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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1)강해
야고보01-1.mp3(12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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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의 명문 갈보리채플 이요나 목사의 강해설교
(약1:1) 에클레시아의 근원
(야고보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오늘부터 우리는 야고보서를 공부할까 합니다. 목요예배에서 골로새를 시작하며 내가 굳이 주일 설교로 야고보서를 강해하기로 작정한 것은 나름대로 특별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식년 기간 중 3개월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나는 전세계 가운데 있는 한국인의 자존심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한국인의 지존심이란 한국인이 있는 곳에는 어느 곳엘 가든지 교회가 세워져 있었고 모두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교회 깊은 관계가 있는 터이기도 하지만 여러민족이 합하여 국가체계를 이룬 미합중국에 한국인만이 사는 것은 아닙니다.
비단 한국인 교회에 많은 문제들이 산재하여 있고 과연 그들이 진정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인가 의심이 가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성경이 의미하는 성도의 생활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교회와 지도자들의 씨스템적인 문제에 할 수 있고, 타민족들과 달리 한국인들이 교회와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다는 것은 유대인과 같은 기이한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유럽, 러시아, 일본, 중국에 이르러 각 국가간에 민족주의적인 바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외곡 사건과 관련하여 영토 문제에까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향후 계속 발전될 정치, 경제 문화의 발달과 각양 지식과 정보체제의 확대 그리고 교통의 수단의 발달과 함께 각 국가에 살고 있는 타민족들이 자신의 국가관과 민족관이 고취되면서 국가적 이해관계속에서 분쟁이 필수 불가불하게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이미 말일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여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12:4) 기록하였고 주께서는 종말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막13:8)을 미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야고보서는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그리스도인을 향한 잠언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
야고보서의 저자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 즉 이복동생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성경 끝부분에서 다시 유다서를 보게 되는데 그 역시 예수님의 동생임이 틀림없습니다. 성경에 주의형제인 야고보와 유다에 대한 기록은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마태는 13장55절에서"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우리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기록 하였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다른 반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성경은 야고보서와 유다서의 저자가 예수님의 형제들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 의하면 주의 형제들은 처음부터 주를 따르지 않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하고 비아냥 거렸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기 사역을 보고 귀신 들렸다 하는 소문에 휘말리기도 하였습니다(막3:21 참조).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 그의 형제들이 회심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7절에서 "그후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기록하여 주께서 자신의 부활하심을 사도들보다 먼저 형제야고보에게 보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기록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육신의 가족들이 주님의 부활 후 회심하여 사도들과 함께 주의 명령을 따라 성령강림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후 야고보는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베드로를 심방한 후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갈1:19)고 증언하였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그 당시 안디옥교회에서 발생된 이방인의 구원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예루살렘 지도자 회의에서 큰 논쟁이 일어났을때 야고보는 베드로의 증언을 뒷바침하여 문제를 매듭지었습니다(행15:13 이후 참조).
'둘로스'(doulos)
야고보서 서두에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약1:1)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자신의 신분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종'이란 '둘로스'(doulos)라는 헬라어로서 완전한 노예를 의미합니다. 즉 주인에 의하여 생명과 자유가 보장된 신분입니다.
종의 직분은 그의 위치에 있어 주인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복종을 전제로하여야 합니다. 나는 오늘 미국 샌디에고 호라이즌 채플의 담임인 마이크 멕킨토시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의 부인에게 준비해간 작은 선물에 대한 감사의 편지였습니다.
그는 나의 편지에 대하여 'gracious letter'(상냥한 편지)라 하였고 나를 권면하여 'humble befor God, stay honest befor man and continue always in prayer and the Bible"라고 썼습니다. 나는 내 일생이 이처럼 아름답고 권위있는 권면의 편지를 받아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의 권면은 한마디로 종의 자세를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디아스포라'(Diaspora)
또한 서두에서 우리의 시선을 집중 시키는 어휘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디아스포라'(Diaspora)의 열두지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여기서 '디아스포라'라는 의미는 약속의 땅인 팔레스틴 이외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 어원을 살펴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상 세번의 대 추방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 첫번째는 앗수르에 의하여 북이스라엘의 멸망(왕하17:23)과 함께 시작되었고 두번째는 바벨론에 의한 남유다의 멸망(BC 580) 에 의한 것입니다(왕하24:14-16).
세번째 추방은 바벨론에서의 70년 포로생활 후 귀환하여 상당한 후에 발생되었는데 로마의 폼페이(pompey)가 예루살렘을 점령(BC 63)하고 유대인을 속국하므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시대 어느때를 막론하고 사로잡혀간 지역에서 믿음의 둥지인 회당 즉 시나고구(Synagogue)중심으로 율법을 지키며 번영해 왔습니다.
'에클레시아'(Ekklesia)
성경은 "우리는 바대인과 메데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르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행2:9-11)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그 당시 이전부터 유대인들이 전세계 각국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 온 것을 증명하며 이들은 이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믿음과 열정을 갖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기록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느 지역에 살던지 10명이상이 모이면 회당(Synagogue)을 지어 율법을 가르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 그 자체를 하나님의 교회 즉 '에클레시아'(Ekklesia) 라고 불리우게 된 원동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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