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히브리서강해

(히브리서3:1)깊히 생각하라

이요나 2007. 6. 28. 16:11

(히브리서3:1)깊히 생각하라

(히3: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히 생각하라


오늘은 히브리서 3장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귀담아 들으셔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상당한 수준의 이해를 요구하는 서신입니다.
 문론 히브리서 뿐 아니라 이 후의 서신은 모두 성경공부의 상급부분에 속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를 공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저자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찾는 길입니다. 많은 성경구절 이용을 하면서
 여러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결국 그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 곧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리고 얼마나 위대하신지 또한 우리를 위해 어떠한 일을 하실 분인지 바로 알자는 것입니다.

바울은 1장에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하심을 설명하였으며 다시 2장에서 그의 거룩하고 존귀하신 신성의 존체께서 이 땅에 육체로 오신
 사역적 역활을 설명하였습니다. 바울은 2장 16절에서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말하여 그를 믿는 자들의 신비적 관계를 언급하였습니다.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오늘 3장 서두에서 저자는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히 생각하라"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3장은 앞에서 언급된 1장과 2장의 모든 내용을 다 포괄한 결론 부분으로 그를 믿는 성도들의 신앙적 각오와 믿음의 다짐을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를 향한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형제들' 이라는 칭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위치에 대하여 상당히 부끄러워 하고 있습니다. 어느 회식자리나 사교 모임에 가서 크리스챤임을 밝히기 껴리며 쭈핏쭈핏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함께 유흥에 어울리기 위해 자신은 무늬만 크리스챤인 것을 강조하는 못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은 너희가 나와 나의 말을 부끄러워 하면 거룩한 천사들과 올 때에 내가 그를 부끄러워 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시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부르심은 하늘 즉 거룩한 신성으로부터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우리를 가르켜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라 하였습니다.

  A. 사도이신 예수

여기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라는 말은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믿음의 사도'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실 우리는 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우리의 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서 된 일이 아니라 우리가 그를 믿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들오 오셔서 그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의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히 생각하라' 는 말은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여기서 '깊히 생각하라'는 말은 그냥 생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께서 누가복음에서 '까마귀를 생각하라'(눅12:24), 또 '롯의 처를 생각하라'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여기서
  까마귀를 생각하라든가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말은 까마귀와 롯의 처를 머리 속에 떠 올리라는 말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그들의 전반적은 내용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 있는 것인가 깊히 사고하고 그 의미를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주께서 까마귀를 생각하라고 하신 말씀은 욥기 38장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욥기 기자는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 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창조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들을 책망하는 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말하여 인간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까마귀의 울음에 귀를 기우리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말씀은 욥의 처가 하나님의 경계하신 말씀을 무시하고 옛 것을 그리워하다가 소금기둥이 되어 버린 사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종말의 시대를 살아 가는 구원받을 백성들을 향하여 오직 믿음을 따라
 온전히 행할 것을 목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무엇을 깊히 말하라고 하는지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바울은 먼저 '사도'를 가리켰습니다. 여기서 '사도'(Apostolos)란 '보내심을 받은 자' 즉 '파송된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성경은 이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서만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파송하신 분임을 언급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7:17) 하셨으며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요7:29)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의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여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업나이다'(요17:8)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란 그 보내신 자의 말씀을 전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직무란 보내심을 받은 분의 뜻을 따라야 하며 그로부터 보고 듣고 배운 말씀을 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뜻과 그의 말씀을 그의 백성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저자는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으로서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셨는가를 깊히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B. 대제사장 예수
두번째로 바울은 '대제사장'을 거론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미 2장 끝에서 '백성의 죄를 구속하기 위한 충성된 대제사장'을 소개하였습니다. 제사장에 해당되는 라틴어 '폰티팩스'(pontifex)는 '다리를 세우는 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폰티팩스란 말은
  이쪽과저쪽을 이어주는 교량이듯이 대제사장의 역활은 하나님의 입장과 인간의 입장에서 서로를 이어주는 교량의 역활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또한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대표자로 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다'(고전12:45) 하였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수많은 제사장들을 보아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아론의 자손 중에서 그 거룩한 직무를 다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도 우리와 같이 죄성을 갖인 인간인고로 자신의 죄를 먼저 씻는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세번이나 기도하신 주님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여 내가 이 잔을 마셔야 하겠습니까?'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속죄를 위해 자신을 제물로 드려야만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보내신 이의 뜻을 따라 묵묵히 죄없으신 자신의 몸으로 인간들의 죄를 대신 하여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깊히 생각해야 할 것인지 이해가 되셨는지요? 주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어떤 분이시며 또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깊히 생각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로서 우리에게 오직 하나님의 도리를 가르치셨으며 또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대속하신 분인 것입니다. 우리가 잠시라도 그를 떠날 수 없는 것은 그가 없이는 하나님의 자녀라 하심을 입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