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6:19) 영혼의 닻을 달아라
(히6: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니
우리는 앞에서 멜기세덱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적 비밀을 통하여 우리 앞에 이미 밝혀진 모든 비밀들에 대하여 아직도 깨닫지 못하여 무식하고 미혹된 언행을 일삼는 어린아이와 같은 우리 교회의 실태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이 어디서 기인된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6장 서두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어다"기록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 관점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으로부터 시작할 것도 없이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다시 사심 가운데 그를 믿는 우리는 그의 은혜에 동참하여 주께서 언약하신 주의 기업을 향하여 달려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의 믿음의 현실을 볼 때 영원한 생명 속에 언약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의 기업에 관한 지식들이 멜기세덱의 비밀만큼이나 알 수 없도록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우리가 이미 예수를 가리켜 그리스도라 하면서도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듯이 아직도 교회들은 그리스도 도의 가장 기초적 지식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주의 오심이 가까운 때에 살고 있는 교회들이 아직도 회개와 신앙과 세례와 안수와 부활과 심판에 관한 교훈에 대한 터를 닦으려 하고 있다고 경계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부끄러운 치부를 고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오늘날 우리 각 교회들을 분열시킨 교리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어느 교파는 4단계 회개를 교리로 삼고 있으며, 어떤 교회는 세례들에 관한 잘못된 교리를 행하여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고 있으며 어떤 교파들은 안수에 대한 잘못된 지식에 빠져 교회 늘리기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교회들은 무지하여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의심하며 영원한 심판이 있음을 변명하려는 태도를 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들은 이미 성경에 밝히 기록된 내용으로 우리가 조금만 살펴 보면 능히 알 수 있는 사실들인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구약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앞에 나타난 사실들의 모형을 보게 하셨고 그 모형의 지식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우리의 지각을 일깨워 하늘의 비밀과 하나님의 지혜들을 능히 발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로하여 바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그 아무도 알 수 없는 구약 시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소망하여 그 말씀에 귀를 기우리며 그 말씀의 나타나심을 소망하는 다윗의 마음을 열어 능히 미래를 보고 말할 수 있게 하셨거늘 이미 그 아들 예수를 우리의 죄에 내어 주고 그의 성령으로 우리로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신 자들에게 언약한 세상을 능히 열어 보이시지 않겠습니까?
*바울의 경계
바울은 4절에서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경고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믿는 우리에게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마치 특별한 사람들에게 국한 된 말씀으로 해석하려 하고 있습니다만 이 말씀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경계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히브리서는 교리적 말씀이 아니라 권면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권면이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다시 일깨워 바른 길로 인도하는 영혼의 길잡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4절에서의 바울의 권면은 믿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경계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한 번 비췸과 하늘의 은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 단 한번뿐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또한 성령의 참예되었다는 말씀은 믿는 사람들에게만 설명이 가능한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우리의 영혼이 성령에 의하여 인침받고 이미 그의 권능 가운데 놓였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이로서 우리는 그의 인도하심으로 성경의 말씀에 아벤으로 화답하며 언약하신 평강을 마음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성령에 참예한 자들의 타락함과 다시 회개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타락한'(파라핍토)이란 말은 실수로 떨어져 나간 것을 의미하며 '회개'(메타노이아)란 마음을 돌이며 환경을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어느 교회들이 말하는 불가항력적 은혜에 대한 교리와 대립되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의 말하는 주장이 옳다면 그들은 바울보다 더 위대한 자들이되던가 아니면 오늘 여기서 말하는 바울의 증거와 권면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하였습니다.
마가는 복음의 비밀에 대하여 "하나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맞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나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싻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내나니 이는 추수때가 이르렀음이니라"(막4:26-29) 기록하였습니다.
*오래 참음
이제 바울은 온전한 구원에 관하여 언급하여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우리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권면을 받아 온전한 믿음생활 가운데 풍성한 하나님의 소망을 갖인 사람들을 향한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의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느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말하는 바 우리의 행위와 성도의 섬김이 과연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전함을 미리 받은 자들의 모범되 믿음의 행실과 맡기신 직분 즉 사역자의 봉사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주께서 '사도와 선지자와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의 직분을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하였습니다.
바울 계속하여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리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의 할 것은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라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기업을 받을 자들에 대한 성경의 언약이 끝났음을 전재하여 그대로 행한 자들은 모두 본받는 자들이 될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 예증으로 아브라함을 인용하여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들어 맹세하셨음을 증거하여 "내가 반듯이 너를 복 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창22:17)하셨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의 성취는 오랜 세월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한 아브라함의 믿음 속에서 증명되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맹세를 설명하여 "맹세는 저의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의 확정이니라" 하였으며 다시 '기업을 받는 자들에게 변치 않는 하나님의 보증'이라 증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께서 언약하시고 맹세하신 하나님의 기업은 우리의 오랜 믿음의 행로 가운데 나타나는 최후의 확정이 될 것입니다.
*변치 않을 두기지 맹세
바울은 여기서 우리에게 변치 않는 두가지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맹세와 하나님의 기업에 관한 것입니다. 다시말하여 하나님의 맹세는 그보다 더 크신 분이 없기 때문에 이미 확정된 것이며 하나님의 기업은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임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 이 두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하였습니다. 지금 바울은 성도의 앞에 있는 소망 즉 아브라함과 다윗이 갖고 하늘을 향하여 달려 가던 기업의 소망과 동일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또한 그 소망을 향하여 달려 나아갔던 사람들의 고난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바울의 이 말씀은 고난 중에 인내하는 우리에를 위안하기 위한 권면입니다.
끝으로 바울은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영혼의 안식이 예수께서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으시까지 순종하심과 같이 우리의 온전한 참음과 순종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앞에 있는 그 무엇을 잡으려고 달려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들도 자신이 달려 가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체 육체의 소욕을 따라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신 그 언약의 소망을 따라 오랜 참음으로 달려가는 그들의 영혼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이어 나갈 아름다운 기업을 물려 받게 될 것입니다. 7장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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