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1) 그리스도의 노예
매주 화요일 저녁 떠나는 우리의 성경 여행은 대망의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서신 서신 중의 왕관이라고 할 만큼 우리에게 커다란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과거 신학교 시절에 교수님들로부터 늘 바울서신의 금자탑 로마서라는 말을 들어 왔습니다. 그 후 나는 로마서는 중요한 신학적 교리의 책이라고 생각해 왔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구원의 복음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갈보리채플 사역을 하는 동안 로마서를 강해를 준비하면서 로마서를 통하여 새롭게 접하여 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은혜에 의지하여 아직 위대한 바울 사도의 심령에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나름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여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이번 로마서 강해는 조바심을 갖지 않고 좀 여유로운 출발을 할까 합니다. 항상 여러분께 드리는 부탁이지만 화요 예배에 참석하시는 성도님들께서는 꼭 로마서를 읽어 오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로마서의 서론에 해당하는 제1장으로서 로마교회에 편지를 쓴 사도 바울을 먼저 만나 볼까 합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잘 아는 바와 같이 바울은 예수를 피박하던 사울이라는 정통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으로부터 친히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시민이었고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지만 후일 바울이란 로마식 이름으로 불리었습니다. 그는 지중해 북동쪽에 근접한 길리기아에 위치한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이며 대학도시인 다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그 유명한 유대인의 지도자 힐렐의 손자이며 당대 가장 겅건한 율법학자로 불리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최고 명문대학교 신학과 출신이 되는 셈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스테반을 돌로 처 죽일 때 증인이 되었던 유대인의 관원으로 그후 더욱 살기등등하여 주의 제자들을 핍박하기에 혈안이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2절에는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지역으로 도피하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기 위하여 공회로부터 문서를 받아 다메섹으로 내려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 일은 바울의 일생을 그리스도의 대적에서 그리스도의 종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되는 여행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부르신 예수께서는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26:16-17) 명하셨습니다. 그후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받은 복음의 사역자가 되어 일생을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바쳤습니다.
로마서 1장 1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밝힌 "예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름 조차 듣기 싫어하여 그를 따르던 자들을 심히 박해하던 이단괴수였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으로 "구원자"라는 사역적 호칭이며 그리스도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을 받은 자"라는 예수님의 공식 명칭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로부터 또 다른 공식 직함을 부여 받습니다. 바로 "사도"라는 직함입니다. 사도란 그리스어로 "아포스텔로스"(apostolos)로서 "임무를 맡겨 파송하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에게 이 말은 또 한번 적용된 바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이며 또 한번은 교회로부터 복음의 교리적 교권의 확증을 위하여 파송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5장 2절을 보면 유대에서 내려온 사람들로 인하여 이방인의 교회인 안디옥 교회는 구원에 관한 교리의 문제로 봉착되었습니다.
유대인들 중 믿는 사람들이 믿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모세의 할례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 동안 가르쳐 온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의 구원에 대한 변증이 흔들리는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의 사도회의에 파송하였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으로 선택한 로마서 1장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자신의 택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울서신을 통하여 아는 바와 같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친히 사도로 부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역 중 내내 사도권의 도전을 받아 왔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부르심과 택하심이 예수님 생존에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교를 핍박하던 중 성령의 예언을 따라 아나니아를 통하여 은밀한 가운데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그 당시 자신에게 직면한 유대인들의 불신과 도전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세세히 털어 놓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다른 유대인들보다 더 율법에 열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박해하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는 바울의 택함의 그 직분은 다름아닌 종의 신분입니다. 오늘날에는 종의 신분이라는 단어가 지구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만 종이란 단어는 그리 듣기에 좋은 직책은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종이란 단어는 참으로 위대한 직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자기를 가리켜 하나님의 종이라 칭하셨으니 말입니다.
'종'이란 그리스어로 '둘루스'(doulos)로서 영어의 '노예'(servant)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종이란 그 주인의 허락한 범위 내에서의 자유가 주어진 노예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종의 신분은 무한한 영광을 입은 존재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여호와의 종"이란 아브라함(창26:24)을 비롯하여, 모세(민12:7), 여호수아(수24:29), 다윗(삼하7:5), 그리고 이사야(사20:3)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에게 사용되던 영광의 이름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주의 택함을 받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신학교로부터 매년 수천 명의 목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축복된 일입니까? 인구 오천만 밖에 안되는 나라에 1% 이상이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니 말입니다. 말로만 한다면 이 나라는 바울이 말하고 있는 만인 제사장 시대의 선두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사역하는 목사보다 놀고 있는 목사가 더 많다는 소문입니다.
그러나 더욱 가슴 아픈 일은 놀고 있는 목사들보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택정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마치 자기가 주인이 된 것처럼 오직 자신의 명예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이들이 택함을 받은 것인지 다시 한번 성경의 말씀을 다시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의 말처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됨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내 일생을 그에게 노예로 드리고 그의 복음을 위하여 봉사할 것을 서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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