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1:1)세상을 이기는 지혜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오늘부터 우리는 잠언서를 공부하게 됩니다. 잠언서는 서울 갈보리채플 개척이래 2번째입니다만 이번에는 원고를 정리하여 보관한다는 차원이 되어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잠언서는 1절에서 소개된 바와 같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기록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되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네게 무엇을 줄꼬 원하는 것을 구하라 하셨습니다. 이 때 다윗은 ‘지혜로운 마음 종에서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열상3장) 하였습니다.
이에 주께서 응답하여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다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의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 난지라 저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워서 ..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다..”(열상4:29-32)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라”(6)
잠언 고대로부터 자녀와 백성들을 교육하는 방법으로 잠언으로 사용된 ‘마샬’(mashal)이란 단어는 ‘다스린다’ ‘지배한다’ 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인류역사상 누가 무엇을 청중들에게 설법하고자 할 때 ‘속담에 이르기를’, ‘고사성어에는..’ 과 같이 격언과 잠언들을 많이 인용합니다. 이와 같이 잠언은 청중들의 마음을 지배하는데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솔로몬은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으로서 주변 많은 국가들을 주도하는 제왕적 지주로서 리더이기도 하였지만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린 지도자로서 종교적 실패와 가정의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잠언서는 국가 지도자에서 일반 범부에 이르기까지 자녀와 자신을 다스리기에 좋은 교훈의 말씀입니다.
잠언이 가장 중요시하는 교훈의 잣대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입니다. 솔로몬은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16:7) 기록하였습니다. 따라서 잠언은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에 실제적 교훈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A.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함
솔로몬은 서두에서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여기서 잠언의 정의와 목적을 언급한 것으로 그 핵심은 ‘지혜와 훈계’에 있습니다. 지혜란 어떤 사물과 일을 해결할 수 있는 판단력에 속한 능력을 의미하는 통찰력을 말하며 훈계는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한 바른 지식의 교훈을 말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훈계라는 말은 목적격처럼 사용되어 동일한 위치인 것처럼 사용되었지만 실상은 훈계는 지혜에 이르는 준비단계로서 지혜에 선행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와 훈계는 서로 한 켤레의 고무신처럼 서로 뗄 수 없는 필수적인 관계를 갖고 있어 지혜가 없다면 지식의 교훈을 터득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며 훈계가 없었다면 그는 지혜자가 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어미의 배로부터 탄생하여 성장하기까지는 육신을 위해서는 좋은 공기와 물과 영양분을 섭취하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인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선한 지식에 속한 말씀의 교육과 아름다운 것을 많이 습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B.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함
또한 우리는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라는 말에서 '명철'이란 의미는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능력으로 여기서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한다'라는 의미는 세상을 밝히는 참된 하나님의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세상의 지식들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합니다만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입니다. 오직 말씀과 성령의 지혜로서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발견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두 창녀가 낳은 아들의 문제를 가지고 판단한 일이 있습니다. 두 여인이 동일한 날에 아들을 낳았는데 한 여인은 게을러서 돌아 눕다가 자기가 낳은 아이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동료가 잠든 틈을 타서 그녀가 낳은 아들과 죽은 아들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결국 이 일은 그 판단을 할 수 없어서 솔로몬 왕에게까지 올라 갔습니다.
솔로몬은 두 여인의 증언을 들은 후 대신에게 칼을 가져다가 둘로 나누어 주라고 명령 하였습니다. 이에 거짓 여인은 그렇게 하자고 하였고 아이를 낳은 여인은 아이를 죽이지 말로 살려서 저 여인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이 여인이 그 어미이니 아이를 이 여인에게 주라 판결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사건 갖지만 지금과 같이 DNA를 발견하지 못한 시대로서는 그 아이가 누구의 자식인지 밝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많은 지식들을 섭렵한 터라 사랑의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상황과 사물을 관찰할 수 있는 총명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러한 총명을 가질 수 있을까요?
3절에서 우리는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 은 모두 ‘지혜롭게’ 속에 포함된 것으로 모두 훈계를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품성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지혜롭게’라는 말은 지도력을 의미하며 ‘의롭게, 공평하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도덕적 품성을 말하며 ‘정직하게’는 성실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의 선한 인격을 갖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바른 교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4절의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함’ 이란 말은 이 땅의 인간이 처음부터 지혜로울 수 없으며 지식과 온전한 믿음은 젊었을 때부터 터득하고 훈련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한 것입니다.
