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골로새서강해

(골로새서1:27)비밀한 영광

이요나 2007. 2. 28. 11:06

(골로새서1:27)비밀한 영광

(골1:27)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한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


우리는 앞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의 화목제물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는 창조자이시며 만물 가운데 으뜸이시며 하나님의 충만으로 천하만물을 충만케 하실 자이십니다. 그가 우리의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충만 가운데서 천하 만물의 으뜸'이 되어야 할 우리의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오늘날 우리들 눈에 보이는 교회는 창조자의 권능을 나타나지 못하고 있으며 썩어짐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것으로 충만케 하지 못하고 세상 가운데서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다른 세력들과의 균형을 갖추기 위하여 눈에 보이는 힘을 키우는데 전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속적인 주권적 역사 속에 세워진 교회가 이처럼 나약하고 세속적으로 물들어 버린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바울은 그 이유의 원인이 교회의 일군들에게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 사도는 교회의 사역을 위하여 부르신 자들의 신분적 망각을 언급하였습니다.

먼저 바울은 사역자 된 우리를 향하여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21-22)라고 책망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악한 행실들'을 언급하였습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도 지울 수 없는 인생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체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위치의 우리를 완전한 거룩함에 옮기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제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믿음의 토대
두번째로 바울 사도는 '믿음'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물로 거룩한 자녀된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를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믿음이 무엇을 듣고 있느냐를 언급한 것입니다. 믿음이 들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들을 것인가 스스로 조심하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실체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마치 절간에 가서 절하고 많은 부조금을 내고 교회에 열심을 다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을 자신의 행위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바울은 우리의 믿음의 토대와 관련하여 '너희의 들은 바 복음의 소망'을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목적을 언급한 것입니다. 즉 믿는 자들이 지향하고 있는 삶의 실체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이 말하는 소망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우리에게 이미 필요하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는 소망 즉 그리스도의 날에 그와 함께 누릴 영원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교회가 지향하여야 할 복음적 비전을 상실한체 다른 종교들과 같이 눈에 보이는 현실에 만족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실체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되고 맙니다.

복음의 일군
바울은 '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라고 전제하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의 천하라는 개념과 오늘날의 천하와는 다릅니다만 결국 천하라는 의미는 사람들에 의하여 확장되고 개발되어 가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의 종들에 의하여 땅끝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제 바울사도는 교회의 일군된 자들의 본분을 언급하여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내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 일군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 사도의 위대함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위한 고난은 극복할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기뻐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는 바울의 신앙고백은 교회를 위하여 고난받는 우리에게 담대한 용기를 주는 말씀입니다.

영광의 비밀
바울사도는 우리에게 이방인 가운데 나타난 '비밀의 영광'을 언급하였습니다. 또한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춰졌던 것'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만세'란 창조의 시대를 말하며 '만대'란 그리스도께 오시기 전의 모든 시대를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사도로 비롯된 교회의 일군들에게 나타난 사역적 비밀을 언급한 것으로 이 비밀은 창세 이전부터 그리스도의 오시기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비밀에 속한 것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미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하였습니다.

그러면 27절에서 바울이 말한바 '이방인 가운데 나타난 비밀한 영광'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라"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이 말씀을 상고하며 과연 오늘날 우리의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우고 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 누가 나는 그렇다고 할 때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무엇인가 조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과연 그들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느냐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성도의 그릇됨은 잘못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여 어서 내게 오시옵소서 주의 거룩하신 말씀으로 우리에게 타나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