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상담

심리이설 비판사례(5)

이요나 2007. 5. 9. 11:44

심리이설 비판사례(5)    

질문 14: 그러면 심리이설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란 말인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란 말인가?

답: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런 질문에 답을 하려면 먼저 심리이설이 무엇인지 그 정의부터 다시 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심리이설이라는 말과 믿음의 관계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심리이설이라는 말은 원래 심리학(psychology)과 이설(heresy)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하나가 된 말이다. 이 말에 대해서 Psychoheresy Awareness Ministries(4137 Primavera Rd., Santa Barbara, CA 93119)의 Martin and Deidre Bobgan는 그들이 공저한 Psychoheresy p. 4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심리학이라는 누룩을 말할 때 우리는 심리학 전체 분야를 두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성품과, 인간이 살아야할 방법과, 인간이 변화되는 방법을 다루는 부분만을 두고 말한다. 따라서 심리이설은 인간의 가치관, 태도, 행위 등을 두고 말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해와 치료에 관한 인간의 제도를 말할 때는 심리학, 심리적상담, 심리적 방법, 심리요법 등의 말을 호환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둔다."


   "심리학화한다는 말도 성경이 이미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을 심리학적으로 가르치려 하거나, 믿게 하려 하거나, 비과학적이거나 증명되지 않은 심리학적 의견을 조장하거나 장려하는 것을 말한다"(p. 9)고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잘 모르기 때문에 모든 심리학을 합쳐서 같이 비난하거나 정죄하려는 것을 보는데 이는 심리학이라는 말이 많은 분야를 망라하고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APA)에 의하면 심리학은 여러 분야를 대표하는 50개 이상의 분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심리학의 다양한 분야를 모르고 어떤 사람은 모든 심리학을 인본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종교라고 정죄한다. 그러나 우리가 반대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심리요법과 그의 저변에 깔려있는 잠재적인 심리적 이론과 그것이 많은 기독교 학교와, 교회와, 신학교와에 침투해 매우 해로운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은 심리학과 진화론의 잘못된 비유를 사용해 심리학과 진화론은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고 말 한다. 그러나 이런 비유는 결국 성립하지 못하는 비유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하등생물체가 고등생명체로 진화되었다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이 생물학의 많은 분야중의 하나인 것이 마치 심리요법이 심리학의 많은 분야중의 하나인 것과 같은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심리학이라는 말은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훨씬 다양하며 많은 분야를 망라한다. 비평가들은 심리학과 진화론을 인본주의적이고 무신론적 종교라고 마구 말을 한다. 그러나 심리학의 어떤 분야에서는 이것이 사실일지는 모르나 심리학 전체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를 들면 교육심리학에 종사하고 있어 독서 장애를 다루고 있는 사람은 독서할 때에 사람의 눈이 사용되는 것과, 읽은 것을 이해하는데 있어 뇌의 기능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교육심리학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눈알의 홍채(iris)와, 학생과, 망막의 중심(fovea)과, 눈신경 등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심리학의 이런 분야는 인본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종교라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야이다.


  그러면 심리요법과 그의 저변에 있는 심리적 이론에 대한 결론을 내려보면 심리이설이라는 말은 그의 이론과 실천이 복음의 근본적 진리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탈했다는 것은 심리이설이 하나님의 성경적 진리를 믿지 않고 인간의 증명되지 않고 비과학적인 의견을 믿고 사용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임상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방법을 지적하고 비평하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많은 대학, 신학교, 교회, 개인들이 심리이설의 침투를 받고 영향을 받아왔다. 이런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큰 해를 받아왔다. 이런 사람들을 전부 합치면 그 숫자만 해도 부지기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심리적 이론의 사용과 기법을 비평하기는 해도 그들의 믿음을 의심한다고 말을 해서는 안된다.

 

믿음이란 예수그리스도와 성경을 통해 인간이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는 문제이다. 고로 우리는 그들의 구원, 전향, 중생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심리이설을 도입함으로 다른 사람의 영적 생활에 끼치는 치명적 손상에 대해 언급하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전부 구원받았다는 말도 물론 아니다. 그들이 구원받고 구원받지 못한 것을 따지자는 것이 우리의 목적도 아니다.


  우리가 심리이설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구원문제를 다룰 수는 없다. 그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구원에 이르는 그들의 믿음에 대해서 우리는 구원에 관한 그들의 믿음의 신조도 모른다. 또 그들의 간증을 듣거나 읽어보지도 못했다. 또 설사 그랬다해도 그들이 정말 그렇게 믿는지도 모른다. 구원에 관한 것은 오직 하나님만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을 심리이설화 하면서 이들이 범하고 있는 성화에 관한 본질은 분명히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널리 지적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비판은 성화에 관한 그들의 본질은 분명히 성경적으로 부패되어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것은 그들의 말과 글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그들이 기독교인이라 하면서도 구원에 관한 성경의 본질적 원리에 위배되는 것을 믿고 있다면 그들의 구원은 일단 의심해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들의 구원에 과해서는 최종적으로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과 우리가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성화에 관한 잘못된 그들의 견해와 소신과, 또 이런 것들이 많은 사람들의 영적 건강에 끼치는 해는 치명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심리이설의 비판도 성화에 관한 그들의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견해에 한정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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