C. 지혜자의 학식과 명철한 자의 모략
계속하여 잠언 기자는 “지혜있는 자는 듣고 학식을 더할 것이여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5) 하였습니다. 이것은 지혜란 학식과 관계가 있으며 또한 그 한계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계속 진보되어야 하고 터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란 말씀 속에서 우리는 생활 속에서 계속 어떤 문제들을 극복하고 해결해 나아야 할 상황에 처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들은 신학교를 졸업하면 마치 성경공부를 다 한 것처럼 교회부흥을 위한 일에 온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 준비라는 것이 자신이 성경의 지식을 터득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할 일들에 맞추어 적용위주에 설교를 쏟아 놓습니다. 그러한 일로 성도들은 날이 갈수록 지식에 속하지 못하고 믿음생활이란 명분에 사로잡혀 종교적 활동과 행위 믿음에 빠지게 됩니다.
D. 잠언과 비유의 깨달음
흥미롭게도 솔로몬은 6절에서 “잠언과 비유와 지혜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고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언급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잠언들이 기록되었습니다. 비단 잠언서에 기록된 것만이 잠언이 아니라 믿음의 선진들과 사도들을 통해서 전달된 그들의 깨달음의 교훈은 모두 잠언에 속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친 바울의 메시지는 그가 오랜 믿음의 경륜 가운데 깨달은 하나님의 뜻으로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귀한 잠언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많은 비유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유란 어떤 일과 사물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것을 옆에다 갖다 놓아 듣는 이로 하여금 그 말하고자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비유라는 헬라말 ‘파라블로’는 배가 항구에 도달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씨 뿌리는 비유로 천국의 비밀을 말씀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것을 비유로 하나니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막4:11,12) 하셨습니다. 또한 마가는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 들을 수 있는대로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막4:13) 기록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솔로몬은 ‘지혜있는 자의 말과 오묘한 말을 깨달으라”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지혜 있는 자란 과연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요? 주님은 제자들에게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12:42) 하셨습니다.
심판 때라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아직 이르지 않은 주의 날을 언급하신 것 같으면서도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라’ 는 말씀은 이미 솔로몬 왕정 시대에 있었던 말씀의 인용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수천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시대는 일직선 상에 있는 하루와 같은 날로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혜의 본질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오묘한 말을 깨달으라”는 말씀은 곧 신비에 속한 곧 하나님의 비밀한 계획과 예정에 관한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잘못 해석하여 이 땅에는 많은 이단들이 발생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21) 경계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한 것은 많은 제자 된 사람들이 조급하여 잠언과 비유와 오묘한 말씀에 속한 말씀들을 함부로 대할 것을 경고한 것으로 그는 이미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 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1:19) 말하여 우리의 온전한 마음과 지혜가 성경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II. 잠언의 과정과 목표(7-19)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7)
A. 지혜의 출발선(7-9)
이제 우리는 잠언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이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살펴 보겠습니다. 솔로몬은 그 출발선을 말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7)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어는 ‘지식’이며 그 지식을 위한 보어가 ‘지혜와 훈계’입니다. 다시 말하여 지혜와 훈계가 모두 지식에 속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7)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알기 때문에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곧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방 중에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자기의 이름을 이방에 알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율법에 열심을 가졌지만 그들은 그 열심은 지식에 속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 하였고 바울은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증거하였습니다.
이에 때가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죄로 막힌 인간을 긍휼이 여기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시기 위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한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습니다만 지혜를 사물과 어떤 일을 해결하는 능력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 지식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어떤 뱀은 독이 있고 어떤 뱀은 독이 강하여 물리면 죽게 됩니다. 그런데 누가 뱀을 다루려면 뱀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들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뱀의 종류와 그 모양과 특성 그리고 독성을 알고서야 뱀을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뱀을 잘 다루는 것은 지혜이고 그 뱀의 특성을 잘 아는 것은 지식에 속합니다. 이와 같이 지식은 많은 자료들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많은 자료들을 섭렵할 때 그 상황과 일에 따라 그에 맞는 지혜가 창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가 훈계에 속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바로 지식은 가르침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본질이신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를 알리라”(요7:17) 하시며 나의 말하는 모든 것은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나는 네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으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17:8) 하셨습니다.
2.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8,9)
두번째로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식의 근본이 부모로부터 나온다 가르쳤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사슬이라”(8,9) 하였습니다.
