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상담

심리이설 비판사례(3)

이요나 2007. 5. 9. 11:46

심리이설 비판사례(3)

 

질문 7: 하나님께서는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으시는가? 만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내가 이렇게 고통과 고난을 당하시도록 내어버려 두시는가?

답: 우리는 먼저 행복과 즐거움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삶의 모든 상황에서 그의 즐거움과 평강과 소망으로 가득 차있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때때로 시련과 고통 중에서 가장 빛을많이 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요 16:20-22, 33; 고후 4:7-11; 6:4-10; 12:7-10).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단순히 행복하기만을 원치 않으시고 우리가 거룩하기를 원하신다(롬 8:28-29; 히 12:3-11). 예수님께서도 그가 당하신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셨다(히 5:8). 그러니 우리도 고난 속에서 순종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우리의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는 것을 배우고, 이러한 시련 속에서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우리의 힘과 소망으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거룩하게 되고 주님의 기쁨과 평강과 소망으로 가득차게 된다(벧전 5:6-11; 롬 15:13).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고통과 고난이 꼭 필요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이런 고통과 고난 중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소망으로 잡고 있으면 고통과 고난이 우리의 축복이 된다. 이것을 피해서 다른 인간의 방법을 찾아 피하거나 헤매면 그만큼 축복을 받는 것이 지연된다. 또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믿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믿고 기다려야 한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질문 8: 나는 성경공부도 해보고 기도도 해보고 순종도 해보았지만 나의 어릴 때의 고통을 치유해주질 못했다. 만일 심리학이 이런 고통을 없애준다면 왜 그것을 사용하면 안되는가?

답: 첫째로 당신의 초점이 틀려있다. 기독교 신앙의 목표는 고통에서 치유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 정말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왔는지를 자기대면을 해보기를(www.happyalltheday.com #3
자기대면 참조)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해보았는데 그것이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말씀을 버리고 불신자의 지혜를 따르는 것은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 . .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렙 2:13)로 가서 물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하는 롬 3:4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또 사탄에게 가서 병이 낫는다고 해서 정말 그에게 가겠느냐? 그리고 그를 경배하겠는가?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소위 성도라는 사람들이 심리학이 내적 고통을 치유해준다고 해서(정말 치유되는 것도 아니고 증상만 호전시키는 경우는 있어도) 하나님의 진리를 버리고 심리학이라는 자기중심의 방법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는가?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보았는데 되지 않았다가 아니고 철저하게 말씀대로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고후 10:5)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로 자신을 철저하게 점검하고 잘못된 태도와 생가과 동기를 판단해야 한다(고후 13:5; 고전 11:28-31; 요일 1:5-10).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시 63; 잠 3:5-7; 사 55:6-11).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마 6:19-33)  세상의 것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다하고 난 사람으로서는 누구도 경솔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질 않는다
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말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질문 9:
그러나 어떤 복잡한 심리적 문제들은 전문적인 치료자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답: 누가 우리의 마음을 감찰 할 수 있는가? 누가 우리의 생각을 통촉할 수 있는가? 누가 우리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고, 누가 우리의 행위를 알고, 누구 우리의 혀의 말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인가 심리적 치료자인가? 오직 하나님께서만 이를 알 수 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1-4). 우리는 우리의 마음조차 완전히 알 수 없다.

왜? 우리의 죄 때문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렘 17:9). 하나님만이 우리를 철저하게 아실 수 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하나님은 그의 축복을 받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하나님은 특별히 우리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복을 받는다고 경고하신다(시 1:1-2) 그런데 왜 성도들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의 말씀만을 따르는 신령한 남녀 종들을 놓아두고 어찌하여 Freud, Jung, Rogers, Maslow, Skinner와 같은 자들의 제자들이나 심리이설자(성경과 심리학을 혼합하는 자들)들을 따라가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누구를 믿고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가. 지금도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 2:8)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지금도 주님은 안타깝게 부르짖으신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러한 주님의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주님께서
나희도 가려느냐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영생의 말씀이 주께 계시오니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까
라고 대답했다.

또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했을 때 백성들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했는가? 그들은 이구 동성으로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우리가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다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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