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골로새서강해

(골로새서2:9)신세대 유혹

이요나 2007. 2. 28. 11:03

(골로새서2:9)신세대 유혹


(골2:9)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으로 육체에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를 알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 가를 살펴 보았습니다. 바울은 먼저 지도자들의 영적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마음의 위안과 용기 가운데 사랑안에서 연합을 이루어 원만한 이해의 풍요함에 이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심령으로 하나되어 영적 규모 즉 질서와 균형을 가추는 일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믿음이 뿌리 깊은 나무와 굳은 토대 위에 세운 집처럼 되기 위하여 바른 교훈을 얻을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도들이 잊미 말아야 할 믿음의 신념은 무엇이며 또 우리의 믿음을 헤치는 잘못된 교훈들이 무엇인가 살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주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실체에 대한 바른 인식을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그리고 '주'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만유의 통치자에 대한 재인식을 요구한 것입니다. 먼저 '그리스도'란 '메시아' 즉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히브리어의 헬라어 번역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택한 종이나 왕에게 기름부음의 의식이 따랐습니다. 기름부음은 그의 신성과 거룩성을 포함한 신적권능을 부여합니다. 우리는 사울 왕이나 다윗이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사실들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이 땅의 왕과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 오심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란 구약에서 '예수아', '호세아'로 불렸으며 '구원 자', '구속자'의 의미로서 의미로서'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으로 오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의 이름으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보자로서의 사역적 의미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주'(LORD)는 궁극적으로 '야훼'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호칭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워 '주인'이란 의미의 '아도나이'라는 관계성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나에게 ~되신 분'으로서 지배자(govemor)로서의 대상과 종속자의 관계를 갖은 통치용어입니다.

시편기자는 '저로 그 집의 주권자로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고~"(시105:21)고 칭하였습니다. 구약에서는 그를 가리켜 '열방의 지배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있어서의 '주'라는 용어는 우리와 관계를 갖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인격신으로서의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또 '내가 그 안에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하셨습니다. 따라서 '주'(LORD)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주인(아도나이)이 되시여 찬양과 영광과 감사를 받으실 분이신 것입니다.

바울은 7절에서 '그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하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성도의 믿음을 나무와 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나무의 견고함이 뿌리에 있고, 집의 견고함이 토대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올바른 교훈 즉 가르침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충만의 비밀을 살펴보며 또 교회를 위협하는 시대적 이단들의 가르침과 그 형태를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의 비밀

바울 사도는 9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육신의 비밀을을 언급하여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의 권세와 머리시라"(9-10) 증거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란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요소 즉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적 품성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세상의 어떤 말로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경지에 속한 신비로서 아무도 알 수 없는 비밀에 속한 지식입니다. 그 이유는 창조자의 세계는 영원 속에 속하였고 인간은 유한의 범주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경을 통한 영적 통찰에 의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된 믿는 우리에게는 창조자에 속한 신성의 비밀을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비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충만에 관한 바른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확정지을 때에는 그에 대한 온전한 지식과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비밀과 그리스도의 육체에 관한 비밀은 좀더 합리적이고 온전한 이해를 위한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신비속에 쌓인 그리스도의 신성과 거룩한 성육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우주의 기본요소에 해당하는 초등학문에 속한 철학자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 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골로새 1장 19절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시게 하시기를 기뻐 하신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말로 표현을 하여도 한계속의 인간으로서 '충만'이란 단어를 합당하게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바울은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다'(골2:3)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충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아는 길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제자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 내가 그 안에 그가 내안에 있음을 알리라'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 또한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그와 동일한 시대에 살지도 않고 보지도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비밀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세주이심을 믿으면 그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하여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아내가 남편을 알듯이 아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거룩하심과 은혜되심과 능력과 권능이 모든 만물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모든 보좌와 권세 위에 계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려는 그노시스의 종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정죄한 이단들입니다(요일4:2).

초등지식- 헬라니즘의 유혹

이제 바울사도는 성도들을 미혹하는 잘못된 지식들을 거론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8절에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하였습니다.