인간이 탄생하면서 가장 먼저 인연을 갖는 것은 부모입니다. 부모는 새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며 온 정성을 다하여 축복합니다. 이 세상에 부모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는 오직 그 자식이 잘되는 것을 목적으로 그 자식에 자신의 생명과 열정을 희생합니다. 그를 위해 자신이 삶 속에서 터득한 지식과 지혜를 가르쳐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게 됩니다. 이 결과는 후일 그 자녀가 세상에 출세할 때에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사슬이라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녀들의 문제로 고통하고 있습니다. 새 생명의 탄생의 기쁨과 자녀를 키우며 품은 소망은 사라지고 자녀의 장래가 위태로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 부모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부모들은 어려서부터 정적인 면에 치우쳐 훈계를 통하여 그 마음의 지식을 쌓아 주기 보다는 물질적인 것을 채우려 합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물질적인 욕정에 질들여져 겉잡을 수 없는 길로 뛰어나가게 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배우는 지식과 학문으로도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이미 휘어진 가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B. 지혜의 경계선(10-19)
그러면 부모의 훈계와 가르침은 한 인생의 성장에서 무엇의 기준이 될까요? 그것은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성적인 판단력입니다. 다시 말하여 옳고 그름에 대한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나쁜 것을 가르치겠습니까마는 인간의 두뇌는 생활 속에서 보고 들은 것 만지고 감각한 것들이 메모리 되어서 그 인격을 성립하는 수단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자녀들이 보고 들었느냐에 따라 자녀의 인생의 승패가 판가름나게 됩니다.
솔로몬은 10절에서 ‘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뀔지라도 좇지 말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자녀를 향한 부모의 두번째 교훈입니다. 먼저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모델이 되는 것이며 두번째는 악한 것을 좆지 못하게 하는 경계입니다. 여기서 좇지 말라는 ‘동의’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것은 이성적 의지의 행사를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11절 이후에서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상태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한 우리의 자녀들을 사람들을 헤치는 일에 동참하도록 꾀어냅니다. 물론 여기서 사람들의 피를 흘리는 일이란 살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네 형제에게 바보라고 말하는 것은 형제를 살인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에게 제일먼저 유혹하는 것은 사람을 헤치는 것이며 그 목적은 금은보화를 빼앗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경제라는 대 명제 아래 국가간에도 치열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정치는 경제를 목표로 하고 있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전쟁이라는 무기가 필요합니다. 상대를 죽여야만 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잠언기자는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다니니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15) 하였습니다.
우리가 누구과 함께 다니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선한 사람들과 함께 하며 살면 그 사람은 선한 무리가 됩니다. 그러나 금은보화를 좇는 악한 무리와 동류가 되면 결국 나 자신도 악한 자가 되어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됩니다. 이에 잠언 기자는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되느니라”(19)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도소와 같은 곳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들의 죄는 대부분 재물과 관련된 것으로 모두 누군가와 결탁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시작은 결국 악한 자의 꾀임을 좇았기 때문이며 그에 대한 바른 지식을 부모로부터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이런 것을 가르치지 못한 것은 사실 그들도 그 지혜를 배우지 못하고 또 깨닫지 못하여 그들의 삶의 목표가 재물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III. 잠언의 결과(20-3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23)
그러면 이미 부모로부터 그 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실패하여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라 하실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 기록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은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올무에 빠져 실패하고 죄 중에 태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인은 여호와의 지혜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 받았습니다.
A. 지혜의 속성은 공개적이다
잠언기자는 20절에서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 머리에서 소리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 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며..” 라고 기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이제 길거리와 광장으로 또 초상집과 도시 밖과 도시 안에서 사람들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의 본질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것입니다. 지혜의 본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결국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식을 터득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의 초청에 응하는 문제는 이미 부모의 슬하를 떠난 자들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의지로 믿음의 선택이라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회개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례요한을 먼저 보내어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사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요3:3) 하셨고 다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3:5) 하셨습니다. 먼저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조건을 말씀하신 것이고 두번째는 그 조건을 해결하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으로 회개의 세례와 성령의 세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부르심의 초청에 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성경은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책망을 받을 때에 내가 웃을 것으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24-26) 경고하였습니다.
나는 참으로 나로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그의 성령을 보내어 지혜의 길로 인도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이태원을 바라보며 탄식하듯이 나를 위하여 기도했던 주의 천사들로 불타는 소돔성의 연기를 보게 하였을 것입니다.
계속하여 성경은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세상의 끝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 은혜를 깨닫지 못하여 멸망을 당하는 때 곧 주의 도움을 청하여도 받지 못하는 그 때가 멸망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라”(28)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29,30) 하였습니다.
아직 당신에게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낮이 열두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요11:9,10)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회개할 만한 때요 주의 은혜를 만날 날인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거역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희를 행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생각이라 나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29:11-13)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가 주께 전심으로 기도하고 주를 찾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네가 그들을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43:7) 하셨습니다. 이것은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온전해 지는 과정을 언급한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또 세상 가운데서 만들어 가시고 주의 말씀과 그의 성령으로 우리를 다시 지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로 하여 이제 우리는 그의 은혜의 말씀과 거룩한 성령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지금도 살아 계시어 우리를 지혜의 길로 인도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쓰신 그 말씀들을 우리고 보게 하여 그 말씀 속에서 주의 형상을 내가 보오니 주여 나로 하여금 이제 주의 은혜를 보답하게 하소서. 내가 주의 복음을 위하여 주께서 명하신 생명의 길로 나아 가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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