받을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이미 말한 바 그리스도의 지식에 이르지 못한
 세상의 초등학문에 물들어 버린 것이라 하겠습니다. 야고보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 오나니..."(악1:17)하였습니다.

바울은 3절에서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세례를 통하여 우리의 육체가 완전히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심을 확정한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례를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세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새롭게 되기를 소망하는 유대인을 향하여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1:38)라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례란 의식적인 의미를 말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언약하신 침례를 통해서 새 사람의 근거를 갖추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4절에서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죽음 이후의 천국에서의 영적인 일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루어질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미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와 함께 변화상상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여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서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 하시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벧후1:17)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영적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은 영적 우매함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것입니다.

 땅엣 것을 버리라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과거에 소지한 땅엣 것들을 언급하여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말하는 '지체를 죽이라'는 말을 영적으로 생각하려하고 있습니다. 즉 금욕적인 생활적 교훈으로 받아드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도록 너희 육체의 속성을 확실하게 죽여버려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이미 "너희가 육신으로 살면 반듯이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8:13) 하였습니다. 또 주님은 우리의 손과 발과 눈이 범죄를 하면 짤라버리고 빼어버리라 하셨습니다(마5:29-30).

  바울은 먼저 '음란과 부정'을 언급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품성 중 성결과 정결에 관한 문제입니다. 어쩌면 이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본연적인 본성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 아무리 의연하고 인격적인 사람들이라도 이 문제에서 자유스러운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각 교회의 성도들에게 "불의한 자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한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을 하는 자나 토색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9-10)하였습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사욕과 악한 정욕'을 언급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욕망을 억제할 수 없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즉 즐거움을 향해 절제할 수 없는 욕망 아니 절제할 의사를 상실한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저는 최근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도 임신을 억제할 수 있는  연고를 개발하였다는 보도를 본 일이 있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1가족 2자녀 캠페인을 벌려 산아제한 정책을 펴 왔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 늙어가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러한 정책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거룩한 부부생활을 헤치고 성적인 문제는 사고없이 육체적 즐거움을 부추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바울은 계속하여 '탐심'에 대하여 '탐심은 우상숭배'라 하였습니다. 탐심이란 말은  '더욱 많이' 라는 '플레온'과 '갖는다'라는 '에게인'이 합하여진  '플레오넥시아'라는 헬라어로서 '더욱 많이 갖고 싶은 욕망',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즉 '밑빠진 독'과 같은 사람의 욕심을 
말한 것입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명예와 출세와 재벌이 되기 위하여 달려 가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10억만들기 켐페인이 은연 중에 불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치적 전략은 각 시대별로 세상을 혼란한 시대로 이끌고가는
 풍조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하셨습니다. 이 문제는 재물의 속성을 언급한 것입니다. 재물은 그 용도가 마음의 선행을 따라 나타나지 않으면
  밑빠진 독처럼 채울 수 없는 욕망의 도구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는 어느 재벌의 자살을 보아 왔고 수많은 정치가들이 탐욕으로
 인하여 도덕성을 잃고 줄줄이 형무소로 들어 간 사실들을 목도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탐욕은 
절제를 할 수 없는 수렁과도 같고 브레이크 끊어진 자동차와 같이 달려 가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6절) 하였습니다.

 벗어 버리라

바울은 8절에서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은 지금 우리의 입는 옷과 같은 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새로운 사람이 되기까지의 인간의 거짓된 인격을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분과 악의'를 언급하였습니다. 여기서 '분'이란 두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불이 붙었다가 꺼지는 듯한 돌연적인 것과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렬해지는 집념적인 노여움이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후자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분을 내어도 밤을 지세지 말라'하였습니다. 이것은 분의 속성을 언급한 것으로 분은 우리 마음 속에서 장성하여 악의를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악의'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위해서는 그 어떤 악한 행동도 불사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요즘 세상 가운데 나타나는
 악한 일들을 보면 그 악의 속성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훼방과 부끄러운 말을 벗어 버리라'하였습니다. 여기서 훼방이란 모욕적인 말을 의미하며 이것이 하나님을 향할 때에는 참람한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오는 세상에사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신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부끄러운 말'이란 음탕함을 부추기는 말들을 말합니다. 요즘 크리스챤들의 입에서 부끄러운 말들이 거침없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모두 '거짓말'이라는 단어 속에 넣어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라"(9절)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벗어 버리자'라는 말을 사용하여 옷에 비유한 것은 각 사람의 인격을 언급한 것입니다. 

 
 새로운 지식을 입자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우리를 향하여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새로운 지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 사람의 인격은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에 좌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내면의 것을 보지 못하고 외형적인 것에 치우쳐 사람을 평가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또 학벌이 어떠하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가 세상의 지식을 갖고 있느냐 하늘로부터 온 지식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최근 어떤 자매 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자매는 최고의 학벌과 외국 유학까지 하였고 또 성경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었습니다. 겉으로보기에는 인테리에 속합니다. 그런데 그는 세상의 옷을 걸친 상태로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옷을
 걸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의 옷을 벗지 않고서는 하늘의 거룩한 것을 덧입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세상의 것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하여 바울은 세례를 받음으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한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는 믿음의 의식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기위한 실제적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