바울은 먼저 '노략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노략자란 노예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즉 '그노시스 철학자'(우주의 근원정신을 주창하는 철학자)들은 노예상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적 진리를 말하면서 물질은 악하고 오직 영만이 신성하여서 육체로 온 예수는 절대로 신적 존재가 될 수 없다고 가르치며, 인간들이 물질세계를 벗어나 신적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들과 같은 고도의 진리를 터득한 스승을 통하여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지식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노예로 삼기 위해 사람의 유전과 초등학문에 의존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유전'이란 민간 생활 속에 전해 온 사상과 습관을 말하며, 이런 것들은 신비적 요소를 요구하는 습성이 있어서 별자리와 같은 우주철학 즉 '초등학문'(스케어케이아)을 끌어 들여 합리화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노시스 철학의 근원은 고대 바벨탑으로터 이어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구습-유대주의자들의 유혹

성도들을 유혹하는 것은 비단 세상의 초등학문 뿐이 아니었습니다. 더 커다란 문제는 유대인들의 할례에 관한 지식이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대였으므로 율법과 복음이 양존된 초대교회 시대의 가장 커다란 이념적 충돌은 할례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나은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은 의로운 백성이라고 주장하며 그 할례의 표시를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은 복음의 아들들은 그들의 주장에 말문이 막히기 일수였습니다. 그들은 할례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음을 증거할 수 있는 경에 기록된 모세의 율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울은 먼저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라" 증거하여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른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할례를 언급하였습니다. 이미 성경은 '마음의 할례'에 대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계속하여 바울은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말하여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의 근거를 제시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하신 성령의 세례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육신의 할례로서 자신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한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은 죄사함의 세례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이 그들 가운데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그 당시 유대인들은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에게 "모든 백성과 세례들은 세례를 받은 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오직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눅7:29,30)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승리

바울은 주께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육체를 십자가의 제물로 드려 세우신 복음의 원리를 설명하여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들을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셨다"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증거는 믿음으로 교회의 구성체가 된 이방인은 본래 죄인이었음과 할례 밖의 사람들로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자들이었음을 깨우쳤으며 그를 증명하는 경에 기록된 증서들을 십자가로 도말하셨음을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서 '도말'이란 제도를 완전히 폐기 시킨다는 뜻입니다.

15절에서 바울은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스림의 질서와 권세가 유대인에게 있었음을 시사하는 말이며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하였음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종교적 속성

이제 바울은 교회 속에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두가지 이단 사상에 대하여 경계를 짓고 있습니다. 16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경계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인간의 종교적 속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상의 궁극적인 목적은 평안을 향한 열망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인류사에 전쟁과 평화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속성은 믿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신적요소를 말하는 것인데 인간들은 신적요소를 갈망하면서도 계속 인간적인 방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변화산상의 이야기가 기록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주님과 함께 산에 올라 빛과같이 변하신 주님의 모습과 주와 함께 말씀을 나누는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비몽사몽 간에 "우리가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사이다"하였습니다.

그때 영광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를 따르는 제자들이라도 유대인의 역사와 구약이 증거하는 율법시대와 복음의 시대 속에서 함께 거하기를 소망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평안을 추구하는 인간의 종교적 속성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문제에 빠져 있습니다. 사순절이다, 크리스마스와 축제를 거대하게 치르려 하고 금식과 새벽예배와 철야예배 그리고 산 기도까지 강요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17)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인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신적요소에 도달한 신비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겸손주의자의 유혹

교회의 종교적 속성 두번째 문제는 인위적 경건과 천사숭배에 있습니다. 바울은 18절에서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않는 지라"하였습니다.

우리가 또 경계해야 할 것은 종교적 속성이 인간의 인위적인 경건과 찬사숭배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별히 우리나라 교회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신은 십자가의 구속으로 용서함을 받은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의 은혜를 입어 복음의 사역에 부름을 받은 자들이 스스로 겸손함으르 가장하여 자신을 천사와 같은 존재로 끌어 올리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우리들이 장차 받을 상들을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의 날에 받을 상금이 있음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를 위하여 많은 인내와 오래참음과 견딤의 세월을 살아 왔는데 그 상을 가로채는 존재들이 있다니 참으로 두렵기만 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속성에 대하여 '그 본 것을 의지하여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일에 소망을 두고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헛된 일에 과장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인본적인 생각에 이끌린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서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하셨습니다

신비주의자의 유혹

또한 주님은 '주여주여 하는 자들이 모두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한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 가운데 나타날 멸망의 위선자들을 경계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히13:7)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이 교회의 몸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 세상의 초등학문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이 쓰는대로 부패에 돌리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하였습니다.

이제 마지막절에서 자의적 숭배나 인위적인 겸손으로는 육체적 속성을 벗어날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도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의 충만하심을 통하여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모두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을 받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 예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