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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5:12)말씀의 온전한 경험

이요나 2007. 6. 28. 16:09

(히브리서5:12)말씀의 온전한 경험

 

(히5:12)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나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먹을 자가 되었도다

 

우리는 앞에서 안식에 관한 말씀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것으로 우리의 영혼이 그의 말씀을 통하여 믿음 안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앞에서 우리 앞에 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잡으라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펴 볼 차례입니다.

 

*제사장의 직무

바울은 1절에서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을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쌓여 있음이니라"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직분을 설명하기 위해 구약시대에 율법으로 제사장의 직분을 부여 받은 레위지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성경의 이러한 인용은 한계속의 인간에게 하늘나라의 영적 세계의 제도와 질서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구약은 우리를 위한 모형이라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 율법으로 제정하신 성막과 제단과 제사장에 관한 모양과 법은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의 영적 질서와 예정에 관한 모든 원리를 인간으로 이해하게 하기 위하여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은 거룩하며 신령하다 증거한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제사장의 임무는 사람들을 대표하여 그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입니다. 그 이유는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2절에서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증거하였습니다.

 

지금부터 바울이 말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커다란 시각이 필요합니다. 구약의 제사장과 또 모든 인간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직분에 관한 것과 택하심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요 본체이신 하나님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연약하고 미혹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제사장의 직무를 설명하여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하였습니다. 이것은 제사장도 연약한 인간이었음을 설명한 것으로 제사장은 자기와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제물을 갖고 제단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스스로 그 존귀를 버리고 인간의 연약함에 함께 동참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 죄의 아품을 모르는 자로서는 능히 속죄의 필요성과 간구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5,6절에서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도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기록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주의 태어나심과 부르심에 관한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주께서도 태어나심과 부르심이 모두 말씀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또 땅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

'멜기세덱의 반차'라 함은 창세기 14장에 기록된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고 복을 빌던 하나님의 제사장의 서열을 따라 되었다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에 관한 기록은 창세기 14장에서 언급 된 후 천년 후 다윗의 글 즉  시편110편에서 다시 언급되었고 다시 천년이 지난 바울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멜기세덱에 관한 내용은 오늘이나 그 당시나 모두 신비에 속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기세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것과 그가 오늘날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이라는 것을 전제 하여야만합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답을 갖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부분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를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 라고 합니다. 이것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난  '나사렛 예수'와 성경에 오시기로 언약된 메시야  즉 '그리스도'(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로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태어나신 '예수'이시며  또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통하여 그 직무를 받으신 분이심을 의심없이 믿고 또 쉽게 이해합니다. 좀더 알기 쉽게 원리적으로 설명하면 인간으로 태어나신 나사렛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 임하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하신 그리스도의 직무를 하게 된 사실입니다. 

 

바울은 7절에서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이심을 얻었느니라"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 여기서 인간 예수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부분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능히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우리와 동일한 인성(다만 죄가 없으실 뿐인 우리와 동일한 육체)을 갖으셨음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얼마전 전세계 사람들의 영혼의 고통을 안겨준 '팻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신 분이면 그가 인간이셨음과 십자가의 고통이 어떠했었음을 능히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능력의 근본인심에도 그는 인간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모든 인간과 같은 동일한 육체로 오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손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체의 연약함을 갖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온전한 순종을 설명한 것입니다.

 

* 다윗의 미리 봄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다윗이 말한 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에 관한 것입니다. 다윗은 성령에 충만함을 받아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의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본 고로 이미 성경에 말씀하시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복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한 것입니다.

 

만약 주께서 성령으로 다윗의 눈을 열어 모든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보이시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이 만난 바된 멜기세덱은 영원한 비밀의 사람이 되어버려 그가 누구인지 또 가나안 땅에 살던 한 의로운 왕이였던지 아니면 아브라함을 축복하기 위해 내려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인이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로하여 베드로는 다윗을 가리켜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날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였으니 우리가 다 이 일의 증인이로다'(행2:29-32) 증언하였습니다.

 

*지식과 깨달음

바울은 12절에서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먹을 자가 되었도다"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참으로 우리의 믿음생활의 허망함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 세월 저는 예수를 믿은 지 십여년 동안 광야를 헤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를 벗어나 광야를 헤메던 것과 같은 그런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미 내 영혼이 주를 만나 영혼의 안식의 기쁨에 들어 있었는데도 나의 영은 무식하고 미혹한 자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글을 쓰면서 아직도 미혹된 심령으로 광야를 헤메는 수많은 주의 자녀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이 아품은 니뿐이 아니라 주 앞에 깨어난 모든 선생들의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된지 백여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교회는 광야를 헤메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치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하였습니다. 고린도서에서 바울은 내가 너희를 대할 때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다 하였습니다.

 

저는 어제 동경에 있는 제자로부터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가 동경 한인 교회에 담임과 함께 부임을 한지 이미 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당시 그 교회는 교회를 개척한 원로 목사의 소천 후 후임자 문제로 많은 방황을 하던 터였습니다. 

 

다행이 사명과 경륜이 투철한 목사님이 부임하여 저의 제자와 함께 참으로 사심없이 열심을 다해 성도를 섬겨왔습니다. 저는 두번을 방문하며 그들의 수고와 헌신을 눈으로 보아 왔고 늘 기도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담임목사와 함께 장로들에 의하여 내어 쫓김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누구이기에 감히 부름을 받은 주의 제자들을 내어 쫓을 수 있는 것인지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정이 이에 도달한 것입니다. 여러가지 사정들이 있겠습니다만 이제 우리는 좀더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갖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과 같이 우리의 연약한 육체 속에 거룩함으로 역사하는 멜기세덱의 이름이 함께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6장에서 만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