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상담

심리이설 비판사례(4)

이요나 2007. 5. 9. 11:45

심리이설 비판사례(4)


질문 10: 현재 유행되고 있는 12단계치료법은 어떤가? 그것은 성경적인 것 같이 보이는데!

답: 사탄은 속이는데 명수임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나 잘 만들면 그것이 진품같이 보일 수 있지만 그러나 잘 만들었다고 해서 꼭 진품은 아니다. 12단계법도 같다. 12단계법을 만든 사람도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교묘하게 대치하려고 한 것이다. 이들은 계속해서 12단계치료법은 효과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반복한다. 또 그들은 포괄적이다. 즉 그들이 믿는 "높은 권세(Higher Power)"는 예수그리스도도 될 수 있고, 부처도 될 수 있고, 책장에 위에 올려놓은 물건도 될 수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신 주님을 평범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보다는 하나의 제도를 더 능력 있는 우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 외의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믿지 말라고 계속 경고하고 계시다. 이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진리이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우상 숭배인 이런 것을 강조하고 있다. 12단계법은 하나님을 성경적으로 믿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문제들(중독 등)을 12단계법치료법에 전이하게 만든다.

   12단계법이 성경적 영성을 세상적인 것으로 대치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적 용어 대신 심리적 용어(술에 만취되는 것을 음주중독이나 질병으로 부르거나, 죄를 중독으로 부르거나, 죄를 병 또는 질병으로 부르거나, 회개를 회복으로 부른다)를 사용한다. 이것은 사소한 이탈이 아니다. 매우 큰 이탈이다. 우리는 진리가 아니면 틀렸다고 말을 해야 한다. 그래서 용어는 반듯이 성경적이라야 한다. 죄에서 회복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죄는 꼭 회개하고 사함 받아야 하는 것이다.

질문 11: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 때 약을 먹는 것은 어떤가?

답: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신묘막측하게 지으셨다(시 139:14)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뇌가 정신의학이 이해하고 있는 어떤 약품에 대해서는 잘 작용해 기능을 하도록 우리를 만드셨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뇌의 기능과 혼의 영역간에는 중복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는 약을 복용하면 사람의 뇌기능을 고르게 해주어 더 정상적으로 혹은 합리적으로 기능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우리는 감사하면서 현대 의학의 약들을 사용해야 한다. 이는 마치 염증에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첫째로 현대의학은 뇌의 기능에 대해서 아직도 아는 것이 초보적이다. 의사들도 여러 가지 약이 어떻게 뇌기능을 변경시키는데 작용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 약치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주의가 요망된다. 두 번째로 약으로 정상을 회복한다해도 죄성의 생각이나 습관은 계속 다루어야 하며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는 일"(고후 10:5)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고로 약물 치료를 하면서 계속 무신론적 자기중심의 심리적 상담을 한다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죄를 대면케 하는 성경적상담과 약을 함께 사용한다면 도움을 받아 전체 치유과정의 일부로서 약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대부분의 경우에 약물치료를 하나의 석고틀로 여겨야 한다. 성경적으로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배울 때까지 한 때 사용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주를 의지하고 주께만 소망을 두는 것을 배우면서 죄성의 생각을 판단하고 주께 순복라고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완전히 자유함을 얻으면서 점차적으로 약물의존도 줄어들 것이다.

질문 12: "느낌은 틀리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 느낌은 느끼는 그대로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런 말이 성경적인 말인가?

답: 이 말은 그 때의 상황을 조사해보고 말을 해야한다. 이 말은 느낌을 부인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분을 많이 내는데 그들은 분이 죄인 줄 알면서도 그 죄를 직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는 정말 화가 난다"고 말을 하거나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이 우울한 것을 부인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정서를 다루는 성경적 방법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엡 4:25).

그러나 "정서는 전적으로 중립적이다"라고 하는 말도 성경적이 아니다. 성경은 어떤 분은 죄가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엡 4:26; 막 3:5) 또 성경은 대부분의 경우 분은 벗어버려야 할 죄라고 단정한다(엡 4:32; 마 5:22). 우리가 시련 중에 있을 때 슬퍼하고, 우울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마 25:38; 요 11:35; 히 12;11; 롬 12:15). 그러나 어떤 우울증은 우리가 꼭 다루어야 할 죄 때문에 생길 수도 있다(창 4:6-7). 또 어떤 때는 우울증이 잘못된 생각과 더불어 정서적, 영적 및 육체적 피곤으로 인해 오는 수도 있다(엘리야의 이야기-왕상:17-19; 특히 왕상 19:4, 9-14). 그래서 계속적으로 기쁨과 평강과 소망이 없는 것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시 5:11; 롬 15:13; 빌 4:4; 살전 5:16)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정서라는 것은 자동차의 게시판 위에 나타나는 경고의 신호 불과 같다. 이런 신호는 자동차 덮개 밑에 무엇인가 잘못이 생겼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불이 들어오면 자동차를 세우고 무엇이 잘못됐는가를 점검해야 자동차의 고장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정적 정서로 몸이 괴로워지면 주님 앞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먼저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점검해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질문 13: 그러면 상담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답: 절대로 그런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에 침투해 들어온 심리학 때문에 현재 교계에서 되어지고 있는 상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는 가끔 성숙된 성도들의 말(상담)을 들어야 한다고 명령하신다(롬 15:14; 갈 6:1; 잠 24:6).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떨어진 독립적인 신자들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 이는 마치 손과 팔이 붙어 있어야 몸 전체의 기능이 잘 되는 것과 같다(고전 12:12-31). 강한 자들은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고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아야 한다(살전 5:14). 그래서 우리는 서로 상담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성경적으로 해주어야 한다. 그 이유는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기 때문이다(잠 21:30). 또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가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잠 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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